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류승완은 왜 '군함도'에서 친일 청산을 외쳤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13 09:09 조회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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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2017년 첫 번째 1천 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대다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 여름 국내 4대 투자배급사가 내놓은 텐트폴 영화 중 가장 큰 제작비(약 220억원)을 쓰고, 가장 냉혹한 평가를 받은 영화로 기록될 전망이다.

'군함도'는 680만 명 선에서 국내 상영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155개국에 판매돼 해외 개봉이 이어지는 만큼 손익분기점은 가까스로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는 실패는 흥행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강제 징용의 비극이 서린 군함도를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적 의미는 관객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과도한 논란과 비판 속에서 뼈만 남은 꼴이 됐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영화의 내·외부적 요인에 근거한다.

인터뷰 날 류승완 감독은 생각보다 표정이 밝았다. 개봉 첫날부터 독과점 논란으로 언론과 관객의 질타를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는 주변의 추측과는 달랐다. 그는 개봉 후 광풍처럼 몰아닥친 갖가지 논란에 대해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반응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논란이 전개된 건 있는데 순탄한 과정으로 갈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제작 단계에서도 일본 에이전시가 자국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지 않아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고, 군함도 취재를 다녀온 후 외교부 라인을 통해서 연락을 받기도 했다. '쉽지 않겠구나'라는 걸 느꼈다. 개봉 전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 봐 친일파, 조선인 변절자의 이야기가 있다고 안하고 '이분법적인 구도를 벗어난 영화'라고만 이야기했다. (개봉해보니) 이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더라."

군함도

그의 말대로 '군함도'는 개봉과 동시에 '논란의 화약고'가 됐다. 친일과 항일, 국뽕과 신파 논란에 평점 테러와 스크린 독과점 논란까지 공존할 수 없어보이는 양극단의 논란이 불거졌다.  

"이런 영화에서 논쟁이 안 나오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주 건강한 방식이라고는 볼 수 있지만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영화를 봤다.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의 논쟁이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본다. 어쨌든 우리는 시민 혁명을 이뤄낸 사람들이 아닌가. (관객에 대한) 믿음이 있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의 가치를 관객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군함도'에서 친일 청산의 메시지에 힘을 실었는지' 말이다. 그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에서 택할 수 있는 쉬운 방식이 있다. 누구나 들끓게 할 수 있는 '선동'이다. 그러나 쉬운 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를 다룰 때 친일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영화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베를린'(2013) 촬영 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독일의 어떤 공공장소에선 나치를 언급하면 벌금을 내더라. 여전히 거기엔 나치를 색출하고 법정에 세우는 상설기구가 있다. 베를린 시내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있는데 그걸 만든 곳이 세계 대전 당시 독가스를 만들었던 회사더라.

반면 일본은 어떤가. 군함도 탄광사업으로 이익을 취한 일본 사기업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쓰비시다. 그들은 구조 조정으로 책임자가 바뀌어서 보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게 모두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서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나바론 요새'(1961) 등을 두고 독일 정부나 국민들이 히틀러가 저렇게(사살 당한) 죽은 게 아니라고 비난하진 않잖나.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내 인터뷰 발언을 왜곡해 전달하고 있다. 친일 문제를 다룬 영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반민특위 때 청산됐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계속 문제제기 해야 한다."

문제는 군함도를 바라보는 감독과 관객의 시각차다. 감독은 현장 답사와 치열한 고증 끝에 공간을 실제와 가깝게 재현했고, 서사는 있음 직한 이야기인 허구로 채웠다. 그리고 오프닝에서 '역사를 기반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명시했다. 

관객은 감독이 역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이야기에 크게 반발했다. 대규모 탈출극과 영웅 서사로 비극의 본질을 훼손하고, 역사적 공간을 액션의 배경으로 소비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선인 선(善), 일본인 악(惡)이라는 명확한 피, 가해자의 구도 만큼이나 일본에 기생한 조선인 부역자 묘사에 힘을 실었다는 데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널리 알리길 원했던 관객에게 조선인끼리 싸우는 설정은 사실 유무를 떠나 받아들이기 거북한 지점이었던 것이다. 

