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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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외친다 나의 권리를

김지혜 기자 작성 2016.12.01 14:46 조회 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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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미국 영화계에 강경한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면, 영국 영화계엔 뜨거운 좌파 감독 켄 로치가 있다.

올해로 여든을 맞은 켄 로치는 한평생 '블루 칼라의 시인'으로 불렸다. '레이닝 스톤'(1993), '빵과 장미'(2000)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삶을 그렸다.

2014년 '지미스 홀'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켄 로치는 2년 만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발표하며 자신의 선언을 뒤엎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생애 2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솜씨 좋은 목공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를 드나들지만, 관료들의 안이한 행정처리와 복잡한 전산 시스템으로 곤욕을 치른다.

어느 날 다니엘은 관공서에서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와 그녀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나 다니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부조리한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다니엘과 케이티의 모습을 통해 소외계층의 안전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복지 정책이 허울뿐인 시스템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비극을 영화는 씁쓸한 유머와 따뜻한 드라마를 섞어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생기와 온기가 살아있는 블랙코미디다. 실업급여를 웹사이트에서 신청해야 하는 다니엘이 마우스을 사용법을 몰라 헤매는 모습이나 개인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원리 원칙만을 내세우는 관료들의 모습은 헛웃음을 유발한다. 

켄 로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내몰았던 '대처리즘'(Thatcherism:영국 경제의 재생을 꾀한 마가렛 대처 수상의 사회·경제 정책의 총칭)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고, 그런 정치적 시각과 견해를 다수의 작품에 투영해 왔다. 

이 영화에서도 잘못 설계된 시스템이 유발하는 실업, 빈곤 마저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를 향한 쓴소리를 잊지 않는다. 이를 통해 보편적 진리인 '인간의 존엄', '인간의 권리'를 강조한다.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이 "켄 로치는 반세기 넘게 돌림노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면, 반대로 반세기 동안 이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켄 로치에게 영국의 어떤 시스템은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여전히 틀린 일인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연대의 드라마다. 이 영화의 따스함은 나의 행복과 안위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작은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배려와 이해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또, 작은 선(善)이 모였을 때 '연대'라는 큰 움직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연대의 힘은 끝내 눈물을 쏟게 만든다.

나 다니엘

영화는 후반부 다니엘의 절규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선사한다. 다소 촌스러운 방식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다. 이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강력한 울림을 선사한다. 

켄 로치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수상 소감을 전하며 박수 갈채를 받았다.

모든 영화는 어떤 의미로든 정치적이라고 했던 정지영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모두의 행복 사회를 꿈꾸는 켄 로치의 아름다운 교화라고 할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0분, 개봉 12월 8일.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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