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이원근을 눈여겨볼 것…속단하지 말 것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1.11 16:11 조회 681
기사 인쇄하기
이원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보통의 인터뷰 자리에서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마주 앉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 자석 배치는 ㄱ자 모양. 대화가 깊어지면서 인터뷰이의 상체와 얼굴은 인터뷰어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를 통해 배우가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가를 알 수 있었다. 

여느 신인처럼 수줍어하지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말은 빈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말간 얼굴에 화사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이원근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 제작 외유내강)에서 이원근이 분한 '재하'는 알 듯 모를 듯한 인물이다. 재하는 발레리노의 꿈을 가졌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임시 담임선생인 효주(김하늘)의 도움을 받아 도약한다. 재하는 선생에 대한 존경을 넘어선 금기의 선을 넘는다. 이 10대 소년의 과감한 몸짓은 순수와 악의의 경계 위에 있다.

재하를 보면서 프랑소아 오종 감독의 '영 앤 뷰티풀'(Young&Beautuful)의 이사벨(마린 백트)이 떠올랐다.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무지하다. 그 속을 알 수 없으며 때론 영악하다. 물음표 덩어리지만 어딘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원근을 통해 재하의 은밀하고도 위험한 내면을 들여다봤다.

여교사

◆ 물음표의 얼굴, 순수와 악의의 경계

"'여교사'는 너무너무너무 소중한 작품이에요. 제가 100살까지 산다 해도 이 작품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아요. 전환점의 의미가 있는 영화거든요. 이 작품을 찍고 난 뒤 드라마도 찍고 영화도 찍었어요. 가장 먼저 촬영한 이 영화를 약 1년 만에 언론시사회를 통해 결과물을 확인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어요. 설레면서 두렵고,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고. '드디어 보는구나!' 싶었죠"  

촬영을 마친 지 1년이 지났지만, 재하는 배우의 내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 같았다. 이원근은 '재하'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저는 제 나름대로 준비하고 촬영장에 갔는데 감독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감독님은 "얜 18살짜리 고등학생이야. 머리보단 행동과 말이 먼저 나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특히 재하는 어린애가 어른에게 뭐 사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주변에 있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잘 관찰해 보라고. 성인의 호흡이 아닌 불완전한 사춘기 아이의 호흡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셨어요"

김태용 감독은 술자리에서 이원근의 목소리를 녹음해 건넸다. 이원근은 "감독님이 "이대로 해. 이게 재하톤이야"라고 하셨어요. 아마도 감독님은 만들어진 재하가 아닌 저의 자연스러운 톤이 묻어나는 재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여교사

이원근은 재하의 결핍에 주목했다. 혜영(유인영)에 대한 감정도 모성애의 결핍과 연관 지어 해석했다.

"재하는 엄마 없이 아버지하고만 살았어요. 혜영에게서 어머니가 주지 못했던 사랑을 느낀 거죠.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머니가 주는 사랑처럼 느꼈을지 몰라요.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엄마라면 이랬을까?'하는 마음인 거죠. 그러니까 떠나려는 혜영에게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잘할게'하고 아이처럼 매달릴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효주에 대한 재하의 감정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이원근은 "일말의 감정도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재하는 철저히 목적에 의해 효주에게 다가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예요. 강아지가 주인에게 달려와서 예뻐해 달라고 마구 안기잖아요. 감독님이 재하는 한 주인(혜영)에게만 사랑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라고 설명하셨고, 저 역시 그 해석에 동의했어요. 다만 재하의 감정이 불분명해 보이도록 연기하긴 했어요. 처음에 공연 보러 가자고 하는 것도 진심인듯 진심 아니게 말했죠. 공연을 다 보고 나와서 효주에게 "나 집에 안 가요"라고 말할 때도 끼를 부리되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표현했어요. 인물의 행동이 다소 모호하게 보일 수 있도록요."

