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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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공범자들', 내부자들이 밝힌 공영방송 '잃어버린 10년'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22 15:32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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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서울 프레스 센터. 누군가의 출판 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글쓴이의 기념사가 끝나기 무섭게 한 남자가 돌진해 "그때 왜 그러셨어요?"라는 돌발 질문을 던진다. 행사의 주인공은 금세 낯빛이 어두워지며 난감해한다.

질문을 던진 이는 MBC 해직 PD인 최승호, 대답을 회피한 사람은 MBC 전 간부다. 최 PD는 이날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한 마디를 남긴다.            

"잘들 사네. 잘들 살아."   

이 말에는 뼈가 담겨 있다. 누군가의 행복한 삶을 앗아간 이들이 제 삶을 화려하게 영위하는 모습에 대한 쓴소리다. 

지난 17일 개봉한 '공범자들'(감독 최승호)은 공영방송 MBC, KBS의 잃어버린 10년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들의 시선으로 구성원의 자부심과 시청자의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 MBC, KBS의 몰락을 그렸다.

영화의 연출은 'PD 수첩'의 스타 PD에서 대안 언론 '뉴스타파'의 진행자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변신한 최승호가 맡았다.

'공범자들'은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논픽션 드라마다. 허구의 세계가 아닌 실재의 현실을 다룬다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각종 기록을 창작자의 관점으로 분류해 관객 스스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범자들

영화는 '점령', '반격', '기레기' 세 장으로 구성했다. 점령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출범부터 함께 시작된 MBC, KBS의 언론 탄압 사례를 생생하게 그린다. KBS는 내각 인선 비판 보도로, MBC는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PD 수첩' 보도가 빌미가 됐다.

반격에서는 보도와 방송의 자유를 막은 방송사를 상대로 한 구성원들의 시위와 파업 양상을 담았다. 잇따른 낙하산 인선과 방송사 구성원들의 반대 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된 기록들이다.

기레기에서는 정권의 압력에 휘둘린 공영방송과 언론이 어떻게 전락해 갔는지를 그린다. 무엇보다 기자가 질문하지 못하고, 언론이 감시와 비판 기능을 잃을 때 빚어질 수 있는 촌극을 보여준다. 더불어 전 정권의 세력이 남아있는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클라이맥스는 영화가 공영방송을 몰락시킨 주범으로 지목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승호 PD의 대면이다. 최승호 PD는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부터 MB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잠복 끝에 짧지만 강렬한 대화를 끌어냈다.

영화는 MB와 최승호 PD와의 만남을 4년 전과 후로 나눠 교차로 보여준다. 최 PD는 4년 전 청와대를 떠나 논현동 사저로 향하는 MB에게 다가가 "4대강 수심 6m, 대통령께서 지시하셨습니까?"라는 돌발 질문을 했다. 대답이 없는 MB에게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는 일침을 던진 바 있다.

최승호 PD 개인에게 MB가 특별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은 MBC 재직 시절 'PD수첩-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편 방송을 마지막으로 해고당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재회한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독하고 쓴 블랙 코미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MB는 과거의 일을 부인할뿐더러 천연덕스럽게 상대방의 근황을 묻는다. 4년 전과 후의 일관된 태도가 보여주는 극적 효과는 상당하다.   

이처럼 '공범자들'은 비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임에도 웃어선 안 될 장면에서 끊임없이 실소가 터진다. 물론 이 웃음은 역설의 의미일 것이다. 

공범자들

영화적 아쉬움도 존재한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의혹 제기부터 시작해 취재, 진실 보도로 이어진 전 과정을 담아낸 감독의 전작 '자백'(2016)의 완결된 구성과 달리 '공범자들'은 지난 10년 기록의 정리와 전달에 그친다.

공범자들과 주범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한 취재 역시 충분하거나 매끄럽지는 않다. 정식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사건의 발단과 추이를 들을 수 있었던 MBC, KBS 파업 참여자들과 달리 언론 탄압의 대리인으로 꼽혔던 사람들의 취재는 도망치는 사람과 쫓는 사람의 추격전을 담는데 그쳤다. 

이는 영화 제작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점, 주요 인물들이 취재를 거부했다는 한계에 부딪힌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범자들'의 가치와 의미는 충분하다. 대다수가 자멸했다고 욕했던 공영방송의 몰락엔 보이지 않은 압력이 있었고, 수많은 구성원들은 권력에 대항해 싸웠다는 것을 알린다.

무엇보다 정권 교체와 함께 MBC, KBS 내에서 공영방송 정상화의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 MBC는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아나운서의 제작거부에 이은 총파업을 예고했고, KBS 노조 역시 파업 동참을 예고했다. 이 싸움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정보 전달과 사태 판단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범자들'은 MBC 전·현직 간부의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을 받아 지난 17일 개봉했다. 관객들은 객석을 채우며 호응하고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5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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