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KBS 퇴사 고민정 아나운서 “해직 언론인 보며 자괴감 느꼈다”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2.20 13:54 조회 6,656
기사 인쇄하기
고민정 아나운서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유난히 또랑또랑한 말투가 귀에 박히는, 외모보다는 목소리가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방송인이었다. 책을 사랑했고, 시인과 결혼을 했으며, 보통의 삶과 고민에서 멀지 않은 방송인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았다.

그런 고민정이 난데없이 KBS 문을 박차고 나왔다. 머지않아 등장한 곳은 한 정치인의 북 콘서트 무대 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 이유도 궁금했다. 누군가에게는 꼭 들어가고 싶은 '꿈의 직장'으로 일컬어지는 그곳에서 고민정 아나운서가 사표를 쓰고 나온 이유는 뭘까.

고 아나운서의 남편 시인 조기영 씨는 이와 관련된 긴 글을 적었다. 글에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로 걸어가고 있는 부인 고 아나운서에 대한 걱정과 고민의 흔적이 가득했다. 14년 만에 KBS을 문을 열고 나온 고 아나운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민정 아나운서

Q. 갑작스러운 선택이다.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아직 캠프가 출범한 것도 아니라서 걱정이 많은 것 같다. '험한 세상이라는데 네가 잘 버틸 수 있겠니?'란 인간적인 걱정을 많이 해준다.”

Q.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다르게 얘기할 듯한데.

“사실 정말 친한 사람들은 '그래, 너답다'는 반응을 보인다.(웃음) 북콘서트 전까지 회사에는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었다. 형제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고민정 아나운서

Q. 남편이 쓴 글을 봤다. 어떤 고민을 함께했나.

“동반자인 남편과 많은 고민을 함께 나눴다. '선거가 끝난 이후의 삶을 후회하진 않을까?'란 고민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남편은 '그곳에서 당신이 할 일이 분명 있을 거다'라고 얘기해 줬다. '지나온 역사를 봐도 동떨어진 일은 아니'라고 했다. 아나운서가 되기 전의 상황과 비슷했다.”

Q.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도 남편의 조언이 있었나.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당신은 아나운서와 잘 어울린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게 첫 반응이었다. 퇴사를 고민할 때도 남편은 '만약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거라면 그 걱정은 내가 하겠다.'며 내 선택을 지지해 줬다.”

고민정 아나운서

Q. 남편의 글을 보면 고 아나운서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담겨 있어 인상 깊다. 11세 연상의 시인 남편과의 결혼으로 예상치 못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인과의 결혼이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결혼 7년 차쯤. 남편이 강직성 척추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알렸다. 지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움츠러들거나, 결혼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 때도 느꼈지만 전파는 타는 사람들, 연예인이든 아나운서든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하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남편은 문재인 전 대표와의 만남에 함께 자리에 나갔다고 들었다.

“마음을 정하고 나간 자리는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나갔다. 처음 보시곤 '죄송합니다. 제가 TV를 잘 못 봐서'라고 솔직히 말하셨다. 적당히 눙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웃음) 굉장히 정직하시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소 돈이나 권력으로 환심을 사려는 사람을 경계한다. 만약 어떤 자리를 보장했다거나 환심을 사려했다면 크게 실망했을 거다. 나에게는 중요한 철학의 문제이었다.”

고민정 아나운서

Q. 시점에 대한 고민은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왜 지금이었을까.

“절박함. 절박함이었다. 돌아보면 9년이라는 시간, 참 많이 괴로웠다. '힘들다'보다는 '괴롭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내 철학을 내 몸으로 실현할 수 없다는 괴리감이 컸다. 삶의 안락함과 현실의 사이에서 물론 많은 갈등을 했다. 지난해 첫 촛불집회에 가족과 함께 광장으로 나갔다. 그 때 심정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미래가 없을 것 같다'라는 절박함이었다. 그곳에 나온 시민들과 똑같았다.”

Q. 언론인으로서 지난 9년간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언론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나운서라고 하면 언론인으로만 보지 않는다. 진실을 파헤치거나 뉴스를 기획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나운서는 최종 전달자로서 언론인이다. 많은 고민을 했다.”

Q. 지난 몇 년 동안 아나운서로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해 왔다. 2010년 해직자 문제를, 2013년 '추적 60분' 국정원 편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당시 SNS에 글을 적었던 일을 기억한다.

“선배 언론인들을 후배들에게 더 나은 언론 환경을 지켜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든 거였다. 당연히 남은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의 복권을 위해 투쟁을 해야 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답답함도 있고 자괴감도 있었다. '내가 언론인이 맞는가'라는 고민도 많았다.”

고민정 아나운서

Q. SNS 글을 쓴 것으로 회사에서의 난처했던 일도 있었을 텐데.

“2008년 8월 8일, 사복 경찰들이 노조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회사 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전쟁이 났더라도 방어받아야 마땅할 언론사가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개인공간인 SNS에 글을 썼다. 예기치 못하게 크게 기사화가 됐다. 당시 얘기가 오가던 프로그램이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그들의 고통과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갖고자 했다.”

Q. 2014년 국가의 안타까운 상처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의 현실을 드러냈던 사건이기도 하다.

“그 때가 둘째가 40일 정도 됐을 때다. 젖을 주는데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를 봤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상황이 바뀌었다. 인간적인 미묘함이 들었다. 난 갓 태어난 핏덩어리를 살리려고 젖을 물리는데, 저 차가운 바다 속에서 펄떡이는 어린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고 아나운서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을 이어갔다.) 생사가 갈리는 지점에서 참 많이 괴로웠다. 그런데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차가운 광장에서 진실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이 비상식적인 현실이 안타깝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Q. 선거 이후 상황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상황이 많다.

“나도 정말 궁금하다. 성격상 그 이후를 잘 내다보지 않는다. 아나운서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교도 아니었고, 학점도 스펙도 없었고, 주위에 방송에 대해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 때도 '시험을 보고 결과에 깨끗이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아나운서에 도전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자꾸 생각하면 계산하게 될 테고. 그럼 내 행동도 달라질 거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민정 아나운서

Q. 고 아나운서의 현재 역할은 무엇이라고 파악하고 있나.

“가장 잘하는 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거니까. 어려운 정치의 언어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의 바닥 민심을 일상생활에서 전달할 수 있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14년 동안 해왔던 거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게 아닐까.”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kykang@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