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조인성 "사회 풍자한 '더 킹', 현실 직시가 돼버렸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1.16 09:52 조회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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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8년, 조인성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혹자는 TV에서도 볼 수 있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대의 청춘 배우를 대형 스크린으로 마주한다는 것, 그것은 조금 다른 의미다.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 제작 우주필름)은 조인성을 기다린 관객들에겐 더할 수 없는 반가움이다. 데뷔 19년 차를 맞은 배우의 매력과 역량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풍자와 해학이 있는 한편의 마당놀이"를 만들고자 한 한재림 감독의 말을 인용하자면 조인성은 마당극의 주인공이고 동시에 변사다.

주인공 박태수의 흥망성쇠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대한민국 30년 격동사를 동시에 아우른다.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이 블랙코미디에서 조인성이 연기한 박태수는 사실상 악인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득권의 타락과 반성의 시선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의미심장한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악의 계보를 끊는 유일한 해법까지 제시한다. 이때 클로즈업 되는 조인성의 얼굴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조인성의 배우사에 있어 첫 번째 전기가 될 역작 '더 킹'의 치열했던 현장을 전한다.

더킹

Q. 영화는 무려 8년 만이다. 

A. 솔직히 마음을 파고드는 작품이 없었다. 알려졌다시피 제대 후 영화 '권법'을 기다리다가 제작이 지연되면서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하게 됐다. 그리고 또 영화를 기다리다가 노 작가님 드라마를 한 번 더 했다.

Q. 그리고 마침내 '더 킹'을 만난 건가?

A. 2015년 5월쯤이었다. 독일행 비행기에서 시나리오를 읽었다. 마음에 쏙 들어서 한재림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고, 귀국 후에 만났다.

Q. 이 이야기의 강렬한 매력은 어떤 것이었나?

A. 한 인물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런 세상이 있어'가 아니라 내가 보는 주관적 세상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재밌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박태수의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것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나이에 어떤 고민을 했고, 선택을 했으며 앞으로 다가올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나는 또 어떻게 돼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 또 '더 킹'이라는 제목, 누구나 자신이 속한 카테고리 안에서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그것을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게 공감이 가고 좋았다.

Q. '비열한 거리', '쌍화점' 등 그간 어둡고 묵직한 스타일의 영화를 선택해 온 것과도 다른 선택이다.

A. 어릴 때는 연기로 인정받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도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에서는 벗어났다. 물론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노희경 작가와 작품을 연이어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위로를 받았다. '더 킹'은 장르를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의 매력에만 집중해 선택한 작품이다. 장르는 보는 사람들이 규정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Q. 많은 영화의 제목, 느낌, 예고편 등을 통해 상상했던 이야기와 결과물의 톤 앤 매너가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묵직함을 예상하고 영화를 봤다가 경쾌한 풍자극 한 편 보고 가는 반전이랄까. 

A. 실제로 조금씩 다르게 보시더라. 가벼운 정치극이구나 하는 사람도 있고, 권력 게임을 다룬 영화치고는 가볍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더라. 한재림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하고 계획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더 킹'은 상업영화고, 15세 관람가다. 그 선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상업성을 배제했다면 감독님도 좀 더 세고 유니크하게 갔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더킹

Q. '더 킹'은 박태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박태수의 입(내레이션)과 행동으로 극이 진행된다. 연기에 내레이션까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A. 맞다. 영화 3~4편 찍은 느낌이었다. 총 104회차 중 90회차 넘게 촬영장에 나갔다. 요즘은 멀티캐스팅이 많아서 배우 여럿이 비등한 분량으로 촬영되는 경우도 많은데 '더 킹'은 내 분량이 집중적으로 많았다. 걔다가 내레이션까지 있으니 부담이 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후시녹음을 했던 양수리가 방이동인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거? 내레이션 녹음을 할 때는 톤을 다양하게 시도해 봤다. 때론 감정적으로 때론 드라이하게 또 감정을 넣었다 뺐다 변주해 가며 했다. 감독님이 그 톤과 수위를 잘 잡아주셨다.

Q. 한재림 감독은 섬세한 디렉팅을 하기로 유명한 연출자다.

A. 나는 너무 잘 맞았다. 감독님은 '예민'이 아니라 '예리'하시다. 배우 입장에서는 감독이 배우보다 더 예리하면 좋다. 후회가 덜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감독이 "여기까지!"라고 해주는 게 좋았다. 

