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봉준호가 그린 혼종의 궤적…'옥자'의 아름다운 승리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7.11 15:44 조회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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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봉준호 감독은 신작 '옥자'에 대해 '봉준호 장르'라 명명할 때 기다린 말이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옥자'는 인간의 이기로 태어난 슈퍼돼지 옥자와 그의 친구 미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제는 국경과 인종, 문화를 넘어서도 교감할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해졌지만, 이야기와 연출은 단순하고 명료해진 느낌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최고의 영화로, 또 어떤 이들은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라고 평한다. 또,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포인트에서 눈물짓기도 한다. 이 영화는 모험, 액션, 드라마가 뒤섞인 복합장르처럼 보이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이 추구해온 혼종성이 가장 극대화된 영화다.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 전액(한화 약 570억)을 출자받은 '옥자'는 극장과 안방의 동시개봉 불가라는 국내 멀티플렉스 3사의 방침에 따라 전국 80여 개의 단관극장과 전 세계 190개국 안방에서 상영 중이다.  

개봉 3주 만에 22만 관객을 동원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6편의 영화 중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제외하고 가장 적은 관객 수다. 하지만 '옥자'를 극장에서 본 22만 명은 220만 명 이상의 의미다. 필름 시대가 저물면서 극장 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난 단관극장에 관객을 운집시켰기 때문이다. '옥자'가 만들어낸 진풍경이었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옥자' 공개 이후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 가입자수나 스트리밍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국내외 안방 반응은 뜨겁게 감지되고 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난 뒤 관객의 관심은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지극히 봉준호답다는 반응과 봉준호스럽지 않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비교적 명료한 영화임에도 관객들 사이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심어놓은 함의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봉준호 감독에게 '옥자'의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오늘날 '봉준호 월드'를 구축한 창작의 원천에 관해서도 들어보았다.

봉준호

Q. 영화 잘 봤습니다.

A. 혹시 반려인이신가요? 애견인들이 좀 많이 우시던데. 그래서인지 (애견인이 많은) 일본에서 반응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Q. 실제로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A. 그렇죠. 아이와 동물에 대한 호들갑이 우리보단 크잖아요.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 이야기를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고요.

Q. 그래서인지 등급도 한국과 미국이 다릅니다.(한국은 12세 이상 관람가, 미국에서는 17세 이하 부적절 시청 등급인 TV-MA을 받음)

A. 네. 사실 한국에서 12세 관람가가 나와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이나 호주에서 보면 후반부의 상황들을 굉장히 공포스럽게 여기거든요. 이를테면 피바다 장면이라던가 옥자와 알폰소의 장면들이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아름답고 동화적이라는 평이 많아요. 완전히 다르죠. 그 두 반응을 섞는다면 '옥자'는 유혈이 낭자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Q. '프랭크'를 만든 존 론슨 감독과 공동 각본을 썼잖아요. 봉준호의 영화 중에서도 대사가 많은 편에 속하고 한국어와 영어의 비율이 6:4 정도 됩니다. 메타포의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존 론슨과 통하는 점이 있을 순 있겠지만 언어도 문화도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A. '설국열차' 때도 영어 대사는 켈리 마스터슨이 썼어요. '옥자'는 '미자'나 '희봉'이 한국 사람이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외국인이에요. 대사의 70~80%가 영어가 될 수 밖에 없었죠. 시나리오 초고는 제가 쓰고, 대사도 일단은 제가 썼어요. 전체 구조나 신의 배열은 이미 짜놓은 상태에서 존 론슨이 합류해 외국인 캐릭터 묘사의 아이디어라던가 특히 ALF(동물해방전선)의 다섯 캐릭터를 만들고 구체화 시켜줬어요. 전 미자(안서현), 희봉(변희봉), 김 군(최우식)에 중점을 뒀고요.

옥자

Q.'옥자'는 얼굴은 하마에 몸집은 돼지인 암컷인데요. 늠름하면서 사랑스럽고, 또 어딘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캐릭터로 느껴져요. 캐릭터 디자인 과정도 궁금합니다. 

A. 돼지가 진돗개보다도 아이큐가 높은 거 아세요? 그런데 우리는 돼지를 볼 때 삼겹살이나 순대 등 먹을 것만 떠올려요. 심지어 장기들은 부속물이라 불리며 순대와 곁들어 먹기까지 하죠. 돼지처럼 음식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이 있을까 싶어요. 소는 밭이라도 갈지, 돼지는 먹기 위해 태어난 동물로 취급되잖아요. 슈퍼 피그는 억울하고 불쌍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덩치가 크면 위악적일 수 있는데 덩치만 크지 순둥이네? 라고 느끼게요. 

