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택시운전사' 장훈의 휴머니즘…"당연한 일이니까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21 13:32 조회 1,805
기사 인쇄하기
장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피터는 왜 기자가 된겨?"

갓김치를 쌀밥에 올리던 푸른 눈의 외국인은 뜻밖의 질문을 받고 멈칫한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시늉을 하며 대답을 대신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밥상머리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난리 통인 광주를 취재한다고 온 기자에게서 예상한 답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심코 지나간 이 신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피터'는 돈 때문에 기자가 됐을까. 영화는 목숨을 걸고 취재 현장에 뛰어든 기자와 그를 실어날랐던 택시운전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걸로 질문에 대한 답을 부연한다.

"2015년 독일에 힌츠페터(피터) 씨를 만나러 갔을 때 궁금했던 게 두 가지였어요. 광주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바로 오실 생각을 했는지와 한국과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였어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동기가 중요했어요. 그 두 가지 질문에 다소 맥빠지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기자니까 당연히 가야지'라는 말이었죠. 그렇다면 '왜 기자가 되셨어요?'라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돈을 세는 동작을 취하시더라고요. 그걸 영화에 넣은 거예요.

장훈 감독은 그 장면에 대해 고인의 대답을 따른 것이라고 했다. 영화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허구의 날개를 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힌츠페터의 대답이 당연하다는 것에 뜻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택시

"자기는 돈 때문에 기자가 된 거고, 기자니까 광주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온 거라고 했어요. 그때는 김이 조금 샜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내가 정말 특별한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되더라고요. 만섭도 그렇고 피터도 그렇고 돈 받고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 일이 위험하더라도 자기 일을 한 거죠. 아주 상식적인 이유잖아요. 실존 인물에 대해 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너무 많이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힌츠페터 기자를 만나 뵙고 느낀 게 의미부여와 강박, 해석, 깊이 이전에 상식이 제일 중요하단 거였어요."

송강호가 연기한 보통 사람 '김만섭'에 비해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 대한 입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에 대한 장훈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2008)로 데뷔해 '의형제'(2010), '고지전'(2011)을 통해 흥행 감독 대열에 올라섰다. 장르와 소재는 달라도 영화의 중심에는 늘 '인간'이 있었다. 시대와 이념의 테두리 안에서도 전체가 아닌 개인의 온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휴머니즘에 대한 그의 철학은 '택시운전사'에서도 오롯이 살아있다.

이 영화는 암흑의 시대에 진실을 위해 싸웠던 '보통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한 명은 택시를 운전했고, 한 명은 카메라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영화는 두 사람의 시선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고지전' 이후 차기작 시나리오를 쓰던 장훈 감독은 2013년 영화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로부터 한 편의 시나리오를 받게 된다. 엄유나 작가가 쓴 '택시 드라이버'였다.

"일주일 정도 고민을 했어요. 작품은 좋았지만,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내가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오히려 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죠.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김만섭이라는 인물 때문이었어요. 나 자신처럼 보통 사람인데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택시

'택시운전사'는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을 바라보는 영화다. 그 시대를 모르는 현재의 대다수의 관객은 송강호와 토마스 크레취만의 눈으로 그날의 참상을 따라갔다.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을 보여주는 것이 다른 광주 소재의 영화와 큰 차이점이었어요. 두 사람의 시선도 조금 다른데 만섭의 시선은 당시 광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동시대 대다수의 한국 사람이에요. 피터의 시선은 한국을 벗어난 다른 나라의 기자로서 5.18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에요"

이 영화는 전 정권에서 기획돼 촬영까지 마쳤다. 블랙리스트 광풍 속에서도 작품의 독창성을 잃지 않으며 완성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송강호는 '의형제'를 통해 장훈 감독과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의 출연 제안을 받고 한차례 고사했다. '변호인'(2013) 때와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 게다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무게감 때문이었다. 장훈 감독은 송강호에게 재고를 부탁했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송강호 선배의 음성이 지원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선배님이 적역이라 생각했던 건 김만섭이라는 인물은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해서 봐야 하는 평범한 사람인데 연기적으로는 요구되는게 많은 어려운 캐릭터예요. 평범한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만드는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게다가 인물의 내적인 변화도 치열하게 그려지는 인물이고요."