Q. 주인공 박태수의 삶을 10대부터 40대까지 직접 연기했다. 

A. 40대까지가 딱 좋았다. 그 뒤로 나잇대가 넘어가면 분장을 해야 하고 머리를 염색해야 하니까. 그러면 아무래도 "어색한데..."라고 여길 여지가 많아진다. 밑으로는 10대까지가 마지노선이었던 거 같다. 10대의 내 모습이 좀 어색해도 그 친구가 형편이 좀 어려웠으니까라고 설정돼 있으니..그나마 다행이었다.

Q. 태수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보니 캐릭터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그래서 매 장면 정답신을 하나 만들어 뒀다. 그걸 먼저 찍고 나머지는 방향을 틀어 또 다르게 찍곤 했다. 우리는 그걸 현장에서 은어로 "가꾸를 튼다"고 표현했다. 감독님이 그때 그때 방향을 틀어서 디렉팅을 주시며 그에 따라서 변주를 했다. 가이드 라인이 정해져 있어서 그 안에서 놀기가 편했다. 감독님은 지나치게 심각한 것도 싫어하시고 일상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연기톤을 원했다. 변주의 폭을 정해놓고 그때그때마다 운용되는 스타일이었다. 나로서는 무척 편했다.

Q. 몇 회차 촬영이었나?

A. 총 104회차였고, 난 90회차 넘게 소화했다. 사실 처음에 걱정했던 게 내 얼굴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만약 이 영화가 잘 안 되면 조인성의 연기 부족 혹은 한재림의 연출력 부재 이런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정면으로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처음엔 부담이었지만 영화라는 게 다 같이 만들어 가는 거더라. 감독님은 "인성 씨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저도 있고 (정)우성 형도 있고, 촬영 감독도 있고, 조명 감독도 있고, 우리에겐 스태프들이 있어요"라고 안심시켜 줬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부담을 나누고. 공동의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했던 게 너무나 좋았다.

더킹

Q.'더 킹'은 태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끌고가는 가운데 주변 인물들과 얽히면서 다양한 사건이 펼쳐지는 구조다. 배우들과의 조화도 중요했을 것 같다.

A. 인물 간 설정이 되게 좋았던 게 우성 형은 실제로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배다. 극중 태수와 강식의 관계로 자연스레 이입이 됐다. 성우 형은 실제로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친해졌다. 태수가 동철과 친해지듯 말이다. 현실이 영화 속 설정으로 그대로 이어진 느낌이었다. 무리하게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Q. 5살 연하의 류준열과 극중에서 친구로 호흡을 맞췄다. 

A.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표정에서 오는 담백함이 있다. 큰 매력이다. 내가 뜨겁게 연기하면 그 친구는 무표정의 페이소스로 받아준다. 그게 잘만 붙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무척 열심히 하는 친구고 또 내가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을 펼치는 친구다. 즐거웠다.

Q. 오랜 기간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던 정우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각별한 의미였을 것 같다. 

A. 데뷔 초 정우성 닮은 꼴이란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고, 또 내가 많이 따라했다. 데뷔 초 내 모습을 보면 알 것이다. 이번 영화는 우성 형이 내게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내가 우성 형과 한 작품에서 연기할 수 있었겠나. 우형 형은 주연도 하셨다가 조연도 하셨다가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신다. 나도 그 길을 따르고 싶다. 

Q. 태수란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며 연기했나? 개과천선하는 악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A. 나는 이 영화가 검사, 검찰 내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적인 영화가 아니고, 특정 직업을 구현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서 좋았다. 무엇보다 태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우리 모두 말 못 한 비밀 하나씩은 있지 않나? 그게 노출되면 다른 평가를 받을까봐 숨기고 싶은 거 말이다. 나도 말 못 한 비밀이 있는데 이를 테면 연애라던가, 혹은 어린시절 동네 슈퍼에서 물건 하나를 훔쳤다던가 하는...태수에서도 그런 비밀이 있고, 훗날 대가를 치른다. 미국 영화처럼 세게 갈 수도 있지만 태수가 너무 나쁜 놈이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감독님은 "관객이 태수를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함께 고민했다.

조인성

Q.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자면?

A. 태수가 사법시험을 패스한 후에 행가레를 받으며 활짝 웃는 얼굴이 나온다. 그 스스로 '아싸!' 하는 행복한 표정이 드러난 장면이다. 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나' 싶더라. 내 인생의 찰나지만 꽃 같은 순간 말이다.

