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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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악녀 없는 '악녀'…체감 액션이 주는 쾌감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6.08 13:01 조회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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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악녀'는 한국 액션 영화의 진일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린 액션배우다'(2008), '내가 살인범이다'(2012)를 통해 액션 연출에 일가견을 보여왔던 정병길 감독이 자신의 노하우를 총집약해 생동감 넘치는 액션 영화를 완성했다.

숙희(김옥빈)는 어린 시절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고 최정예 킬러로 길러졌다. 하지만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살기 위해 국가 비밀 조직의 요원이 되어 이름도 신보도 가짜인 삶을 살아간다. 10년 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놓아준다는 약속을 믿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거짓을 마주하게 된다.

'악녀'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오프닝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체감의 미학이다. FPS 게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1인칭 시점의 액션은 마치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어깨 위에 타고 있는 느낌을 준다.

한 여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스크린을 향해 장정들이 돌진한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은 이 남자들을 총과 칼로 무찌르며 목표를 향해 돌진해나간다.         

악녀

1인칭에 롱테이크로 설계된 10여 분의 오프닝은 2015년 개봉한 영화 '하드코어 헨리'에서 봤던 테크닉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액션 영화에서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영화는 기승전 '액션'의 구성을 띄고 있다. 영화의 초,중,후반까지 다채롭게 짜인 액션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체험을 만끽할 수 있다.

타이틀롤은 맡은 김옥빈은 국가 비밀 조직이 키운 최정예 킬러라는 역할에 맡게 장검부터 단도, 권총, 기관총, 도끼에는 이르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화려한 액션신을 소화했다.

영화의 액션은 정병길 감독의 전작인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호흡을 맞춘 권귀덕 무술 감독이 맡았다. 두 사람은 서울액션스쿨에서 스턴트맨으로 함께 활동하며 우애를 다졌고, 영화로까지 앙상블을 이어왔다.

체감 액션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이다. 1인칭 액션이라는 과업에 따라 박정훈 촬영 감독은 오토바이 헬맷과 아이스하키 헬맷까지 직접 깎고 조여 카메라를 부착했다. 스턴트맨은 이 헬맷 카메라를 착용한 채 강렬한 시점 샷의 오프닝 액션 시퀀스를 담아냈다. 또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버스 액션신에서는 촬영 감독이 와이어에 매달린 채 와이어 액션을 연기하는 배우를 촬영하기도 했다.

악녀

기존의 액션 영화들은 대다수가 망원렌즈를 활용해 빠른 컷 분할로 촬영하는 데 반해, '악녀'는 특수한 12,13mm 광각렌즈로 더욱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 촬영했다. 액션 동작만큼이나 인물의 감정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쉬운 점은 탁월한 액션에 비해 서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살인 병기로 키워진 숙희의 사연과 숙희가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 배경 그리고 복수를 계획하는 이야기는 클리셰에 가깝다. 감독은 액션에 능한 것과 반대로 드라마를 구축하고 연출하는데 있어서는 미숙함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서의 악녀와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아픔이 조화롭게 와닿기보다는 내내 상충된다는 점에서 관객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에 대한 모성과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동기가 숙희를 변화하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킬러의 옷을 입으면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는 그녀의 또 다른 본성을 생각해보면 인간 숙희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여성 중심의 액션 영화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결과물인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전하는 날 것의 쾌감은 마치 액션이라는 날개 위에 관객이 함께 몸을 실은 것 같은 생생함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또 반갑다. 

6월 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123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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