알려졌다시피 송강호는 전 세대의 관객이 사랑하는 국민배우이자 영화계 블랙 리스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변호인' 이후 그는 쇼박스가 투자배급한 영화에만 출연해왔다. '변호인'을 투자 배급한 NEW와 대기업 계열의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블랙리스트 여파가 아니겠냐는 의혹도 많던 상황이었다.      

장훈

"당시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제작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차기작에 투자된 돈이 다 빠져나가는 일도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희 역시 '광주 민주화운동 영화입니다'라고 알리고 시작할 수 없었어요. 투자가 어렵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한 차례 고사한 마음을 돌려 출연을 결정한 송강호 선배님 덕분에 투자부터 제작이 수월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 또한 여러 고려가 필요했을 텐데도 기꺼이 함께한 것은 각자 내면에 '이 영화는 꼭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작품의 취지와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 모여서 완성된 영화예요."

'택시운전사'는 개봉 19일 만에 전국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7년 첫 번째 천만 돌파작이자 전체 한국영화로는 15번째, 통산 19번째 기록이다.

정권이 바뀌고 찾아온 5.18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동시대를 살며 아픔을 나눴던 사람들부터 그 시대의 비극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현재의 사람들까지 5.18의 의미를 되새기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영화의 내적 감동과 외적 의미 획득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큰 아쉬움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의 클라이스막스인 후반부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택시운전사'가 택한 가장 큰 영화적 허구다. 장훈 감독은 이 장면의 비현실성과 아쉬움에 대한 지적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시나리오 초고에서 저 역시 가장 많이 부대끼는 신이었어요.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기능적으로 보일 수 있었ㅇ죠. 역사를 다룰 때 실제의 이야기와 영화적 표현의 균형은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예요. 선을 넘어가면 의도나 의미가 무너져 창작자로서의 태도도 모호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나 광주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장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 신이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촬영했던 것 같아요."

장훈 감독은 카체이싱의 장면은 허구지만, 당시 광주의 택시 운전사들이 민주화 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는 등 크게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택시운전사

카체이싱이 영화적 허구로 빚어낸 감동이라면 실제의 역사가 빚어낸 거대한 감동과 전율도 있다. 바로 김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 검문소를 빠져나오는 신이다.

"그 장면은 실화예요. 그 군인이 왜 김만섭과 힌츠페터를 왜 모른 척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위치에 있다 해도 그 역시 한 사람의 시민이었단 거죠. 모두가 그 일(시민 진압)에 동의해 행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요. 이후 힌츠페터가 공항에서 빠져나간 것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좋은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참이길 바라는 명제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간혹 사람을 보면 영화가 보이고, 영화를 보면 사람이 보일 때가 있다. '택시운전사'를 만든 장훈 감독에게 받은 인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훈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꺼내자 그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라고 머쓱해 했다. 

"아주 오랫동안 꿈을 못 꾸고 있었어요. 대학교 시각디자인(서울대학교)을 전공했어요. 그때는 막연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이 뭘까'같은 생각을 하면서 철학책을 보기도 했죠. 졸업이 다가오는데도 그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남들처럼 대기업에 취업하면 그 답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영화는 삶의 은유, 현실을 위한 은유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통해 삶을 사는 분들이 뭔가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말을 하고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네요"

차기작은 장영실과 세종대왕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궁리'다. 첫 사극 도전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또 어떤 휴머니즘을 구현할까. 장훈의 당연한 여정이 줄 또 한 번의 감동이 궁금하다. 

ebada@sbs.co.kr

<사진 = 쇼박스 제공>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