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영화 핫 리뷰

[리뷰] 마스터 실종된 '마스터'

김지혜 기자 작성 2016.12.22 14:04 조회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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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 제작 영화사 집)는 한 남자의 연설로부터 시작된다. 2만여 명이 운집한 체육관 중앙 무대에 오른 남자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말로 관중을 현혹하고, 눈빛으로 유혹한다. 

이 인물을 향해 화려한 조명과 객석의 반응까지 더해지자 연설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런데 연설과 연기는 폭발할 것 같지만 폭발하지 않고,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빠져들 줄 알았는데 와 닿지 않는 사기꾼의 거짓말처럼 말이다.

'마스터'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장단점을 집약해 놓은 느낌이 든다. 확실한 눈요깃감으로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

현 극장가에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지난 21일 개봉한 '마스터' 역시 실제 사건을 거울 삼아 이야기를 만들었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모티브다.

조 단위 규모의 사기 사건을 벌이는 원네트워크 '진현필' 회장(이병헌)은 하늘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사기꾼이다. 수만 명 회원 앞에선 인간적 매력과 화려한 쇼맨십을 선보이고, 때론 경박한 사기꾼의 면모를 드러낸다.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흔들림 없는 집념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 김재명은 진 회장을 잡기 위해 원네트워크의 브레인 '박장군'(김우빈)에게 접근한다. 박장군은 필요에 따라 두 인물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벌인다.

여기에 진회장 못지않은 야망을 감춘 오른팔 '김엄마'(진경)와 진 회장의 뒤를 지키는 '황변호사'(오달수), 재명을 서포트하는 '신젬마'(엄지원) 경위, 장군의 절친 해커 '안경남'(조현철)까지 대한민국 역대급 사기 게이트에 얽히고설킨다.

마스터

'마스터'는 흥미로운 실화 모티브, 세 톱스타의 동반 출연, 100억 규모의 제작비까지 웰메이드 오락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우선 현실을 반영하는 범죄영화로서 장르적 매력이 떨어진다. 기상천외한 사기 사건의 전말은 전반 한 시간에 걸쳐 펼쳐지지만 복잡하고 지루하게 나열되며, 사회 풍자의 칼날 역시 무딘 편이다. 정계, 재계, 언론의 커넥션과 권력의 전복 관계를 통해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내부자들', '베테랑' 등 유사 장르의 영화와 비교하면 '마스터'는 가벼운 소품처럼 여겨진다. 

'마스터'의 톤앤매너가 지극히 오락지향적인 것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오락적 유쾌함과 극적 재미를 내내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배우들의 전작('내부자들', '검사외전', '기술자들')에서 차용한 듯한 캐릭터, 거창한 대사와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사로잡지만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운용된다. 사건은 연이어 발생하고, 인물은 복잡하게 꼬이며, 갈등은 점층적으로 커지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해진다. 

어디에 내놔도 시선을 끄는 배우들이지만, 어느 영화보다 매력적이지 않다. 세 주연 배우 모두 각자의 롤에 맞는 기능적인 연기를 펼치지만 어우러졌을 때 느껴지는 박진감이나 카타르시스가 크지는 않다.

'연기 9단' 이병헌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전작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악역임에도 입체적 캐릭터로 연민까지 불러일으켰다면, 진현필은 무엇이 악랄한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악인이다. 배우의 탁월한 개인기는 빛나지만,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강동원은 한 영화를 끌고가기엔 아쉬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관객이 심정적으로 가장 응원하게 되는 정의로운 캐릭터인 데다 본인이 가진 비주얼적 매력이 상당한데도 영화에서 가장 딱딱하고 생기 없게 여겨진다. 

예상외로 돋보이는 배우는 김우빈이다. 캐릭터가 다이내믹하고 연기를 맛깔나게 하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병헌, 강동원의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으로 설계된 덕분이기도 하다. 

마스터

감독의 전작 '감시자들'은 여성 캐릭터를 잘 활용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마스터'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 김엄마(진경), 신젬마(엄지원)는 기능적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두 배우가 가진 연기력과 매력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전반적인 연출력도 미진하다. 시나리오의 플롯이나 편집에서의 균형감, 배우들의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 조련술 모두 수준급이라고 볼 수 없다.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가 힘주어 촬영한 장면들은 이야기나 캐릭터 핵심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라기보다는 연출의 야심이나 배우의 연기력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불필요한 장면을 줄이거나 과감하게 쳐내는 편집의 묘가 특히 아쉽다.  

'마스터'가 토대삼은 실제 사건은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재가공될 여지가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반영을 통한 사회 풍자는 건드리기만 할뿐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은 찾기 힘들다. 영화는 사회적 공기와 기득권의 음모를 묘사하는데 큰 관심이 없고 사기꾼과 형사의 범인 잡기 놀이에만 집중한다. 그 비현실성은 이들의 현란한 추격전을 하나의 게임으로 관망하게 한다. 이 영화가 정한 노선이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라면 그에 맞는 안전한 결과물이긴 하다.

흥행 전망도 밝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제외하면 내년 설까지 뚜렷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봉 첫날부터 무려 1,448개(전체의 약 50%)의 스크린에서 상영돼 독과점 논란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 흥행의 가장 큰 복병은 기대치다. "최고급 재료로 어떤 맛을 냈을까?"와 같은 궁금증을 안고 극장으로 향한 관객에게 "겨우?"와 "기대 이상!"이라는 다소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상영시간 143분, 15세 이상 관람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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