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송강호 "예술적 가치를 위한 자기 검열, 블랙리스트 때문 아냐"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7.21 10:44 조회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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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명의 관객, 몇 시간에 그친다고 해도 그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지난 1월 제8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영화의 힘'에 대해 말했다. 최근 '뉴스룸'에 출연한 그는 이 소감의 의미에 대해 "영화 한 편은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영화로 받은 감동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이런 소신은 송강호 연기 인생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예술은 상상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거울로 반영되기도 한다. 송강호는 영화의 힘을 믿고, 연기에 진심을 투영하고, 관객의 눈을 신뢰한다. 그것이 오늘날 송강호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은 원천이다.

송강호가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는 1980년 5월 광주다. 관객은 이 택시에 기꺼이 오르려고 한다. 운전사가 송강호기 때문이다. 알고는 있으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 아니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송강호가 전한다. 이번에도 그의 연기에선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송강호의 가슴에는 녹색 배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만섭이 운전한 택시를 본 떠 만든 기념품이었다.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거 매일 하고 다닙니다. 이렇게라도 영화를 알려야죠"라고 말했다.

택시

송강호는 '택시운전사'를 기술시사회에서 먼저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고 밝힌 그는 "기술 기사는 감독과 배우, 영화에 참여한 제작진이 함께 모여 영화를 봐요. 시나리오도 이미 다 봤고, 현장도 함께 겪은 사람들이다 보니 영화의 재미에 빠져 보기보다는 만듦새를 체크하며 관람해요. 그래서 일반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요. 아니나 다를까 웃어야 할 장면이나 눈물을 부르는 장면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보는데도 전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알려졌다시피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의 출연을 한차례 고사했다. '변호인'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분에게 누가 되지 되진 않을까 부담감이 컸어요. 부끄럽지 않은 영화와 연기로 광주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야기의 힘을 믿었고, '의형제' 때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장훈 감독을 믿었어요. 선택이 힘들었지 결정하고 난 뒤에는 즐겁게 촬영에 임했어요. 20년 지기인 유해진, 후배 류준열, 그리고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잘 맞았던 토마스 크레취만과의 연기 호흡도 아주 좋았고요"

'택시운전사'는 분명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비극보다는 희망에 맞춰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영화는 '이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라고 고발하는 게 아니라 아픈 비극을 안에서도 희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만섭이 대단한 사람이라서 광주로 돌아간 게 아니라 사람의 도리, 직업에 대한 사명 등을 다한 사람이거든요. 분명 시대의 비극이지만, 그런 시대에도 김만섭이나 피터처럼 인간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택시

송강호는 이번 영화에서 택시를 직접 운전하며 연기를 했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운전하는 시늉만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물의 직업이 택시운전사이고, 택시라는 공간이 인물의 동선과 감정 연결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기꺼이 운전대를 잡았다. 

직접 운전을 하며 감정 연기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달리는 차 안에서 김만섭의 변화하는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순천에서의 운전 신은 보는 이의 눈물샘을 한껏 자극한다.

"운전 신의 경우 실내 세트에서 창문에 천을 치고 촬영한 뒤 CG 작업으로 창밖 배경을 채우는 경우도 많았는데 순천 장면은 실사로 찍은 거에요. 경북 성주시 벽진면이라는 시골에서 촬영했는데 문제는 그 길이 아주 짧은 구간이었다는 거에요. 감정을 잡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계속 직진을 했다가는 논두렁에 빠질 수도 있었죠. '제3 한강교'를 부르다 두고 온 광주 사람들 생각이 떠올라 눈물을 쏟는 그 장면은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촬영 전부터 부담이 컸어요. 한편으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큰 감정신을 초반에 찍으니, 마음은 편하더라고요"

김만섭은 남다른 영웅이나, 선인이 아니다. 딸아이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위해 택시를 모는 그 시절 보통의 아버지였다. 그런 인물이 영화 안에서 입체적으로 거듭난 것은 송강호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연기 덕분이다. 평범한 대사도 자신만의 해학을 더하는 특유의 연기 스타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반짝인다.

"송강호가 연기해서 달라 보인다? 그건 아닐 거에요. 연기할 때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고 연기할 순 없거든요. 다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런 목표를 위해 연기하다 보면 유머도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봐요. 누구나에 인생에도 희로애락은 있기 마련이고, 비극적 상황에서도 유머가 발생하는 게 삶이니까요."

송강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2013년 '변호인' 출연 이후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해당 루머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일련의 사태들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송강호

그는 한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자기 검열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자기 검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른 자기 검열이 아니라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데 더 엄격해졌다는 의미에요. 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것이지 사회운동가로 작품을 선택하는 건 아니니까요. 블랙리스트 때문도 아니고요. '택시운전사'도 전 정권 아래에서 선택했고 촬영까지 마쳤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예술적 가치를 우선에 놓고 고르는 소신은 여전해요. 예술가로서 더욱더 엄격하게 작품을 고르고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멀게는 '효자동 이발사'부터 가장 가까이는 '밀정'까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시대극에 출연하며 송강호는 '시대의 얼굴'로 관객들에게 인지되고 있다. 그는 "과찬이십니다. 시대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게 아닐까 싶네요"라고 웃어 보였다.      

송강호는 영화를 거듭해 나갈수록 큰 웃음과 깊은 슬픔이 교차하는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언제나처럼 연기의 원천은 '진심'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더 아름답게, 더 슬프게 연기할까 같은 것을 컨트롤 할 수는 없어요. 연기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감정을 제가 잘 느끼는 것이에요. 때론 아름답지 않고 멋지지 않더라도 제가 느낀 것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해서요.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멋지게 표현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잘 느끼고, 그 감정을 진심을 담아 잘 표현하는 것이에요"

ebada@sbs.co.kr

<사진 =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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