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조진웅, 연기의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3.23 14:30 조회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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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조진웅은 자신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다. 대중의 평가나 기자의 호평에도 마찬가지다. 손사래 치기 바쁘다. 예의 겸손일까. 기준이 엄격한 것일까.

때때로 인터뷰에서 나오는 워딩으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마도 빈말을 하거나 포장할 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앞뒤 맥락 없이 한 줄의 글로만 표현될 경우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진웅은 자신의 작품이나 연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그 어떤 배우보다 강하다. 

조진웅이 신작 '해빙'(감독 이수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해빙'은 얼었던 한강이 녹고 시체가 떠오르자, 수면 아래 있었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를 둘러싼 심리스릴러 영화. 이 영화에서 조진웅은 내과 의사 변승훈으로 분해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펼쳤다.

'해빙'은 꾸준한 관객몰이 끝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불호를 외치는 관객들은 영화가 당혹스러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여러모로 문제작의 반응을 얻고 있지만, 조진웅의 연기만큼은 이견이 없다.

해빙

인터뷰 당일 조진웅은 전날의 숙취로 고생하는 모습이었다. 동료들과 영화를 다시 본 그는 "우리끼리 이정표 삼은 지점이 있었는데 그걸 잘 지켜가면서 그래도 완주했구나 싶더라. 다행이다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해빙'은 시나리오가 단박에 읽힌 영화였다고 했다. 조진웅은 "재미가 있었다. 관객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갔다"고 말했다.

조진웅은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하고 경기도 변두리의 병원으로 온 내과 의사 승훈으로 분했다. 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선 촬영 내내 예민함을 잃지 않아야 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지고 모든 것을 잃은 승훈의 모습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을 생각하며 연기해 나갔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연기력을 다진 조진웅은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로 정평이 나있다. '해빙'에서 조진웅은 1인 심리극 같은 심도깊은 연기를 펼쳤다.

특히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취조실 시퀀스와 정신병원 시퀀스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배우의 힘만으로 끌고 가는 비극의 한 장면을 스크린에서 본 느낌마저 준다. 

"카메라가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장면 자체가 자연스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역시 그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몰입하며 계산 없는 연기들을 주고받았다. 독특한 체험이었다. 감독님이 컷을 안 하고 지켜볼 때도 많았다. 연기를 마쳤는데도 감독님이 컷을 하지 않아 "감독님, 컷 하셔야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진웅

연극적 느낌을 의도한 장면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수연 감독님은 어떤 신은 콘티 없이 가기도 하셨다. 또 여러 장면 중에서 생각지 못한 컷을 쓴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물에서 그 선택들이 납득이 가더라"고 전했다.  

'해빙'이 설계한 이야기 구조나 영화 중반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맥거핀은 관객을 현혹하기 위한 설정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관객을 가지고 논다고 꺼림칙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비판의 폭을 줄이는 것은 조진웅의 설득력 있는 연기다.

"스릴러 영화는 구조와 설정이 중요한데 관객들은 어떤 예상을 하고 영화를 보러오게 마련이다. 우리 영화은 인물의 기억이 조각조각이 흩어져있다. 영화를 쭉 따라가면서 그 파편들이 합쳤을 때 이런 그림이 나오리라고 예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관된 조각의 파편이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시는 분들은 조금 당황했을 것 같다"

연기 역시 계산하지 않고 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 캐릭터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고 감정을 표출할 거야'라고 계산하고 연기를 하니 재미가 없고 신명 나지 않았다"며 "감독님과 상의 끝에 변승훈이라는 캐릭터를 조진웅이 입었을 때 어떻게 될까 그것만 생각하고 계산 없이 연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극 후반부 내레이션 역시 역시 탁월하다. 배우에게 있어 발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조진웅은 "내레이션은 빼자고 건의했었다.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괜찮았다면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다. 조진웅은 내레이션 녹음을 앞두고 데미안 라이스의 '나인 크라임스'(9 crimes)를 들으면서 감정을 조율했다고 덧붙였다. 

인간 내면의 극한 감정을 연기한 것은 배우로서는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인간 조진웅에겐 어려운 작업이긴 했다. 그는 "승훈이라는 캐릭터가 조진웅이 입기에는 안 맞는 캐릭터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110사이즈인데 80사이즈를 입는 느낌이랄까"라고 촬영 당시의 고민을 말하기도 했다.

조진웅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 열연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을 즐기는 자신의 성격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조진웅은 "사실 모든 작품이 그랬다. 촬영을 시작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싶다. 그러다가 '아 몰라.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또 열심히 한다. 중간중간 어려움에 부딪히면 '감독님은 이걸 왜 내게 제안했고, 난 왜 한다고 했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위기가 넘어가면 다시 신명 나서 연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면서 '이게 딱!'이라고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면서 더 싫어지는 경우는 있지만"이라고 하는 조진웅을 보면서 가학적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masochist)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되게 힘들고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기 때문에 선택한다. '일단 가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는 것 같다. 배우는 모두 이런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편하잖아', '쉽잖아'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아무도 좋아하질 않더라. 괴롭고, 죽을 것 같이 연기해야 '재밌네'라고 하시더라."

그렇다면 관객도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죠. 관객들은 관음의 자세로 영화를 보시니까요"라고 위트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 고민 끝에 선택한 작품 중에서도 분명 기대 이상의 만족감은 준 작품이 있을 터. 그는 "만족했다기보다는 완주했구나 하는 안도감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배우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 스스로 100% 만족하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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