잠깐만요.(봉준호 감독은 태블릿 PC를 꺼내 파일함을 열고 옥자 탄생 과정이 담긴 디자인 컷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물체 디자인이 되게 어려워요. 팔, 다리를 꼬치처럼 막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모든 신체가 리얼해야 해요. 처음 봤지만 실제로 저런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하거든요. 옥자의 캐릭터 디자인은 '괴물'을 디자인했던 장희철 씨가 담당했어요. 믿고 부탁할 수 있는 아티스트예요. 저는 그의 재능과 집요함을 믿거든요. 장희철 씨를 중심으로 150명 넘는 전문 인력이 뛰어들어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했어요. 영화에서 옥자가 총 300샷 이 나오는데, 1샷이 전셋집 가격이에요. 그래서 감독이 명확한 플랜이 있어야 했어요. 샷을 낭비해서는 안되거든요. '괴물'이라는 경험은 큰 자산이 됐어요. 순제작비 110억 원으로 만든 영화예요. 그때 어려운 조건에서 작업했던 게 이번 영화에 큰 도움이 됐어요.

(코뿔소에 가까운 돼지 디자인을 보여주며) 약간 타락한 4선 국회의원 같지 않나요? (옥자와 닮은 돼지를 보여주며) 이건 지금의 옥자와 가장 흡사하죠.  

옥자

Q. 영화 초반에 두메산골을 담은 전경과 옥자와 미자의 우정과 교감을 그린 장면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 떠올라요. 실제로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A. 1:1로 대입시킬 순 없어요. 다만 '월령공주', '이웃집의 토토로', '미래소년 코난' 등 그 양반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제 혈관이나 세포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영향 같은 건 있을 거예요. 

Q. '옥자'는 전작들에 비해 메시지 구현 방식이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져요. 은유보단 직유에 가까운 표현 방식을 택한 건 글로벌 이슈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기 위한 선택으로 봐도 될까요?

A. 음... 상대적인 차이라고 봐요. '마더'처럼 뿌연 안개 속에서 보는 이를 압박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설국열차'처럼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표현하는 영화도 있었죠. '옥자'와 같은 주제나 스토리를 두시간 짜리 극영화에서 펼쳐낸 건 한국이든 미국이든 처음이잖아요. 동물인 주인공이 결국 도살장에 이르는 이야기 말이에요. 저 이후의 감독들이 주제와 이야기를 변주하고 레이어가 좀 더 있는 걸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6.25를 소재로 한 영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도 지금은 다양한 장르와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 주제를 처음으로 다뤘으니 제 다음 타자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Q. 영화 속에서 상징이나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단순히 소재만 놓고 보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옥자'까지 동물이 등장한 작품이 많았어요.

A. '설국열차' 때도 엔딩에 북극곰을 등장시켜 "코카콜라 광고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죠. 자연 속에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그곳에 동물이 있고, 아이가 있으면 그 풍경이 곧 천국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예수님이 하신 말인지 공자가 하신 말씀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걸 시각적으로 초반부터 보여주고 싶었어요.

옥자

Q. 그 표현대로라면 '옥자'의 오프닝에서 약 10분간 '천국의 풍경'이 펼쳐지죠.

A. 심지어 그 부분은 "옥자야~" 이 말을 제외하곤 대사도 거의 없어요. 옥자는 계속 뭐라고 하는데 우린 그걸 알아들을 수 없죠. 영화의 후반부엔 참혹하고 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대비로서 극 초반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굳이 '자연주의' 메시지를 웅변하거나 설파할 필요 없이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면 된다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산속 로케이션에 정말 공을 들였어요.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지가 한국에 오기 전에 전국 팔도를 샅샅이 뒤졌어요. 단순히 '경치가 좋네', '그림이 예쁘다'를 떠나 뭔가가 느껴지는 그런 장소를 원했거든요. 영화에 등장한 공간은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한 산골이에요. 관광객도 거의 없고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 신묘한 곳이었죠. 그런데 산세가 험해서 무거운 장비를 계곡까지 들어 올리는 건 고역이었어요.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Q. 절경과 마주한 미자의 집도 인상적이었어요. 그건 세트인가요?