Q. 조인성에게 그런 '꽃 같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면 언제일까.

A. 그 옛날, MBC 아카데미에 붙었을 때?(웃음) 알고 보니 대부분 붙는 거더라. 난 오디션으로 들어간 거라 이제 뭐가 될 줄 알았다. 그때 기뻐했던 내 얼굴이 기억이 난다.

Q. 의도하지 않았지만 현 시국을 예측하고 관통하는 듯한 영화가 돼 버렸다. 그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

A. 이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정농단 같은 건 상상도 못했다. 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지 했었다. 이 영화를 한다니까 주변에서 "용기 있네" 했다. 난 "무슨 용기야. 영화가 좋으면 당연히 하는 거지"라고 했었다. 우리는 풍자하자고 만들었는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돼 버렸다. 웃자고 한 건데 현실이 돼 버려서 웃음 포인트 하나를 놓친 감도 있다. 영화는 좀 더 과장하고 틀었는데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직시가 돼 버렸다. 그러니 감독님도 신내린 거 아니냐는 소리 듣고, 영화사 이름(우주필름)도 오해를 받고. 굿판에 그리 공감할 줄이야.(웃음) 그게 사실로 밝혀졌다는 게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는데 그게 영화에 나오니 보는 사람은 얼마나 놀랍겠는가.

Q. 한 남자의 30년사를 연기하면서 그야말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이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색채가 조금씩 나는데, 당신의 연기에선 '더 울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각나기도 하더라. 한 톤 업돼 있고, 약간은 과장된 연기톤이라는 측면에서 그랬다. 

A. 난 너무 좋았는데 해보니까 어렵더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좋아하는 거랑 하는 거랑은 또 다르더라.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영화를 보며 늘 저런 에너지를 뿜어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참고했다기보다는 '나는 내 스타일대로 이렇게 보여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영화는 내 연기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다. 시트콤 '논스톱'을 하면서 (실제 내 모습에 가장 가까운)까부는 연기도 해봤고, '피아노', '발리에서 생긴 일'에선 강렬한 연기, '디마프'에선 감성 연기도 했다. 이런 스펙트럼을 '더 킹'에서 모두 보여주고자 했다. 감독님이 "인성 씨에 대한 어떤 선입견 같은 게 있었는데 함께해 보니 태수랑 닮은 데가 많아요"라고 하더라. 기분이 좋았다.

Q. 조인성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이 많다. 이름값에 대한 책임감도 클 것 같다.

A.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했다. 그저 영화를 찍는다는 게 좋았고, 내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게 좋았다. 손익분기점, 그런 것도 몰랐다. 이제는 책임감, 이름값을 포함한 퀄리티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론 '이런 마음이 내 발목을 잡으면 안 되는데...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해봐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조인성

Q. '더 킹' 개봉일에 '공조'가 개봉한다. 경쟁의식도 생길 법하다.

A.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난 언제나 경쟁 상황에 놓여 있었다. 드라마는 9시 50분,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무조건 3~4편의 작품과 싸운다. 그렇게 십몇 년을 해왔기 때문에 경쟁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이제는 상대를 꼭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손님이 오시면 "잘 만들었으니까 재밌게 봐주세요" 하는 자신감. 적어도 민망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으니 기꺼이 손님을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서 봐달라고 하는 건 독재 아닌가.(웃음)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Q. 그간 드라마를 많이 했다.

A. 드라마가 편하긴 했다. 그걸로 출발했으니까. (배)성우 형은 연극이 편하다더라. "연극은 두 시간만 하면 돼~ 추운 날 대기 안 해도 되고 더운 날은 에어콘 나오고. 이건 하루 온종일 찍잖아. 그렇다고 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라고 하더라. 과거에는 드라마는 VTR, 영화는 필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TV도 영화도 모두 디지털이다. 영화를 보시는 분이 TV를 안 본다거나, TV를 보는 사람이 영화를 안 보지 않는다. 매체에 따라 시청자, 관객이라 구분될 뿐 경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이 뚜렷하지만, 대중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선사하는 게 내 목적이여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Q.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도전적이고 묵직한 영화를 선택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실제로 작품선택에 영향을 끼쳤나?

A. 왜냐하면 드라마에선 이런 소재를 쉽게 다루지 못한다. 영화는 제시, 드라마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껏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하는건 영화에서, 드라마에서는 공감을 중요시한 선택을 했다.