이원근

◆ "베드신보다 어려운 건 인물 내면을 이해하는 것"

이원근은 '여교사'에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베드신을 촬영했다. 신인 배우의 입장에서 두 선배 여배우와의 연이은 베드신은 부담이었을 터.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솔직히 처음 대본 봤을 때는 걱정을 안 했어요. 베드신은 그냥 무술의 합 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촬영 당일이 되니까 저를 안심시켰던 감독과 스태프들이 긴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 거예요. 선배와 후배를 떠나서 남자와 여자잖아요. 남자인 제가 위축돼 있으면 여배우가 긴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제가 들은 바를 선배들에게 얘기해 주고 조율해 나갔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오히려 스킨십과 베드신은 빨리 끝났던 것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신 중 하나로 엔딩신을 꼽기도 했다. 세 인물의 파국이 극적으로 펼쳐지는 시퀀스다. 재하는 이 장면에서 오열하며 무너진다. 

"그 장면은 촬영 마지막 날 마지막 신이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너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떨 거 같아?"라고 물었어요. "엉엉 울겠죠"라고 답했어요. 감독님이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우는 영상을 제게 보여주셨어요. 또 사랑하는 부인이 죽어서 인공호흡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남편이 괴로워서 발버둥 치는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도요. 그러면서 "이게 정말 슬픔이다. 꼭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슬픈 게 아니야"라고 하셨어요. 마지막 오열 신은 감독님의 이런 꼼꼼한 디렉팅으로 완성된 장면이에요"

이원근

◆ 김태용 감독이 알려준 디테일의 힘

이원근은 '여교사'를 촬영하면서 작은 디테일이 주는 차이를 크게 느끼고 배웠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어요. 대사가 이렇게 쓰여있고,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그게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라고 촬영 초기의 시행착오를 회상했다.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전적으로 중요한 현장이기도 했다. 김태용 감독은 재하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원근은 그 그림 안에서 제대로 된 구현을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반전과 같은 충격을 안겨주는 체육관 신에 대해 감독님은 "관객들이 재하가 얼마나 무서운 짓을 하는지 알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설마 저한테 뭘 바라고 잘해주신 건 아니죠?"이 대사를 들으면 효주와 관객들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겠어요? 재하의 영악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독특하게도 모니터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원근은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너무 궁금했는데 감독님이 "너 나 못 믿어?"하시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갔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어떤 현장보다 감독과 밀착돼 있었던 현장이었다. 이같은 환경은 이원근을 긴장하게 했고, 그 긴장은 연기의 집중력으로 이어졌다. 그 어떤 작품보다 깊게 연기에 빠져들었고, 섬세하게 인물의 여린 감정들을 잘 뽑아냈다. 

영화의 끔찍한 결말에 대해 이원근은 "효주가 재하에게 내린 벌"이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잖아요. 그것에 대한 대가 같은 거죠. 누군가의 OO이 지워지는 방식으로...가장 끔찍한 벌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부연했다.

이원근

◆ 연기력 논란조차 쿨하고 담담하게

이원근의 연예계 데뷔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데뷔 전 자신에 대해 "공고를 다닌 학생"이었고, 연예계에 발을 딛지 않았더라면 "쇠를 닦는 기술직 근로자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운명은 달라졌다. 스무 살의 나이에 현재 소속사인 유본컴퍼니 유형석 대표에게 길거리 캐스팅된 뒤 진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원근은 "어린 시절부터 낯가림이 심해 누구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쪽 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데뷔한 이원근은 또래의 배우들과 달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케이스는 아니었다. 드라마 '유령', '일말의 순정', '비밀의 문', '하이드 지킬, 나', '발칙하게 고고', '꽃미남 브로맨스', '굿와이프' 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천천히 연기 보폭과 인지도를 넓혀갔다.

2016년과 2017년은 이원근에게 성장과 도약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 '그물'과 '여교사', '그대 이름은 장미', '환절기', '괴물들'까지 무려 5편의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먼저 공개된 '그물'에서는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의미 있는 성장통으로 기억될 것이다.

"솔직히 저는 재능있는 사람이 아니라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다 외우고 작품을 이해하는 것뿐이에요. 더 노력해야죠. 이 일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만, 반대로 늘 고민하고 부딪혀야 해서 속상하고 괴로울 때도 많아요. 저의 부족한 모습에 의견을 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도 인간이지라 조금은 속상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자양분이 된다는 건 알아요.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걸려도 성장하는 게 좋잖아요. 좋은 소리, 쓴소리 잘 받아들여서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배우가 될게요"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