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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킹' 한재림 감독, 반골 기질이 만든 비틀기 미학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2.16 10:36 조회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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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관상'은 정극이었잖아요. 역사, 운명 앞에서 개인이 무너지는 이야기였죠. 그런 영화를 하고 나니 전작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처럼 어떤 사회와 현상, 인물을 비틀고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재림 감독에겐 반골 기질이 다분하다.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일반적인 패턴이나 형식을 따르지 않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다. 사랑의 이면을 다룬 '연애의 목적'이 그랬고, 조직폭력배의 비루한 일상을 담은 '우아한 세계'가 그랬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새로움과 낯설음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창작자의 비틀어진 시선은 흥미로운 결과물을 낳는다는 것이다. 뻔하지 않은 시각은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재림 감독은 조선 시대 비극의 역사를 관상과 결부시킨 '관상'(900만 관객 동원)으로 흥행의 감각까지 탑재했다. 

전작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킹'에서는 보다 큰 그림을 그렸다. '더 킹'은 2014년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가 2015년 3월경 완성됐다. 이 영화는 주인공 박태수(조인성)의 일대기를 그리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더킹

이 영화를 둘러싼 호불호는 생각보다 뚜렷했다. 호(好)는 대한민국 부패의 역사를 풍자와 해학의 터치로 그려내 오락적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극찬이었다. 무엇보다 묵직하고 어두운 주제를 마당놀이와 같은 풍자극으로 풀어낸 점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영화 속 세계가 현 시국의 거울처럼 다가오는 섬뜩함은 보너스였다. 

불호(不好)에 관해서는 여러 관점의 아쉬움이 쏟아졌다. '내부자들'처럼 긴장감 넘치는 전복의 드라마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생각보다 말랑말랑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또 다른 급부에서는 과도하게 친절한 영화의 형식이 유치하다는 혹평도 나왔다.  

한재림 감독은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했다. 정의에 반하는 인물이 주인공이고, 부패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중의 반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관객을 어떤 지점으로 끌고 가느냐를 고민했다. 일례로 동철이가 태수를 데리고 룸살롱을 갈 것이냐 펜트하우스를 갈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만약 룸살롱을 갔으면 영화는 훨씬 무거워졌겠지만, 인물에 대한 거리 두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펜트하우스를 택한 것은 관객이 태수를 따라오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룸살롱에서 인물의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래 우리 역사가 그랬지'라며 인물에 거리를 뒀을 것이다. 태수에 대해서 반은 이해하고 반은 동조하면서 그 인물의 욕망을 따라오기를 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엔딩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극적인 감정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는 박태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사건과 인물이 안내되고 설명된다. 1인칭 내레이션 기법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수월한 한편 지나친 친절함은 영화를 긴장감과 호기심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더킹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특히 '좋은 친구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풍자 터치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다.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 자신의 철학대로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만 주인공의 맹신 자체가 곧 감독의 풍자고 해학이 된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때 좋은 방식이다. 관객을 그 세계로 끌고 들어가서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이면까지 제시한다. 스콜세지 풍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영화 작법이다. '빅쇼트', '부기나이트'도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나. 외국 영화에선 흔한 방식인데 한국에서는 거의 처음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관객들이 재밌어하기도 하고 낯설어하기도 한 것 같다" 

한재림 감독은 내레이션에 대해 "박태수의 선택이 개인의 비극과 사회적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면 관객들이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좀 더 많이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인물을 객관화시키기보다는 관객과 인물과 좀 더 밀착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검사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를 보여줬다. 이것은 취재의 힘과 가공의 맛이 더해진 결과였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수많은 검사를 만났다. 그러나 영화가 100%의 현실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전제했다.

"내가 만나본 검사들은 누군가의 아빠, 엄마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의외로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정치 검사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폭로한 글을 참고했고, 검찰 출입 기자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진짜 검사들에게는 가정법을 써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사건에 권력자가 연루돼 있고 그걸 덮어달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대체로 거절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권력이나 부에 대해서는 냉정한 편이었다. 오히려 선배 검사가 찾아와서 무릎을 꿇으면 냉정하게 거절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라.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더킹

픽션과 논픽션의 적절한 묘사가 '더 킹'의 세계를 완성한 근간이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도 흥미로운 지점이 꽤 있다. 오프닝의 뉴스릴부터 인물간의 대비에도 사용되는 '데칼코마니'가 대표적이다.

