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틀을 깨고 싶다"…배우 유선, 새로움에 대한 갈증

강선애 기자 작성 2017.04.12 17:24 조회 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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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유선은 품격있는 단아함이 매력적인 배우다. 가정에 헌신적일 것 같고, 그러면서도 아줌마스럽지 않은 정제된 세련미를 갖고 있다. 아파트 광고에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등장하는 선한 웃음의 '예쁜 아내' 이미지가 유선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배우 유선의 시작은 지금과 달랐다. 드라마 '대망'에서는 액션 연기를 선보였고, '작은 아씨들'에서는 괴짜 소녀도 연기했다. 특히 영화 '가발', '검은 집' 등의 공포스릴러물에서는 섬뜩한 연기도 펼쳤다. 데뷔 초의 유선은 지금의 단아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날카롭고 강렬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기를 하며 그만큼 유선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 연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커지며 극과 극의 매력을 모두 담아낼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연기에 대한 도전과 집중은 대중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마저 바꿔버렸다. 물론 그 변화에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전환점들도 존재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극본 문영남, 연출 부성철)에서 연기한 신재순은 유선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초반 소극적인 태도로 끌려다니기만 하던 재순은 점차 자신의 인생과 사랑에 있어 주도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처음과 끝만 보면, 재순의 성격은 180도 다르다. 그 변화를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유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1부작을 달려오느라 지난 9개월간 '우리 갑순이' 속 재순이로 살아온 유선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선

# 재순이로 산 9개월, 많은 깨달음 얻었다

Q. '우리 갑순이'가 지난해 8월에 시작해 4월 8일 종영까지, 무려 9개월 동안 방영됐어요. 오랫동안 함께 한 만큼, 종영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저희 팀 모두가 마지막에 '끝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어요. 너무 아쉽죠. 쫑파티 때, 누구 하나 집에 가려 하지 않더라고요. 모두가 끝까지 남아 아쉬운 마음들을 털어냈죠. '우리 갑순이' 팀은 배우도, 스태프도, 정말 모두가 성품이 좋았어요. 그런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며 정이 많이 들었는데, 끝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마지막 촬영 전날에 집에서 펑펑 울었어요.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다'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에 촬영장에 가는데,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러 가는 느낌이었어요. 힘들고 무거운 마음으로 촬영장에 갔는데 날이 화창하고 햇살이 좋아서, 그 기운으로 화기애애하게 마지막 촬영에 임할 수 있었어요.”

Q. 긴 호흡의 드라마라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체력관리는 따로 못했지만, 다행히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다른 인물 촬영시간에는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촬영 스케줄이 빡빡하지 않고 재충전의 시간이 사이사이에 충분했죠. 작가님이 대본을 3주 앞서 써주셔서, 촬영을 준비하는 데도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리고 대본이 워낙 재미있어서, 배우들도 대본을 받으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곤 했어요.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대본을 기다리고, 연기하면서 행복한 작품은 '우리 갑순이'가 처음이었어요. 오랜 기간 촬영했지만, 그 기간이 전혀 힘들거나 고생스럽지 않고 감사했어요.”

Q. 재순이가 재혼에 실패하고, 전 전 남편과 잘해보려 했지만 그마저 파혼하고, 다시 전 남편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이 '우리 갑순이'의 후반부 재미를 책임졌어요. 드라마 제목이 '우리 재순이'라 불릴 정도로, 재순이의 인생 굴곡이 시청자의 큰 관심을 받았는데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재순이가 굉장히 파란만장했잖아요? 인생의 굴곡이 큰 인물이다 보니 '재순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에, 또 풀릴 듯 안 풀리는 재순이의 꼬인 삶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청자분들이 같이 감정이입하고 봐주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다 '재순이가 이제 좀 잘 됐으면 좋겠다'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재순이를 응원해주신 것 같아요.”

Q. 초반의 재순이는 답답한 모습들 때문에 '고구마'로 통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저도 답답했어요. 시청자도 그 답답함을 느꼈고, 그게 '쟤 좀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과 응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절 애처롭게 봐주시는 시청자가 많아서, 돌이켜보면 초반부터 지원세력을 얻은 느낌이에요. 오히려 저한테 힘이 됐어요.”

Q. 그런 재순이가 중후반부에는 확 달라졌죠. 부모를 하늘같이 받들고 남편 말에 순응하던 재순이, 할 말은 하면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런 재순의 변화를 연기하기엔 어땠나요?

“처음엔 주눅 들어 있던 재순이 나중엔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발로 차기까지 하며 대찬 인물로 변했어요.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에요. 여자가 힘들게 살다 보면 충분히 대차질 수 있어요. 척박한 상황에서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다보면, 고왔던 여자라도 변할 수밖에 없죠. 그런 재순의 변화를 연기하기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점점 확장되어 가는 재순이를 표현하며 통쾌했어요. 재순이의 성장이, 마치 저 자신의 성장인 것처럼 기분 좋았고요. 한 드라마에서 이렇게 큰 변화 곡선을 가지고 성장하는 인물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마치 두 인물을 살아낸 것처럼 많은 걸 경험하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해요.”