A. 네. 그런데 그 세트를 지은 장소도 해발 1,100미터가 되는 고지였어요. 영화의 초반이 매우 중요했고, 미자의 집도 아주 중요했어요. 그런 곳에서 살던 '옥자'와 '미자'가 무시무시한 기계가 있는 공장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니까요. 극과 극으로 공간의 스펙트럼을 벌려야 했어요. 도살장 로케이션도 쉽지 않았어요. 거대한 규모의 도살장을 세트로 지을 순 없고, 실제 도살장들은 우리 영화가 자기네 공간을 어떻게 그릴지를 아니까 제공을 안 하죠. 그러다 밴쿠버에서 문 닫은 맥주 공장을 발견했어요. 2015년에 콜로라도에 있는 대형 도살장에 직접 간 적 있는데 그곳과 맥주 공장의 외관이 아주 비슷했어요. 폐공장을 도살장으로 변모시키는 데는 미술팀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Q.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빚는 기괴함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어요. '옥자' 역시 다양한 문화, 공간, 개체, 캐릭터들의 혼재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이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는 공간, 문화, 인간의 충돌 등 여러 관점에서 흥미롭더군요.

A. 전 반듯한 방향으로 가는 게 뭔가 이상해요. 빗나가거나 미끄러지거나, 떨어져야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랄까요. 제이크가 연기한 죠니 윌콕스 박사를 보고 노홍철이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죠니는 예능 스타에 가까운 동물 박사예요. 좀 오버스러워 보이긴 하죠.

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하자면, 제이크는 실제로 강원도 정선의 해발 1,100미터의 고지대에 마련된 세트장에 올라와 촬영을 했어요. 이질적이고 웃긴 것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무척 재밌었어요. 제이크가 변희봉 선생님에게 먼저 다가가 꾸벅 인사를 하고 "저 '괴물' 세 번 봤습니다. 선생님 아주 멋지시던데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변희봉 선생님이 "나는 자네의 '나이트 크로우라'(나이트 크롤러)를 재밌게 봤네. 연기가 아주 좋던 걸"이라고 화답했어요. 변희봉 선생님이 제이크 질렌할과 영화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작진에게 그의 출연작 리스트를 구해달라고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자기 영화를 찾아봤다는 노배우의 말이 멋쩍었는지 제이크가 "선생님은 인생의 두 시간을 낭비하셨습니다"라고 할리우드식 농담을 던졌어요. 그런데 우리 통역가가 직역을 해서 전달했지 뭐예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묘한 웃음꽃이 폈죠.

옥자

Q. 영화 속 캐릭터들도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아요.

A. 어찌 보면 우리 영화에서 옥자만 정상이에요. ALF도 취지와 의도는 좋은 데 정작 도움이 안되요. 제일 명쾌한 인물이 미자랑 낸시인데 미자는 제 앞에 놓인 허들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부서뜨리며 앞으로 가요. 동생인 루시는 히스테릭하고 불안한데 언니 낸시는 간단명료한 성격이죠. 그 외 인물들은 의도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요. 죠니가 가장 정점이죠. 지하 실험실에서의 행동을 보면 병원에 가야 될 사람 같잖아요. 그 장면 찍을 때도 되게 웃겼어요. 옥자는 CG니까 현장에 실재하지 않잖아요. 제이크는 이상한 플라스틱을 붙잡고 연기를 하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극 중 배경은 뉴욕의 실험실이지만 실제 촬영장소는 의정부에 있는 대진대학교의 지하실이었어요. 얼마나 웃겨요.

Q. 미자가 옥자를 구출해오는 방법, 갈등이 봉합되는 그 장면이 어떻게 보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 방식이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는 건 알겠지만 드라마적으로는 맥이 빠진달까요? 

A. ALF도 침투했겠다 여러 가지 극적인 방식을 써볼 수도 있지 않았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옥자'는 초고부터 그 결론이었어요. 그 지점을 향해 영화가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물론 허탈하고 씁쓸해하실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 스토리 자체가 산속에서 자란 미자가 최초의 자본주의적 거래를 몬스터 같은 낸시와 체결하며 매듭지어지는 이야기거든요. 그 방식은 미자가 낸시의 수준에 맞춰준 것일 수도 있어요. 어떤 이야기도 통하는 인물이 아니잖아요. 그 상황에서 미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거 먹고 떨어져라" 뿐인 거죠. 금돼지를 그냥 건네는 것도 아니고 땅바닥에 굴려요. 굉장히 기분 나쁜 방식인데 낸시는 그 돼지를 받아서 깨물어보는 행동까지 취해요. 예전에 미셸 오바마가 도널드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니네가 로우(Low)하게 갈때 우린 하이(High)하게 간다"라는 식으로 말한 적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고차원의 방식이 미자가 택한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앵글도 미자가 낸시를 내려다보고 있잖아요. 미자와 옥자는 엄청난 수난을 겪지만 그래도 파괴되진 않았어요.