"앵글이든 샷이든 내겐 중요한 방식이었다. 모든 샷을 접어서 혹은 대칭해서 찍으려 했고. 수직과 수평을 많이 이용하려고 했다. 자동차 사고가 오프닝에 등장하고 뒤에 다시 나오는 식의 대칭, 스쳐 지나간 인물이 후에 중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라던가 씨를 뿌려놓은 것을 나중에 다시 거두거나 대칭이 기울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양상을 이야기 안에 녹아내고자 했다"

인물, 사건 간 데칼코마니도 두드러진다. 박태수(조인성)와 최두일(류준열), 한강식(정우성)과 김응수(김의성)는 한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재림 감독은 "최두일과 김응수는 각각 박태수와 한강식이 권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욕망을 외면화한 인물이다. 두 인물이 등장할 때 조명의 사용을 통해 상상 속 인물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인만큼 권력의 역사를 묘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한재림 감독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의 실제 영상을 삽입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면서 반드시 등장시켜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탄생과 변화, 군사독재부터 참여정부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명과 암을 데칼코마니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어떤 이질감을 주고 싶었다. 우리가 미국 CNN이나 영국 BBC 뉴스를 보면 굉장히 낯설게 여기지 않나? 한국의 현대사도 그런 시각으로 보기를 바랐다.

더킹

영화에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장면은 박태수와 한강식에 큰 전기(轉機)가 된다. 더불어 그 장면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큰 임팩트를 남겼다. 한재림 감독은 이 작품을 내놓기 전 공공연히 노무현 대통령이 영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곤 했다.

"군사독재 시대 때는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첫 투표가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할 때였다. 그 무렵부터 2002년 월드컵이라던가 남북 정상 회담도 열리고 큰 변화가 있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진짜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탄핵 사태가 일어났고, 몇 년 뒤 서거하는 일이 생겼다. 내겐 큰 트라우마가 됐다. '아, 내가 큰 착각을 했었구나. 우리 사회는 엄청난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구나. 그들에게 노무현의 당선은 하나의 에러나 오류에 불과했겠구나' 싶더라. 서거 뉴스는 참혹했다. 멀리서 그 분의 정의와 신념을 늘 존경했는데, 그 사람의 삶에 대해 큰 빚을 졌고 모른 척하며 산다는 것이 미안했다. 늘 마음속의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겠구나 싶었다."

또한 보너스라 하기엔 너무나 소름돋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미심장한 웃음 장면도 삽입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그리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쓴 시나리오니까 한 번쯤 등장해야 할 텐데, 그래야 지금의 현실과 과거를 반추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그분의 인상이 너무 강했다. 시나리오에도 있었지만, 시국 때문에 빼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식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소신대로 넣었다. 지금의 현실과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효과도 있을 테니"

'더 킹'은 권력의 막강한 힘도 보여주지만 반대로 무상함도 보여준다. 한재림 감독은 "권력은 퍼레이드 같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 옛날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그들이 군중 앞에서 퍼레이드 같은 걸 했다. 어린 마음에 권력자를 우상화하는 세리머니처럼 여겨졌다. 만들어진 권력, 의전에 취해 사는 사람들의 추악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재림

엔딩 장면에 대해서도 고민은 많았다. 태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버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끝내 뺀 건 "중요한 건 당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뀐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태수의 삶만 보더라도 권력 앞에 서자라는 마음이 어떻게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을 만드는지를 보여주지 않는가. 그들에게 우리 개개인은 안 무섭겠지만, 개개인이 모였을 때 발휘되는 힘은 엄청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더 킹'을 봐준 500만 관객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흉흉한 시국에 이런 영화를 즐기기가 편치만은 않으셨을 텐데 더없이 고맙다. 개인적으로는 해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겠다"

한재림 감독은 벌써 차기작 준비에 돌입했다. 본인이 쓰고 있는 작품과 제안받은 각본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장르 영화에 대한 한재림 감독만의 감각이 있다. 정공법보다는 비틀고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흥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차기작은 정공법을 따른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익숙하면서도 재밌는 걸 해보고 싶다. 긴장감 있고 드라마가 강한 직선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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