유선

# 남편, 배우의 길을 누구보다 지지해주는 사람

Q. 재순이처럼 유선씨도 딸이자 아내이고 엄마인데, 실제 유선씨는 어때요?

“재순이를 연기하면서 실제의 절 돌아보며 부족한 모습은 반성하게 됐어요. 재순이로 산 9개월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재순이는 부모님한테 잘했죠. 물론 부모에게 상처받아 등진 시간도 있었지만, 맏딸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재순이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딸이 된 입장에서 많이 반성하게 됐어요. 반면에 아내나 엄마로서의 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제가 굉장히 가정적인 편이거든요.(웃음)”

Q. 스스로에게 좋은 점수를 준다니 자신감이 있어 보이네요. 가정에 헌신적인 편인가 봐요?

“전 일할 때 말고는 개인 약속을 거의 안 잡고 가정에 몰두해요. 아이가 이제 네 살이 됐는데, 세 살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아이와 함께했어요. 하도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않아서 친구들이 제게 섭섭해할 정도예요. 근데 이제는 좀 더 제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 엄마, 아내 이외의 저를 찾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Q. 그래도 드라마 촬영할 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많이 뺏기잖아요.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남편과 시댁에서 많이 도와줘요. 낮에는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시고, 퇴근 후 남편이 일찍 집에 돌아와 아이를 봐요. 남편도 일을 하는 사람이니 매번 일찍 귀가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 시간을 항상 희생해줬어요. 그에 대한 고마움이 커요. 신랑의 배려 덕분에 제가 연기에 잘 몰두할 수 있었죠. 대신 저도 일을 안 할 땐, 온전히 가정에만 집중하려 해요.”

Q. 좋은 남편이네요. 남편분이 이해심이 큰가 봐요.

“신랑이랑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했어요. 제가 배우로서 막 시작할 시점에 만난 사람이라, 제가 배우로 성장해가는 과정, 슬럼프, 잘 되고 안 되고 하는 걸 다 옆에서 지켜봤죠. 제가 배우로서 가는 길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불평 없이 감당해주는 고마운 남편이죠. 오랜 연애를 하면서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해주는 게 삶에 편하게 자리 잡았어요.”

Q. 엄마로선 어때요? 아이가 엄마가 '배우 유선'인 걸 알아요?

“엄마가 TV에 나오고 배우인 건 알아요. 배우가 뭐 하는 사람인지까지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그런 바람이 있어요. 아이를 헌신적으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엄마를 존경하고 동경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아이가 클 때까지 내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 옆에서 살갑게 있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엄마의 자리를 바라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측면에서라도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유선

# 틀 안에 갇힌 삶... 새로움에 대한 갈증 있다

Q. 배우, 아내, 엄마가 아닌, '날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지난 몇 년 동안, 제 활동 반경이 좁아졌어요. 이전에도 막 활동적이고 모험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살아온 모습들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배우로서도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좀 더 새로운 자극들, 경험들을 하고 싶어요. 이런 고민을 옛날부터 하긴 했어요. 고만고만한 틀 안에서 살아온 것 같다, 이걸 깨보고 싶다, 란 생각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 틀이 더 좁아진 것 같아요. 이젠 그걸 넓혀보고 싶단 바람이에요.”

Q. 인간 유선으로서,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갈증 같은 건가요?

“배우로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드리려면, 그에 앞서 저 자신에 대한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배우의 색깔도 결국엔 인간 유선의 틀 안에서 보여드리는 거잖아요. 인간 유선 자체를 확장해야 그 안에서 배우로서 새로운 색깔이 나올 수 있겠죠.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냥 제 시간도 좀 갖고, 하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해보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배워도 보고.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요.”

Q. 작품을 선택할 때도,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할 같은 것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새로움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있어요. 기왕이면 안 한 걸 해보고 싶죠. 코믹하고 가벼운 것도 많이 안 해봤고, 웃기고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조직의 보스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여형사가 되어 험한 수사도 펼쳐보고 싶어요. 악역도 해보고 싶고요.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요.”

Q. '우리 갑순이'가 끝나자마자 미국의 인기 범죄수사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한국판에 바로 출연한다고 들었어요. 9개월 동안 한 드라마에 매진하느라 지쳤을 텐데, 너무 '열일' 하는 거 아니에요?

“올해 제가 목표로 세운 게, 최대한 많은 색깔을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게 된 것도, '우리 갑순이'와 전혀 다른 색깔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제가 갖고 있는 색깔이 몇 가지가 있다면, 올해엔 그 가짓수를 늘려보고 싶어요. '저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말할 수 있게요. 모험이 될지라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가족드라마를 하다가 긴장감 넘치는 수사물을 하면, 저한테도 새로운 환기가 될 것 같고요. 대본을 덮고 바로 새 대본을 열어야 해서 여유가 없긴 하지만, 제게 분명히 새로운 자극제가 될 거라 생각해요.”

유선

[사진제공=모션미디어]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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