군함도

"받아들이기 불편하다고 다루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난 이 영화를 통해 식민 통치 아픔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를 그려 이에 관한 건강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랐다. 대중문화에서 위안부는 많이 다뤘어도 강제 징용에 대해서는 다룬 사례가 거의 없다. 우리 영화는 군인이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군함도에서 노예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탈출하는 이야기다. 군함도를 다루는 동시에 그 시대를 다뤄야 했다. 조사하면서 충격받았던 사례들이 있었다. 탄광 사고가 났을때 조선인들이 일하고 있는 동굴을 매몰했던 건 실제 군함도 인근 탄광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조선인 70여 명이 매몰됐다. 또한 나가사키 조선인 밀집지역에서는 대규모 공습도 있었다."

'군함도'는 시작 후 약 40여분간 관객을 역사의 공간으로 안내하고,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비극을 체화하게 한다. 한국 영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수준의 미술과 촬영, 음향을 통해 말이다. 그는 전반부엔 생생한 역사의 재현을 중, 후반부에는 허구의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허구의 이야기를 내가 세팅한 인물을 통해 해보고 싶었다.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 사람 취급 못 받은 이들 사이에 존재한 폭력과 임금착취 등 피의 역사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를 안게 언제인가? 1990년대에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을 통해서다. 그럼 그 45년 동안 위안부 할머님들은 사라졌던 건가? 아니다.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들은 쉬쉬했다. 피해 본 분들은 죄진 것도 아닌데 숨기고 사셔야 했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를 통해 사람들이 충격적 실체를 알게 됐고 할머니들이 용기 내셔서 비로소 우리가 알게 된 거다. 이 영화로 그 시대를 다룬다는 건 단순히 특정한 사건만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걸 힘닿는 데까지 묘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이 소재를 택한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주요 틀을 대규모 탈주극으로 잡은 이유도 명확했다.

"처음 군함도의 항공 사진을 봤을 때 감옥처럼 보였다. 실제 감옥이 아니라고 해도 속아서 간 사람에겐 감옥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조선 해방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봤다. 증언들을 보면 그분들이 요구 사항은 특별한 게 아니라 '먹을 걸 좀 더 달라', '잠자리가 마른 곳이면 좋겠다' 이런 것이었다.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은 거다. 그리고 미군이 일본 나가사키를 공습할 때 조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다더라. 그곳에 있는 자신을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각종 증언을 모아보니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들은 살아서 집에 가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었다. 그게 그분들에게 해방이었다. 그래서 난 그분들을 방벽 너머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오프닝의 흑백이 군함도의 참상을 보여주는 비극의 의미라면 엔딩의 흑백은 전쟁의 종식이 희극의 시작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질문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자료를 봤다. 사진을 비롯한 모든 기록물은 흑백이었다. 관객들에게 군함도를 소개할때 내가 이미지를 처음 접한 흑백으로 전달하는 게 적합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에서는 일본의 패망과 2차 대전의 종식이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님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소녀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성이면서 아이인 소희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다. 거기서 울기만 하는게 아니라 눈물을 멈추고 '나는 살아있다. 잊지마라' 그런 말을 건네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사실과 허구를 접목할 수 있다. 소재에 관한 요리법은 오롯이 창작자의 선택이다. 그것이 관객의 예상과 맞아떨어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것이 호오의 기준이 될 수 있어도 완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군함도'의 완성도는 관객의 분명한 호불호로 인해 평가 절하된 면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든 진심을 곡해하고 역사의식까지 의심하며 식민 사관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가혹한 마녀사냥이다. 아마도 감독이 가장 억울한 지점일 것이다. 류승완은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관한 한 타협 없는 완벽주의를 추구해 현장에서 예민하고 날카롭기로 유명하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을 모른다거나 허투루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왜 군함도의 참상에 대한 묘사가 적냐고, 심지어 축소했느냐고까지 하신다.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인 '군함도'를 '덩케르크'나 '사울의 아들'과 비교하는데 방향이 너무 다른 영화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많은 영화가 이미 나왔다. '사울의 아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영화다. 군함도를 다룬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이 소재의 영화가 많았다면 나도 다른 시선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대급 제작비가 주어졌고,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고,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게다가 감독으로서 풀어야 할 욕망이 있었다. 물론 관객들이 기대한 것과 다른 영화라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내 선택은 같을 것이다."

