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싱글라이더' 이병헌이 표현해낸 외로움의 언어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3.03 09:54 조회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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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외로우신가요?"

이병헌에게 묻고 싶었다. 연기로 표현해낸 '외로움'의 원형에 대해 말이다. 그의 연기에서는 뼛속 가득 쌓인 듯한 쓸쓸함을 정서가 느껴졌다.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로우며, 우리는 모두 외로움과 싸우며 산다'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영화, 그게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다.

'싱글라이더'의 카메라는 주인공 재훈(이병헌)의 동선을 묵묵히 따라간다. 재훈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 시드니의 곳곳에 머물며 사유하고 고뇌한다. 말보단 표정으로, 표정보단 분위기에서 인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병헌의 풍부한 감성과 절재된 표현력이 만들어낸 '외로움의 언어'가 돋보였다. 

배우는 이 영화에 대해 '운명'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며 애정을 드러냈다.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달려오며 내-외연을 확장한 이병헌에게 이 작품의 어떤 점이 그리도 특별했을까.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예전엔 '번지점프를 하다', '중독', '그해 여름' 같은 영화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와 감성이다. 그런 작품들도 적지 않게 기획되고 만들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귀해졌다. 특히 요즘처럼 범죄, 비리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지 않았다. '싱글라이더'의 시나리오를 읽는데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는 그 '쓸쓸함'이 좋았다"

같은 상황에 놓이지도, 동일한 감정 상태에 휩싸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병헌이 강재훈에게 느낀 동질감이 있었다. 그건 후회보단 반성에 가까웠다.

싱글라이더

"작은 행복에 대한 소중함이랄까.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그런 느낌을 한 번쯤 가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간 쉼 없이 달렸다. 미국에서 '매그니피센트7'를 찍으면서 그 중간에 '마스터'를 찍었다. 그리고 '마스터'가 끝난 뒤 호주로 날아가 '싱글라이더'를 찍는 식의 타이트한 여정이었다. '싱글라이더'는 잠깐 멈춰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앞만 보고 달리고 있더라. 그 기분도 참 묘했다.

유능한 펀드매니저 재훈처럼 이병헌도 잘 달리다가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 뒤돌아볼 여유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이병헌은 이 영화로 인해 가족에 대한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했다. 소중한 것에 대한 더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굳이 다른 어떤 걸 발견했다기 보다는 이 영화의 주제 자체에 공감했던 것 같다. 현재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이 영화를 촬영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고 또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화두는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남편이고, 아빠일까. 이병헌은 "일 하는 시간외에는 최대한 아이와 함께 하려고 한다. 이제 준후가 22개월이 됐다. 한국 나이로는 3살이다. 난 집에서 주로 힘쓰는 일을 담당한다. 아이가 호기심이 많아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데 아빠도 함께 해주길 원한다. 요즘 아들이 히어로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고 했다.

아들 준후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는 마블의 스타들이 아닌 로버트 태권브이라고. 시간이 나면 테마파크에데려가 로버트 태권브이를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이병헌

가정과 일의 균형도 잘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안정감은 커리어를 더욱 폭넓고 단단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이병헌은 누가 뭐래도 송강호, 최민식의 뒤를 잇는 연기파 배우의 계보다.

"아직도 '배우라는 직업, 연기라는 것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 가족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것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하고는 싶다. 물론 다시 태어났는데 다른 재능이 있거나, 이쪽 재능이 없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이라고 웃어보였다.

이병헌은 과거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경험을 예로 들며 "훌륭한 아티스트의 마음 속엔 늘 꼬마가 있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표현에 대한 부연 설명을 듣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뭔가가 자꾸 차단되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거다. 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자면 가지치기를 자꾸 해야하는 것 같은. 그런데 그 가지가 뻗어나가서 굉장히 새로운 것에 맞닿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꾸 철들고, 어른스러워지라고 강요한다. 장난감을 모으고 히어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면 "너, 나이 40에 그게 뭐냐?"라고 하기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가 창의적인 면을 차단시키는게 아닌가 싶다. 할리우드에서 어떤 유명 감독과 미팅을 했는데 자기 집에 놀이터가 있다더라. 그래서 내가 "아드님이 굉장히 좋아하시겠어요?"라고 했더니 "그거 내 놀이터야!"라더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저 사람은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구나. 누구나 마음 속에 어린 아이가 있고, 그걸 없앨 필요는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한 부담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과찬이지만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동시에 '이거 조금이라도 실망감을 주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영화 한 두편 할것도 아니고 계속 할텐데 뭘. 부담가지지 말자'라고 스스로 되뇌인다"라고 말했다.

싱글라이더

'싱글라이더'의 뜻은 1인 여행객이다. 제목이 주는 생소함은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병헌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제목은 '번지점프를 하다'다.(웃음) 당시엔 펼쳐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제목에 대한 반감이 싶했다. '싱글라이더'는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오토바이 영환 줄 알았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 어떤 영화보다 관객의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작품은 주관적으로 선택하지만 공개되기 전까지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객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일말의 불안함이 없어지고 그 순간, 행복함을 느낀다"면서 "관객 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 영화가 누군가의 가슴에 잔잔하게라도 파동을 일으킬 수 있었으면 한다"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영화의 구조적 특징과 반전은 크게 의식하지 않고 봐주길 바랬다. 그는 "반전의 충격보다 재훈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도 별반 다를게 없지'라는 깨달음, 그게 반전보다 크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관람 포인트를 짚어줬다.

'싱글라이더'는 고은의 시 '그 꽃'의 한 구절로 영화를 연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다시 한번 시구를 되뇌이며 영화를,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곱씹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bada@sbs.co.kr 

<사진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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