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나쁜자석’ 박강현, 나의 9살, 나의 19살 그리고 29살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6.01 10:02 조회 6,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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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현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연극 '나쁜자석'은 여운이 긴 작품이다. 4명의 인물들의 9세, 19세, 29세의 공간을 이동하며 기억의 타이머 신에 묻어놨던 추억들이 때론 선물처럼, 때론 시리도록 슬프게 찾아온다.

때문에 작품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의미들은 작품이 끝난 뒤 뒤늦게 문득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배우들이 가지고 있던 슬픈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2015년 데뷔해 네 번째 작품으로 '나쁜자석'을 만난 배우 박강현(29)에게도 이 작품은 오래도록 가슴을 무겁게 했다. 극 중 프레이저처럼 올해 스물아홉인 그도 “작품을 하는 내내 자신의 9세, 19세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Q. 긴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한데요?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감정 소모도 심하고 거기에 소리도 많이 쳐야 하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도 쉽진 않았죠. 마흔 번 정도 공연을 올린 것 같은데, 할 때에는 몸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박강현

Q. '나쁜자석'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뭔가요?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의 부재. 이미 잊어버린 그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라요. '그땐 나도 정말 순수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림처럼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Q.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많은 눈물을 쏟아내더라고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더 많이 울고 있어요. 사실 무대 위에서 복받쳤던 감정이 눈물로 해소되는 것도 컸어요. 평소에는요? 눈물 흘릴 일 별로 없어요. 남자니까요.(웃음)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해도 20대 초반 빼고는 지금은 눈물을 흘리진 않죠.”

Q. 꽃비가 내릴 때 감정이 복잡해 보였는데요. 어떤 느낌인가요.

“꽃비가 똑같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본질적인 죄책감과 허망함, 미안함은 같겠지만 그날 공연에 임했던 느낌에 따라서 감정이 매번 같을 수 없었어요. 공연을 하면 할수록 그 감정이 더 깊어졌어요. 공연 기간이 길어지면서 순간 매너리즘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툭 치면 로봇처럼 대사가 나오는 시기, 그럴 땐 한 대사, 한 대사가 잘 전달되게 더 집중하려고 했었죠. 어미를 조금 바꿔본다거나 조금 더 어떤 대사 단어를 강조해본다든지 변형을 줬어요.”

박강현

Q. 애드립도 가끔 했나요?

“애드립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에요. 대본에 충실한 스타일인데요. 엘런 역의 최용식 형이 애드립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집 나간 강아지의 목걸이를 묻고'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요. 형이 '집 나간 강아지를 묻고' 해서 웃음이 터졌어요. 왜 강아지를 묻어가지고.(웃음)”

Q. 프레이저가 타이머 신에 소중한 물건을 담던 9살 시절처럼, 박강현 배우의 9살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9살 때는 아주 활발했던 것 같아요. 반 여자애들이랑 정말 재밌게 놀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미니카, 딱지도 했고. 그땐 그렇게 계속 뛰어다녔어요(웃음).”

Q. '나쁜자석'은 여운이 긴 작품이지만 처음 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어렵다'였어요. 그래도 2번 이상 보는 관객들도 많고요.

“저도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땐 '이게 무슨 말이지?' 했어요. 리딩을 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아, 이래서 그렇게 얘기한 거구나'라고 조금씩 찾아냈어요. 제가 맡은 프레이저 말고 다른 인물들에게도 숨겨진 내용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읽을수록 작품의 짜임새가 완벽했고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 배우의 몫이니까, 배우로서 그 진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Q. 그럼, 흔들리는 프레이저의 19살의 기억과 자신의 19살을 비교하자면?

“19살에는 입시를 위해서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연기를 전공하려는 친구들을 보니까 신세계에 눈을 떴어요. 연기를 전공하려는 친구들이다 보니까 노는 친구들도 주위에 많았고 비행 아닌 비행(웃음), 노래방도 가고 춤도 추고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릴 땐 아주 활발했는데, 성격은 어느 순간부터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Q. 비슷한 점도 있나요?

