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최고의 1분] '택시운전사' 영화보다 영화같았던 진짜의 전율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03 10:10 조회 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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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은 김만섭의 순천 유턴 신을 꼽을 것이다.

광주의 화염을 뒤로하고 새벽녘 택시에 오른 김만섭은 순천에 들러 딸에게 줄 꽃 구두를 산다. 국수집에 들러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던 그는 광주의 일에 대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짓 뉴스를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울분을 터트린다.

마음을 추스르고 택시에 오른 김만섭은 혜은이의 '제3 한강교'를 흥얼거리며 신호등에 멈춰 선다. 노래를 부르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잊어버린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급히 핸들을 돌려 광주로 향한다.

경북 성주군 벽진면의 한 시골에서 촬영된 이 롱테이크는 송강호의 빛나는 열연이 더해져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광주의 일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던 김만섭과 관객의 마음이 비로소 일치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긴장감 넘치고 극적인 신을 꼽자면 김만섭과 피터의 광주 검문 신이다. 긴장감이 극에 달한 이 신에서 영화는 기적을 보여준다. 더 놀라운 것은 거짓말 같은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은 "그 장면은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회상을 토대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검문소의 군인은 알면서도 자신을 보내준 것 같다고 하셨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영상을 보면 공수부대가 광주를 진압하고 군인들이 군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고개를 숙인 채 부르지 않는 군인도 있다. 차마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택시

송강호 역시 이 장면을 '택시운전사'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우리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의 아픔은 광주 시민들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아픔이다. 또한 수만 군인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그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박성혁 중사를 연기한 배우는 엄태구다. 영화 '밀정'에서 하시모토 형사로 분해 강렬한 악역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야누스의 얼굴과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탓에 등장만으로 공포감을 선사한다. '택시운전사'에서도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기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피터'역의 토마스 크레취만 역시 엄태구와 호흡을 맞춘 뒤 엄지 척을 외쳤다는 후문이다. 장훈 감독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배우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는 것 같더라"면서 "나 역시 단편영화 시절부터 엄태구의 팬이었는데 한 장면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고 극찬했다.  

'택시운전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한 페이지를 그린 영화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김사복과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그들을 도운 이름도 모르는 광주의 시민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을 당시 위르겐 힌츠페퍼의 수상 소감)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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