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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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택시운전사', 송강호라는 거울로 바라본 5.18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7.12 11:31 조회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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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송강호가 1973년식 녹색 브리사에 관객을 태운다. 목적지는 1980년 5월의 광주다. 최루탄과 총성으로 가득했던 금남로 한복판에는 불의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을 도운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1살 딸을 키우는 홀아비 만섭(송강호)은 택시운전사다.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를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낼 수 있는 10만 원을 준다는 말을 듣고 길을 나선다. 그가 태운 손님은 파란 눈의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만섭은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영어로 피터와 겨우 소통하며 광주에 도착한다. 거리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 차를 돌리려 하지만 순박하고 정겨운 광주 사람들에게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티브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취재기다.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계엄 하의 삼엄한 언론 통제를 뚫고 광주를 취재해 전 세계에 5.18의 실상을 알린 외신 기자다.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용감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는 소감을 밝혀 그를 도운 택시운전사의 존재가 알려졌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기자의 시선이 아닌 택시운전사의 시선 중심이다. 서울-광주-서울이라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 두 외부인이 현대사의 비극을 객체에서 주체로 바라보고 변화하게 되는 성장기 플롯을 따르고 있다. 

택시

이 영화에서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 3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보였던 영화는 인물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사실상 1인칭으로 바뀐다.

언론 통제가 이뤄졌던 당시, 서울의 택시운전사에게 광주의 참상은 '모르는 일'이었다. 김만섭은 돈을 벌기 위해 택시를 몰고 갔다가 광주의 진실을 목도하고 변화하게 된다. 힌츠페터는 무료한 일본 특파원 생활 중 취재감을 위해 광주를 찾았다가 참상을 목격한 뒤 기자적 사명감을 발휘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택시운전사'가 두 외부인을 중심인물로 내세운 것은 1980년의 광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다수 관객의 눈높이와 함께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그 시대를 감당했으나, 불의에 투신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부채감도 포용한다.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아우른다. 피터의 카메라에 투영된 다큐적인 화면과 김만섭의 영화적인 순간이 교차한다.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와, 소리내 울지도 못한 피해자들을 캐릭터로 등장시켜 뻔뻔함과 아픔을 대비시켰다.

상영시간은 137분이다. 만섭이 피터를 태우고 광주에 당도하는 것은 한 시간 가까이 지난 후다. 그 전까지 영화는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이자,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는 소시민, 택시운전사로서의 김만섭을 천천히 훑으며 보통 사람의 서사를 구축한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성실한 택시운전사 그리고 무수한 국민 중 한 명이었던 인물의 상식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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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는 역사적 시선이 부재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5.18의 참상을 재현해 카메라에 담지만, 의도된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심도 깊게 그리는 대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5.18의 진실이나 의미를 직시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비극의 역사 앞에 선 인간의 도리과 행동의 당위를 강조하며 정치적 관점보다는 보편적 공감대 획득에 주력한다. 이념, 가치를 선행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도리와 예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절대적 기준이 허용되는 개념이다. 영화는 그것을 김만섭의 입을 빌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택시운전사'는 송강호라는 서민의 거울을 폭넓게 활용한다. 이 영화는 송강호에 의한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김만섭의 눈은 곧 관객의 눈이 된다. 평범한 대사도 그만의 언어와 공기로 해학을 더하는 특유의 연기는 소시민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다. 김만섭의 성장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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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섭에 비해 피터의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설계된 점은 아쉽다. 기자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한 인물로 정직하게 묘사되지만, 그의 목소리와 시선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인다. 토마스 크레취만의 준비된 호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은 '의형제', '고지전'의 작품에서 분단과 전쟁에 대한 이념이나 가치의 대립보다 보통 사람들의 고뇌와 비극을 담으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특유의 휴머니즘은 5.18 소재 앞에서도 따스하게 빛을 발한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었던 극의 클라이맥스에서도 중심을 잘 잡으며 대중적인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다만, 후반부 선택한 갈등 해소 방식은 영화적으로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극의 온도가 갑자기 들뜬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바뀌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대통령은 그날 아버지를 잃었던 딸을 껴안으며 위로했다. 때마침 스크린에서는 '택시운전사'가 관객을 부르고 있다. 광주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기 아주 좋은 때다. 15세 이상 관람가, 137분, 8월 2일 개봉.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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