“그렇게 비슷하진 않아요. 프레이저처럼 밴드를 하긴 했네요. 보컬 하던 친구가 빠지면서 그 자리에 들어가 축제 때 노래를 불렀는데요. 여학생들이 꺄 환호를 했었는데요. 그땐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반응을 못했어요. 나중에 여학생들이 '쟤 뭔데?'라고 해서 상처받았었죠.(웃음)”

Q. 19세 프레이저는 이성에 눈을 떴는데요.

“첫사랑이 언제라고 딱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10대 때는 내성적인 편이라서 어디에서든 주목받는 걸 기피했어요. 배우가 된 지금은 딱히 그런 게 없지만요. 가장 강렬했던 걸 첫사랑이라고 하자면 20대 때였던 것 같아요. 풋풋했던 감정은 고등학교 3학년, 19살 때였네요. 비 오는 날 목적지도 없이 버스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손잡는 것도 너무 어렵던 그런 감정들이 사진처럼 기억이 나네요.”

Q. 연기를 꿈꾸게 된 건 배우 이나영 씨 때문이었다고요?

“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 싫어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뒤늦게 봤는데요. 이나영 배우를 정말 좋아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나영 씨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럼 연기를 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된 거죠. 그 전까지는 오랫동안 과학자를 꿈꿨었어요.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는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의 모습도 대견하기도 하고, 흥미를 느끼게 된 거죠. 이제는 어떤 연기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Q. 배우라는 직업을 삼아야 겠다고 결심한 건요?

“일단 선택했기 때문에 끝까지 가는 거죠. 주변을 돌아보면, 비단 동기들만 봐도 많이들 연기를 떠나 다른 길을 찾아갔어요. 이 길은 너무 어려운 길이라고 겁을 먹은 것 같아요. 저는 여기 말고 다른 걸 해서 먹고 살아도, 예를 들어 일용직 현장 일을 해도 잘 먹고 잘살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선택한 길을 자연스럽게 열심히 해보는 거예요. 이러다가 망하면 다른 걸 하면 되는 거고. 먼 미래를 미리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불안함은 별로 없었어요. 그냥 이 길을 걷고 있는 거예요.”

박강현

Q. 지난해 11월 프로액터스 가족이 됐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요?

“친한 형들이 많았어요. '베어더뮤지컬'을 같이 한 서경수 형, 정원영 형이 있었고요. 한지상 형, 서경수 형과는 군대에 함께 있었고요. 특히 서경수 형은 맞선임이라서 군대에서 정말 친형처럼 재밌게 지냈거든요. 가끔 경수형한테 나이로 장난을 많이 치는데, 형이 발끈을 잘해요. 그게 재밌어서 가끔 장난은 치지만 제가 서열은 확실합니다.(웃음)”

Q. 얼마 전 정원영 배우의 미니콘서트에도 깜짝 등장했었죠?

“네. 원영이 형은 연기에 있어서 진심 같은 게 느껴져요. 좋은 형이에요. 형 10주년 콘서트여서 회식을 하는 줄 알고 기다리다가 얼떨결에 무대에 선 거라서 트레이닝복 차림이라서 미안했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잘 차려입고 갈걸. 죄송했어요.”

Q. 평소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나 봐요. 

“무조건 편하게 입어요. 어렸을 때는 옷에 관심이 많았는데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거의 편하게 입어요. 좀 신경 쓸 때도 있긴 하지만 복불복이에요. 그래도 서경수 형에 비하면 훨씬 낫죠.(웃음) 형은 '돗바'라고 하나요? 한 점퍼를 4달 동안 입고 다녀요. 멀리서 보면 체대생이에요.(웃음)”

Q. 한지상 배우와는 학교와 군대에서 인연이 있는 거죠?

“같은 학교 선배에 군대도 함께 10개월 정도 있었어요. 지상이 형은 나이 차이도 나서 어려울 때도 있지만, 장난기가 많고 늘 유쾌하고 동생들도 잘 챙겨줘요. 형은 권위적인 게 정말 없어요. 늘 후배들이 쉽게 다가가서 장난도 칠 수 있는 좋은 형이죠. 그러면서도 조언 같은 건 아끼지 않고요.”

