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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갑숙, 향기를 말하다…“깨어지더라도 나아가던 돈키호테로 기억되길”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8.16 13:43 조회 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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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숙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저 제주도에 살고 있어요.”

배우 서갑숙(57)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기자와 통화를 한 전날, 둘째 딸이 제주도 집에 왔다며 “여자 셋이 모이면 아마조네스와 같다.”며 하하 웃었다. 서갑숙은 3년 전부터 제주도에 살고 있다. 3년 전 가장 힘들었던 시기, 서갑숙은 제주 바닷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잠시 쉬기로 머물렀던 제주도에서 그때부터 아주 살고 있다.

그곳에서 서갑숙은 배우 외에 '향기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향기 테라피스트는 언뜻 '조향사'라는 직업이 떠오르지만, 다르단다.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엄마가 떠오르잖아요? 사람은 시각, 청각보다 후각으로 선명한 기억을 해요. 향기 혹은 냄새를 맡음으로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것, 그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라고 서갑숙은 설명했다.

향기 때문일까, 세월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주살이 때문일까. 서갑숙의 마음에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지난달 첫 번째 향기 콘서트를 연 서갑숙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청춘을 살아온 삶,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출판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던 여성, 누구보다 거침없이 풍파를 거쳐 행복을 찾은 서갑숙과 이야기를 나눴다.

Q. 뭍을 떠나 제주도에서 지낸 지 3년이나 된 지 몰랐네요.

“여기 와서도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와 영화를 네 편이나 찍었어요.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에는 제주도에서 보내고 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고통스러웠는데, 제주도에 온 뒤로는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라요.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은 뭘하고 놀지?'라는 생각을 하며 바쁘게 지내요.”

Q. 제주도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주도는 힘들 때마다 만났던 인생의 전환점 같은 거였어요. 첫 번째 기억은 한창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심장판막증을 진단받았을 때였어요. 한창 허무와 공허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였는데 제주도를 찾았었죠. 그 이후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힘들었을 때, 세 번째는 이번이었어요. 2014년 9월 도시 생활에 지치고 힘들어 이곳을 찾았다가 아예 살게 됐어요”

Q. 당시 왜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나요.

“당시 4월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어요. 몇 달 동안 TV와 뉴스를 보며 슬픔에서 나아가 우울과 허무에 빠지게 됐어요. 바깥에 나가지 않던 시기에 저는 우울한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더군요. 그해 9월, 제주도를 무작정 찾아서 바닷가를 하루종일 걸었어요.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1년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배낭 매고 왔던 제주에 아예 살게 됐어요.”

Q. 그래서일까. 목소리가 정말 밝아졌어요. 

“'놓아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나니 긍정의 에너지가 생겼어요. 덩달아 일에서도 에너지가 생겼어요. '사랑하는 은동아'도 그 때 하게 됐고 지난해 영화도 4편 정도 찍어서 3편은 국제 영화제에 출품됐어요.”

Q. 얼마 전 향기 콘서트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제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 거예요. 향기 테라피가 뭐냐고요?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를 맡은 뒤 여러 가지 오감으로 뇌에 기억을 저장하지잖아요. 후각을 사용해 기억하면 '행복하다', '즐겁다', '슬프다' 등 여러 가지 감정과 연결이 돼요. 음악치유, 미술치유 등 정신적인 건강에 도움 되는 많은 교육이 있든, 향기 테라피는 후각으로 치유를 하는 의미죠.”

Q. 어떻게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네요.

“심리학자도 아니고, 조향 자격이 있는 조향사도 아니예요. 2000년부터 향기와 기억,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이후로 쭉 공부를 하게 됐어요. (서갑숙은 2000년 소설 '향기'를 읽고 남프랑스 그라스를 여행했고 이후로 쭉 향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Q.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획한 콘서트였군요. 

“스스로 가졌던 질문들이 있었어요. 어떻게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사라지게는 할 순 없지만 그런 아픈 기억을 옅어지게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러려면 지금 시작하는 행복한 기억들을 기분 좋은 냄새로 감싸 안고 아픈 기억들을 행복한 기억들로 보듬는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거였죠. 그런 제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런 걸 시작하게 된 거예요.”

Q. 콘서트에서는 어떤 얘기를 했나요? 

"제가 발제를 하듯 '나에게 어떤 기분 좋은 순간이 있었고, 그때 계절과 향기는 어땠는지'를 설명했어요. 토커(talker)가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를 공유(share)를 얘기하고자 했어요. 제가 썼던 책들도 그런 의미였어요. 저의 고통스러운 경험들, 실수들, 치부들을 드러내요. 그렇게 제가 먼저 드러내고 기억함으로써 사람들과 여러 가지 향기로 기억되는 얘기들을 나누고 함께 치유하는 거예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향기는 어떤 건가요. 

