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변요한의 자기반성 '과거의 나vs현재의 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6.12.21 10:11 조회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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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눈망울이 예쁜 남자 아이는 말을 더듬었다. 게다가 유치원에서도 늘 혼자서만 놀았다. 말도 더듬는 데다 말수도 적은 아들이 걱정된 부모는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줍음이 많던 아이는 이상하게도 무대에서는 떨지 않았다. 소년이 된 아이는 어느덧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연극 무대에 정식으로 섰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커튼콜 할 때 있잖아요. 핀 조명이 머리에 내리고,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리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해요.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아요. '배우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요"

변요한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 '미생'은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미생들의 이야기였다. 변요한이 연기했던 '한석율'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사회과 치열하게 싸웠고, 완생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 캐릭터는 연기의 세계에 발을 디딘 변요한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열정도 넘치고, 욕심도 많은 배우다. 그러나 카메라 밖에선 수줍고, 조용했다. 내재된 열정을 어떻게 감추고 살까 싶을 정도로. 결국 그 불꽃은 연기로 승화되고 있었다.   

이 배우를 인터뷰 자리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날, 그 여정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 나를 찾는 시간여행 그리고 사랑

변요한은 '당신,거기 있어줄래요'(감독 홍지영)에서 김윤석과 2인 1역을 맡았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3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설정의 이야기에서 변요한은 과거의 '수현'을, 김윤석은 현재의 '수현'을 연기했다. 

영화를 처음 본 감상을 묻자 "다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잡생각 때문에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그가 말한 잡생각이라는 것은 홍지영 감독과 처음 만났던 그 날의 기억이었다.

"한 30분 동안 아무런 말없이 식사만 했어요. 그러면서도 '이 영화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는데 '그 확신이 맞았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현재의 수현(김윤석)이 연아(김성령)와 재회하는 엔딩이에요. 기욤 뮈소가 원작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정서의 정점을 찍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엘리엣(원작 속 주인공 이름)도 수현과 같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작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발간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에게 '타임 리프'(Time leap: 시간을 뜻하는 time과 되돌린다는 뜻을 가진 'reply'가 합성된 단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비한 능력)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다.

당신

변요한은 이 소설을 군대에서 만났다고 했다.

"상병 때 읽었어요. 재밌고 신선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원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어요. 군대에서 스치듯 읽었을 때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라고 감탄했었는데 막상 내가 연기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입체적으로 연기하지? 큰일 났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한수현이라는 인물이 가진 외로움엔 본질적으로 공감이 되더라고요"

해답은 초심에서 찾았다. 변요한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을 좋아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 생각나더라고요. 특히 연아(채서진)와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에 집중하고자 했어요"라고 답했다.

첫 멜로 영화라는 특별한 의미도 있다. 파트너는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인 채서진이었다. 변요한과 채서진은 영화 중반까지 장거리 연애의 애틋함을 표현하며 영화의 로맨틱 지수를 높였다. 변요한은 수현의 감정 상태를 디테일하게 연기하며 멜로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입증해 보였다.  

"원작 소설에서도 두 남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해요. 영화에서 수현이 30년이 흘러 과거로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가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에 서툴고,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주저하는 수현의 젊은 시절을 잘 연기하고 싶었어요. 연아의 존재가 수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세삼하게 표현하려고 했고요"

소셜포비아

◆ "독립영화 촬영 시절, 내 욕심에 오만했다"

변요한이 연기의 내공을 쌓은 터전은 독립영화다. 그는 얼굴이 알려진 후에도 계속해서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목격자의 밤', '소셜포비아', '들개', '타이레놀' 등은 변요한의 성장과 박근범, 홍석재, 김정훈, 홍기원이라는 재능있는 젊은 감독을 발견한 작품으로 꼽힌다.

"저에게는 좋은 뿌리예요. 많이 성장하고 많이 깨졌죠. 사실 독립영화를 하면서 욕심을 부리기도 했어요. 그땐 나 혼자 너무 돋보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감독과 이견이 생겨도 제 고집대로 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결과물을 보면서 그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죠. 오래 연기를 하려면 내가 부각되는 게 아니라 작품이 부각돼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던 거죠. 한동안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연기를 쉬어 보기도 했어요"

흥미로운 건 그와 작업했던 신인 감독들 역시 변요한과 똑같은 자기 성찰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제작비도 적고, 촬영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감독과 배우가 열정 하나만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끌어낸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발전의 자양분이 된 셈이다.

변요한은 '미생'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에도 독립영화 '타이레놀'을 찍었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그 현장에 돌아가 15분 내외에 뭔가를 보려 주려고 하다 보니 '예전엔 내가 어떻게 했지?' 싶은 거예요. 그때 함께 출연했던 친구 나철이 제게 "네가 예전에 짧은 시간 안에 관객의 마음을 흔들려면 선택 싸움을 해야 한다고 했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내가 그랬었나'를 생각하며 과거의 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변요한

◆ 독립영화계의 스타, 상업영화계의 신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변요한에게 좋은 교두보이자, 중요한 지렛대가 될 영화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최고의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했지만, 상업영화계에서 그의 위치는 신인에 가깝다.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태도와 자세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늘 조용하고 차분하게 준비하죠. 놀러간 곳이 아니라 일하러 간 현장이잖아요.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김윤석 선배의 과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그렇지만 연습할 때는 부담을 가지고, 현장 가면 그 부담을 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현장에서는 최대한 긴장을 풀려고 했어요. 그럼에도 현장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한수현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고뇌에 빠져보려고 했어요"

변요한

'요한'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의미에 관해 물었다.

"집안이 기독교고 아버지가 목사세요. 그래서 전 요한, 여동생은 한나예요. 어릴 땐 이 이름이 불만이었어요. 되게 억누르고 살았거든요. 저는 좀 말을 안 듣는, 모태는 맞는데 못된 신앙자랄까요?"

그러나 변요한은 자신에게 이름뿐만 아니라 배우의 길을 안내해 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아버지께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어요. 배우가 되겠다는 저를 말리셨죠. 그런데 저의 어떤 집념을 보셨던 거 같아요. 제게 많은 당근을 주기도 했어요. 견문을 넓히라고 중국 유학까지 보내주셨는데 어느날 선물 주시겠다는 거예요. 귀국했더니 한 달 만에 영장을 주셨어요. 그리고 배우의 꿈은 반대한다면서도 한예종이라는 데를 알려주시고 "여기 아니면 대학 안 보내겠다"고 엄포도 놓으셨어요.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하죠(웃음)"  

변요한은 이날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연기론을 밝히기도 했다. 

"절 대학교에 보내주신 연기 스승님이 하신 이야긴데요. 축구는 연기와 똑같다고 하셨어요. 내가 패스를 하면 상대가 받을 것이라는 믿음, 동료가 넘어졌을 때 내가 빈자리를 매워줘야 한다는 책임감, 축구도 그렇듯 연기도 혼자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또 부상당하는 선수는 좋은 선수가 아니니 유연함을 키워야 한다고. 무엇보다 팀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좋은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 지론을 저 역시 현장에서 느끼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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