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시네마Y] 전사 최민식→바보 김수현→사이코 이종석… 韓 영화 간첩 변천사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23 16:20 조회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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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대한민국은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는 뉴스가 새삼스럽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이 낯설지 않다. 

영화는 사회와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다. 그러다 보니 남북 대치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도 수없이 쏟아졌다. 1990년대 후반 한차례 불었던 남북 영화 붐에 이어 2017년 다시 한번 남북 영화 제작이 줄을 잇고 있다. '공조', '브이아이피'에 이어 '강철비', '공작' 등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소비되던 남북 코드는 최근 들어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상반기 700만 관객을 동원한 '공조'가 코믹 액션으로 풀어냈다면 금일(23일) 개봉한 '브이아이피'는 범죄 느와르 장르로 담아냈다.

캐릭터 역시 한층 풍성해지고 있다. 1970~80년대 반공 영화 속에서 절대 악으로 그려지던 간첩 캐릭터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입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냉기와 더불어 온기까지 갖춘 인물이 등장했고, 관객의 웃음과 눈물을 뽑아낼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거듭나기도 했다. 

'브이아이피'는 기획 귀순이라는 낯선 소재만큼이나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북한 로열패밀리 출신의 사이코패스 김광일이다. 임무와 지령이라는 이유 있는 악당을 넘어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묘사된 다양한 간첩 캐릭터를 정리해봤다. 

쉬리

◆ '쉬리' 최민식, 카리스마 넘치는 혁명전사 박무영 

1998년 개봉한 영화 '쉬리'는 강제규 감독의 대표작이자 당대 최고의 배우로 사랑받던 한석규의 히트작이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전국 6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안방극장에서 활약하던 최민식을 영화계에 정착시킨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북한의 강경 세력은 특수부대인 특수 8군단을 남한에 파견해 남북의 평화적 교류를 꾀하는 자국 내 온건파 제거 및 남한 사회의 혼란을 획책한다. 박무영은 고성능 액체 폭탄을 CTX를 탈취해 전방위적인 테러를 감행하고자 한다. 한국 정보기관 OP의 요원 유중원(한석규)과 이장길(송강호)은 박무영을 쫓고 위장 간첩 이방희(김윤진)는 유중원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 

최민식은 북한 특수 8부대를 이끄는 박무영으로 분했다. 선 굵은 연기로 주인공 한석규를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종전 한국 영화 속 간첩이 절 대악이나 명령에만 복종하는 로보트 같은 캐릭터로 그려졌다면 최민식이 연기한 박무영은 생기와 활기가 느껴지는 악역이었다. 입체적인 캐릭터 설계도 설계지만 강렬한 연기로 인물에 색깔을 불어넣은 최민식의 열연이 돋보였다. 

영화 후반부 유중원와 박무영이 맞붙는 액션 시퀀스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과 드라마의 강점을 부각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간첩

◆ '간첩리철진' 유오성, 직업인으로서의 간첩 

'간첩리철진'(1999)은 남북코드를 블랙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수작이다. 리철진(유오성)은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남파된 대남 공작부 요원. 남한에서 개발된 슈퍼돼지 유전자 샘플을 입수해 북으로 가져가는 임무를 띠고 고정간첩 오 선생에 집으로 향한다. 리철진은 오 선생(박인환)과 그의 딸 화이(박진희)와 아들 우열(신하균)과 함께 남한 살이에 적응해가던 중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직업인으로서 간첩의 모습을 부각한 첫 번째 영화가 아닐까 싶다. 30년 된 고정간첩의 능숙한 남한살이와 모든 것이 낯선 신입 간첩의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타이틀롤을 맡은 유오성은 외모부터 스타일 그리고 섬세한 연기로 실제 간첩을 방불케 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를 연출한 장진 감독은 어눌한 캐릭터와 썰렁한 유머를 장착해 기묘한 웃음을 선사했다. '슈퍼돼지'라는 다소 뜬금없는 설정 역시 감독의 재기가 돋보였던 대목이었다.

간첩

◆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어리숙한 동네 바보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는 남북 소재 이야기의 흥미로운 변주를 통해서 10~20대 젊은 층까지 사랑받은 영화다. 웹툰 원작의 영화답게 흥미로운 설정과 만화 같은 캐릭터가 돋보인다. 

북한의 남파특수공장 5446부대의 엘리트 요원인 원류환(김수현)은 공화국에선 혁명 전사지만, 남한에서는 동네 바보 행세를 한다. 오랜 기간 별다른 작전 지시를 받지 못한 원류환에게 동료인 리해랑, 리해진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임무에 착수하게 된다.

김수현은 이 작품에서 1인 2역에 가까운 간첩 캐릭터로 분했다. 초록색 운동복 차림에 더벅머리, 어눌한 말투로 등장한 초반부는 각 잡힌 제복, 화려한 무술 실력을 뽑내는 후반부와 대비를 이루며 여성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만화적인 설정이 가미된 간첩 캐릭터는 종전 남북 영화 코드와는 다른 색깔과 재미로 전국 800만 관객을 사로잡는 원동력이 됐다.  

브이아이피

◆ '브이아이피' 이종석, 여성 대상 잔혹범죄자          

'브이아이피'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세습되고 실세 장성택이 처형당하기까지의 북한의 정치 권력의 이동을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을 장성택의 오른팔이자 자금 담당책 김모술(가상인물)의 아들로 설정해 한국 국정원과 미국 CIA가 기획 귀순에 관여하는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종석이 연기한 김광일은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색깔의 북한 고위층 인사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간첩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의 동선이 한국과 미국, 중국 등 북한 주변국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김광일을 기획귀순 시켰지만, 이 인물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 범죄를 일상는 사이코패스였던 것. 북한에서뿐만 아니라 홍콩, 한국 등 이동 거점마다 잔혹 범죄를 저지르며 국제적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영화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김광일을 자신이 각본을 쓴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최민식)을 능가하는 악역으로 만들었다.

이종석은 김광일 역할을 맡아 데뷔 이래 첫 악역에 도전했다.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 고전 문학을 즐기며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고상한 황태자의 외모의 소유자지만 웃으면서 여성의 몸을 난도질하는 희대의 싸이코패스로 분해 관객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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