군함도

본격적인 사건이 등장하고, 인물간 갈등과 규합이 반복되면서 감독이 역사와 인물을 다루는 스탠스도 모호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를 피하려다 보니 조선과 일본의 대립, 조선인과 조선인의 대립이라는 사분오열(四分五裂)의 상황을 만들었다. 분명한 선도, 분명한 악도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관객이 주인공으로 여기고 감정을 이입한 이강옥(황정민)와 박무영(송중기)은 자신의 가족과 임무만을 생각하는 다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후반부에는 모두를 살리기 위한 선택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변화도 매끄럽게 그려지지는 못했다. 공간과 군중을 다룬 전반부에 비해 인물과 드라마를 부각한 후반부는 개성도 감동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허구와 실화를 아우르는 과정에서 군함도의 고증과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 반면 서사, 특히 드라마는 안전하다 못해 전형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류승완만의 개성을 잃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는 "그렇게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말은 오래 전부터 들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때도 들었고, '짝패'(2006) 때도 나왔던 이야기다. 류승완의 색깔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 여러 면이 있다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재의 부담으로 인해 '보편성' 추구한 것은 아닌지를 물었다. 그는 "그 보편성이라는 것이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사람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친일 문제는 뺏어야 했다. 그런데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군함도'는 개봉 첫날 전국 9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 신기록은 전국 2,027개라는 역대 최다 스크린에서 상영된 끝에 거둔 다소 불명예스러운 결과였다.

개봉 초부터 스크린 독과점의 수혜자로 낙인 찍힌 영화는 관객과 언론의 비판을 샀고, 보지도 않은 영화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가 일어났다. 그리고 개봉 2주만에 예매율은 반 토막이 났다. 일주일 만에 스크린 독과점의 수혜자에서 피해자가 된 모양새다. 

군함도

류승완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이 불거진 개봉 첫 주 침묵했다. 그 이유에 대해 "개봉일 아침에 제작사 강혜정 대표와 스크린 수를 보고 우리도 놀랐다. 내가 의견을 내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무대인사를 비롯해 여러 일정이 잡혀있었고, 일본 관방장관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됐다고 언급하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에 닥쳤다"고 해명했다.

오랜 기간 스크린 독과점 반대를 외쳐온 종전과 다름없는 입장이었다. 류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난 감독이니 배급과 아무 상관 없다 말하는 것도 비겁한 태도다.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잘 정리해서 설명하면 내 입장을 그때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러 난리가 났는데 잘못된 건 잘못했다고 얘기해야지."라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6,500만 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 '주먹이 운다' 등 모두 당시 영화계 환경에서 보면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독립영화로 시작한 그는 어느덧 220억이라는 국내 최대 제작비로 영화를 만드는 충무로 대표 상업 감독이 됐다. 

최저 환경과 최고 환경을 경험한 그는 "큰 영화나 작은 영화나 제작비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라면서 "(그 돈을 쓰면서 영화를 만드는 게) 맞고 안 맞고를 떠나 해볼 만한 이야기라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제작비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순 있겠으나 상업적 부담을 벗어날 수 없고 투자배급사 역시 그에 따른 배급 및 마케팅 플랜을 짜며 생길 수 있는 우려를 언급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순히 제작비를 줄인다? 그렇게 되면 스태프 임금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최저 임금과 최소한의 제작 환경을 보장해주려면 제작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제작비와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bada@sbs.co.kr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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