Q. 이번 영화에선 김아중과 짧은 멜로 호흡이 있었다. 어땠나?

A. (김)아중 씨는 되게 힘들었을 거다. 드라마 '원티드'를 찍으면서 이 영화를 병행했으니. 그런데 성격이 정말 나이스 하더라. 현장에 와서도 감독님과 치열하게 토론했다. 나도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조연을 해봐서 아는데 그렇게 치열하지 않으면 까딱하다가 자기 캐릭터를 놓친다. 많이 나오면 캐릭터 구축이 어느 정도 되는데 짧은 분량은 그게 쉽지 않다. 현장에서 아중 씨의 모습을 보면서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Q. 고현정, 송혜교, 하지원 등등 톱여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았다. 여배우와 잘 어우러지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다면?

A. 그간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은 모두 어떤 위치에 있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이지(easy)하진 않지만 나이스(nice)하다. 성격이 시원시원하다는 거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한다. 프로들끼리 만났을 땐 그게 편하다. 상대가 잘해야지 나도 빛난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멜로는 '네가 잘해야 내가 잘 나오는거고, 내가 잘해야 네가 잘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자존심 세우면서 상처 주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Q. 어느덧 데뷔 19년 차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조인성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A.어느 날 차태현 형이랑 이야기하다가 "형, 나 19년째야. 오래했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짠함이 있다. 한때는 그 모습을 부정하려고도 해봤다. 그땐 너무 '배우'에 집착하면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나를 심하게 채찍질 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내게 너무 혹독했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나를 인정해 줘야겠다 싶더라. 스스로에게 견뎌내줘서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더킹

Q. 20대부터 '진짜 배우'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A.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보니 먹고사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돈으로 평가받는 사회지 않나. 맞는 말을 하더라도 돈 없으면 약간 무시당하고...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런 걸로 속상해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나는 내가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날 키운 거다. 아니 우리 가족, (차)태현이 형, 매니저들, (고)현정 선배 그리고 동료들이 날 도와준 거다. 앞으로도 그 힘으로 쭉 갈 것 같다.

Q. 치열했던 시절이라 하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주먹신이 불현듯 떠오른다. 

A. 하하. 근데 그땐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더 이상 작품이 안 되면 힘들어질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다. 지금 보면 되게 부담스러운 연기다. 그러나 그 역시 '그땐 그랬지'라고 인정해 줘야 한다. 지금은 힘을 좀 빼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다 과정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10년 후에는 좀 다른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Q. 영화 속 태수처럼 내 꿈과 진로를 정하게 된 어떤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면?

A.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정우성 선배를 봤을 때다. 그때 처음 '나도 배우가 될 거야!'라고 결심했다.

Q. 잘생긴 외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배우 한 번 해봐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A. 아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잘생기지 않았다. 너무 말라서...

Q. 요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올 텐데, 어떤 장르나 이야기들이 많은가?

A. 남북한 이야기? 요즘 그게 트렌드인가 보다. 하지만 그건 하고 싶지 않다. 분명 앞서서 시작한 누군가 1등이 될 텐데 따라가고 싶지 않다. '더 킹'도 어떤 이들은 '내부자들'과 비슷하지 않냐고 하는데 다르다. 시나리오나 각본을 고르는 기준은 신선함과 개성이다. 난 드라마 '미생'도 되게 신선하게 봤다. '도깨비'도 그렇고.

Q. 한 번쯤 호흡을 맞춰봤으면 하는 배우가 있다면?

A. 송강호 선배다. 두 편을 함께했던 한재림 감독님에게 말씀를 많이 듣기도 했고. 함께 연기를 하면서 한 수 배우고 싶다.

Q. 조인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청춘' 아닐까 싶다. 3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청춘'의 상징으로서 건재하고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청춘은 어떤 의미일까?

A.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청춘에 대한 정의가 나와서 많이 공감했는데,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청춘으로 살고 싶다. 새로워지려고 하는 노력, 그게 청춘이라고 한다면 난 아마 계속 청춘이라는 단어에 동경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다. 결혼했든 아이 아빠가 됐든 그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활동 기간도 오래됐고, 그만큼 대중들도 나를 많이 봐왔다. 신선함은 떨어질 수 있겠지만 계속 새로워지고 싶다. 단, 억지스럽게 않게 말이다. 

ebada@sbs.co.kr 

<사진 =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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