Q. 첫 데뷔는 '라이어타임'이었어요.

“너무 힘들었죠. 대본을 보고 캐릭터를 분석해서 연구해나가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쇼 적인 부분과 노련함이 필요한 작품이었어요. 저는 무대 경험도 별로 없던 상황이었는데, 저에게 없던 걸 갑자기 만들어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이게 프로 진입의 장벽인가'란 생각도 많이 했죠. 평소 힘들다는 말 잘 안하는데 이 작품 할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몸 힘든 건 견딜 수 있는데 스스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죠.”

Q. 이후 '베어더뮤지컬'은 박강현이란 배우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죠?

“네. 이 뮤지컬은 저라는 사람을 그래도 이쪽에서 어느 정도 알려준 고마운 작품이었어요. 주연 중에서 오디션을 본 건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름 자부심도 있고 뿌듯한 게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고요. 다시 한번 '베어더뮤지컬'에 설 기회가 있다면요? 얼마든지요.”

Q. '나쁜 자석'을 끝낸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음. 휴식?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요. 예전에는 그런 시간이 참 많았거든요. 대학 졸업한 뒤에는 자다가 오후 늦게 일어나서 커피 한잔 하고 PC방 가서 게임 좀 하다가 드라마나 영화 보고 그 여운에 취해서 새벽을 느끼다가 잠들고 그런 생활을 했었어요.(웃음) 지금도 뭐 마음먹으면 할 수야 있겠지만 한 일주일 정도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해보고 싶네요.”

Q.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 역할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을 좋아하는 계기가 된 게 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였는데요.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들을 때마다 몸에 전율이 돋아요. 오래 앉아 있는 걸 잘 못해서 공연을 자주 못보고 특히 같은 작품을 몇 번씩 보는 걸 못하는데요. '지저스'는 세 번을 봤어요. 그때 한지상 형이 유다 역할을 연기했었어요.”

Q. 스스로 묻는 질문에 '행복한가요?'란 게 있다고요. 스물아홉 박강현은 어떤가요.

“부분, 부분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을 순 없잖아요. 결핍도 있고 적당히가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성취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도전해서 뭔가를 얻고 싶은 것도 있어요. 지금 적당히 행복해요.”

Q. 또 다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고요? 이제 좀 답을 얻었나요?

“누군지 알아가고 있어요.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이런 감정을 느꼈나. 이런 반응을 느꼈나' 이런 걸 조금씩 체험해보고 있어요. 결론을 내리려면 좀 더 살아봐야 알겠어요.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 중에서 나와 닮은 건 별로 없었어요. 부분 비슷한 건 있었지만 나와 완전히 비슷한 인물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어요.”

박강현

Q. 10년 뒤 서른아홉의 박강현을 떠올려 본다면?

“모르겠어요. 미래를 차곡차곡 그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10년 뒤라고 해도 은근히 금방일 것 같아요. 그때 쯤이면, 음... 집이 있지 않을까요? 내년이 되면 저도 서른이 될 텐데, 스물아홉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아요. 모르겠어요. 이 길을 걸을 거고, 그때엔 뭔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이겠죠?”

Q. 차기작은 '이블데드'라고요?

“네. '나쁜 자석'을 하면서 마음이 정말 힘들었는데, 다음 작품이 밝고 즐거운 걸 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형식이나 연기나 모든 면에서 다른 작품이니까 신나게 즐겨보고 싶어요.”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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