Q. 영화를 만들 때 넷플릭스는 정말 당신의 창작권과 편집권을 100%로 존중해줬나요?

A. 시나리오 한 줄도 고치지 않았고, 편집도 제가 다 관할하고, 음악도 제가 다 고를 정도였어요. 딱 한 번 질문을 던진 적 있었어요. "알폰소와 옥자의 실험실 장면 그건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전 "영화의 주제나 줄거리 상에서도 꼭 필요하고, 이 장면은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꼭 찍고 싶었던 장면이다"라고 얘기했어요. 넷플릭스는 "오케이"하면서 제 의견을 수용해줬어요. 아마 폭스나 소니 등 다른 데와 이 영화를 했다면 그 장면은 찍지 못했을 거예요. 실제로 '옥자'의 투자를 위해 해외 제작사와 접촉할 때 그 장면을 문제 삼는 데가 정말 많았거든요.

봉준호

Q. 봉준호의 영화에서 메시지란 어떤 의미일까요?

A. 전 주제라는 과녁을 먼저 설정하고, 스토리를 억지로 맞추려 한 적은 없어요. '옥자'도 우연히 동물 이미지가 떠올린 뒤 스토리를 눈덩이처럼 불린 경우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만들어진 거에요. 지금까지의 제 영화들이 다 그랬어요. 감독마다 영화 만드는 과정이 달라요. 김지운 감독은 장르에 깃발을 꽂고 영화를 만들어나가요. 메시지를 먼저 설정한 뒤 이야기를 구상하는 감독도 있죠. 저는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Q. 오죽하면 '봉준호 장르'라는 말도 생겼죠.

A. 제 영화에 '봉준호 장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행복해요. 주제와 메시지만 전달하려면 오히려 책과 SNS가 빠른 방법일 것 같아요. 영화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시지가 어떻게 보면 장면을 돕는다고도 생각해요. 영화가 나의 상황과 비슷하면 빨려 들어가요. 그래서 '옥자'를 보고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됐다"는 반응도 나오는 거고요. 실제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더 와 닿아 하시는 것 같아요. 결국, 메시지도 드라마도 감정의 일부라 생각해요.

Q.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중 하나가 '봉준호라는 창작자는 어떻게 자기 검열을 해나갈까?'였어요. 최초의 순수한 아이디어를 이야기 형태로 발전시키다 보면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봉준호의 영화는 그 과정이 자유로운 데 따른 결과처럼 여겨지거든요.

A. 영화과 특강을 가면 학생들이 "관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감독에게 관객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럼 전 단순 무식하게 답해요.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걸 찍는다고요. 감독은 되게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감독이 '나는 이런 걸 찍고 싶은데 관객은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걸 예측하고 판단하는 건 되게 추상적인 거에요. 몇 만, 몇 십만이 될지도 모르는 관객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나도 한 사람의 영화 팬이니까 보고 싶은걸 만들겠다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하는 거죠. 이기적이 되면 오히려 영화가 간결해져요.

Q. 팔목과 팔뚝에 자꾸 눈길이 가는데요. 몸에 새긴 타투의 의미들을 여쭤봐도 될까요?

A. 아. 이거요? '마더' 때 함께 작업한 홍경표 촬영감독이 "우리 기념으로 홍대에 문신하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그만... 이 독수리 문신은 가슴팍에 나무로 연결돼요. 이거 옷을 벗어서 보여드려야 하는데...(티셔츠를 벗는 시늉을 하다가 멈추며) 아, 함부로 벗으면 안되겠네요. 하하. 그런데 문신은 아무나 하면 안되겠더라고요. 몸이 중요해서... 마치 중고차에 스티커를 붙인 꼴이랄까요.
(그의 가슴팍에 자리한 큰 문신은 '마더'에서 엄마(김혜자)가 수감된 아들 도준(원빈)을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새긴 것이었다.)

ebada@sbs.co.kr

<사진 = NEW 제공,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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