"된장찌개 냄새하고 엄마에 대한 향기예요. 제가 막 힘들거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된장찌개 냄새가 나면 저는 늘 콧등이 시큰해져요. 눈물이 핑 돌아요.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소고기를 듬뿍 넣고 엄마가 끓여줬던 된장찌개를 보면 엄마의 큰 사랑이 느껴져요. 엄마의 분 냄새, 비누 냄새를 맡으면 돌아가신 엄마의 품에 파고들던 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해요. 그런 행복한 기억들을 하면 현실에서 힘든 게 위안이 돼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현실에서, 향기로서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제가 터득한 방법이고 콘서트를 하고 책을 쓰려고 하는 이유예요.”

Q. 서갑숙 씨의 배우 이외에 새로운 도전이네요. 

“백세시대라고 하니까, 반 정도 산 거겠죠? 이제 반평생을 더 살 텐데 배우로서도 계속 살겠지만 더 책임감 있는 배우로 살기 위해서면 공부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2의 인생은 저만의 향기를 찾는 공부를 하기로 한 거죠. 인생을 사는 향기, 그걸 찾아야겠다. 그런게 즐거운 일이었어요. 사람들하고 나눠보자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죠.”

Q.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서갑숙 씨만의 향기는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돌진하는, 저돌적이고 무모하고 깨지더라도 의지나 신념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발을 내딛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돈키호테적인 게 개성이고 나만의 끼라고 생각해요. 때론 엉뚱하기도 하고 4차원이라고 하기도 하죠.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독특하지만 편하고 재밌고 위험한 사람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Q. 쉰이 넘은 배우의 새로운 선택이라서 더 놀라워요. 

“나이는 정신적으로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쉰 살이 스무 살처럼 살면 남들이 보기에 안 어울리긴 하겠죠. 저는 사람들이 납득이 가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젊게 생각하고 싶어요. 올해 쉰일곱,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이를 먹는 게 좋아요.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내 눈에 보이고, 노력을 하는 스스로가 굉장히 좋아요.”

Q. 젊은 서갑숙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로 풀기 참 어려워요.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내가 힘들었던 게 아니라, 내가 힘들다고 생각한 그런 잘못 생각했던 모순 때문에 힘들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그 착각을 풀 실마리를 잡았어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고 기분 좋은 것을 많이 쌓아가자 저장하자. 그렇게 살자. 생각한 시점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발을 확확 내딛고 있는 거예요.”

Q. 서갑숙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스스로 드러내는 데에 용기 있는 배우였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서갑숙이 향기를? 왜지?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제가 가진 상처를 솔직히 드러내고 함께 치유하고자 하는 건 지금도 그때도 같아요. 책을 썼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1999년 그때 왜 그렇게 했니?라는 질문도 받지만 그때 의도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어요. 사회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죠. 제 나름대로는 댓가를 많이 치르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그때 내가 왜 힘들었는지 알았고 내 안에 모순을 찾았으니까 나쁘지만은 않아요. 류시화 씨의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으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웃음)”

Q.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던 출판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시 1500매 되는 원고를 썼고, 그중에서 절반 정도가 편집이 됐어요. 제가 썼던 내용은 맞는데 출판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서 일상이 되는, 원인에 대한 부분은 편집이 됐던 거였죠. 성적인 부분과 사랑에 대한 부분이 주를 이뤘어요. 저는 지금 향기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의도로 책을 썼는데 도덕성과 상업성을 묻는 질문만 돌아왔어요. 위안이 된다는 평과 딸 가진 엄마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엇갈린 평가가 있었던 선택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친절하지 않았던 책이었어요. 사랑과 성에만 초점이 맞춰졌으니 그런 평가가 돌아왔고 지금은 그 역시도 저의 일부분이다 받아들여요.”

Q. 제주도에서도 배우로서의 삶을 계속하는 거죠? 

“그럼요. 영화도 하고 싶고 드라마도 하고 싶어요. 방송 시스템에서 멀어져 있고 저도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보니까 드라마와 작품 활동에서 공백이 생기네요. 계속 공부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해피뻐스데이', '오 장군의 발톱', '그림자 먹는 개', '아메리카 타운' 등 좋은 작품을 많이 하며 지내고 있어요.”

Q.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이란 긴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요. 우리는 길 위에 있고 발 한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그렇게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저는 아직 모험심이 가득한 17세 소녀 같은 심정으로 들떠서 살고 있어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참 신기하다'라고 생각해요. 소풍하듯 살 수 있는 요즘이라 참 좋다. 딸들도 내 옆에 있고요. 정말 신나요.”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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