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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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 함께, 다시…'인간 노무현'을 통해 발견한 가치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5.19 09:56 조회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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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김근태 후보는 본받고 싶은 사람, 노무현 후보는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유시민 작가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 경선'에 나온 두 후보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사견이지만, 와닿는 평가다.

김근태는 민주화 운동의 전설이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다 5공 청문회를 통해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유시민은 참여 정부 시절 김근태의 뒤를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돼 노무현 대통령을 도왔다. 

정치인 노무현의 별명은 '바보'였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바보'는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가시밭길만 선택한 정치 여정을 빗댄 표현이었다.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는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 노무현'으로 거듭나는 시작점인 2002년 새천년 민주당 '국민 경선' 과정을 그린 영화다.

노무현

경선 초반 노무현의 지지율 2%였다. 당에는 대세 이인제가 버티고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다윗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붙기 시작한다. '노무현 바람'을 일으킨 주역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였다. 

영화는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노사모의 선거 운동을 상세하게 그린다. 더불어 노사모와 함께 노무현의 당선을 도운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영화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노무현입니다'는 크게 4개의 챕터로 국민 경선 과정을 그린다. 제작진이 취재한 인터뷰이 리스트만 200여 명. 최종적으로 72명으로 추렸고, 영화의 콘셉트와 맥락에 맞게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39명이다. 유시민 작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문재인 대통령,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고호석 부림사건 피해자, 운전기사 노수현 등과의 인터뷰를 담아내 노무현의 삶을 다양한 층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영화는 '정치인 노무현' 보다는 '인간 노무현'을 부각한다. 노풍은 정치적 역량보다는 인간의 매력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한다. 

전 중앙정보부 요원 이화춘은 김광일, 노무현, 문재인 등 인권 변호사 4인을 감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노무현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로 만난 얄궂은 인연이었지만, 노무현은 적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이화춘 씨는 5.18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다룬 책과 영상물을 노무현을 통해 접한 뒤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핵심인 기록과 증언이 풍성하다. 익히 봐왔던 영상물이 주를 이루지만, 4개의 챕터 아래 구성과 배치를 잘 해놓았다. 과한 감상주의로 흐른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였던 인물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감정의 동화가 일어난다. 

보는 이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건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다. 노무현은 색깔론, 지역주의, 정치모략이 판치는 한국 정치의 축소판인 선거에서 원칙과 소신을 치켜 정정당당하게 싸웠던 투사였고 정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희망이 실현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아름다운 이상주의자였다. 

노무현

영화를 보기 전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또 노무현인가?'.

다시, 유시민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는 "떠나 보내려고 해서 떠나 보내지는 게 아니다. 떠나 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다. 노무현에 대한 애도가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 잡혀질 때라고 본다"고 말한다. 

영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남자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걷다가도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입니다'는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다. 정치인 노무현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결말이 아닌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가치를 말한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했다. 바보 노무현이 강조한 '우리', '함께', '다시'의 가치는 아직도 유효하다. 상영시간 109분, 12세 이상 관람가. 5월 25일 개봉.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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