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라이프 문화사회

[인터뷰] ‘나폴레옹’ 김수용 “고민할 때 행복…변태(?)인가요?”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8.24 16:42 조회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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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나폴레옹, 너의 독수리 같은 눈빛이 마음에 들어”(뮤지컬 '나폴레옹' 탈레랑 대사 中)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뒤에 있던 정치가 탈레랑. 6명의 군주를 섬기며 권력의 중심에 있던 탈레랑은 절름발이었다. 불편한 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했던 그였지만 정치야욕은 수백 년 역사를 관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지팡이'는 소품이나 설정에 불과할지 모른다. 뮤지컬 '나폴레옹'에서 탈레랑 역을 맡은 김수용(41)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든 손을 오른손, 왼손으로 바꿨다가, 허리를 폈다가 들었다가, 다리를 굽혔다가 땅에 끌었다가 등 수천 개의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했다. 무대에서 김수용의 탈레랑과 지팡이를 봤다면, 그것이 바로 김수용이 내놓은 해답이다.

김수용은 늘 그런 식이다. 진부한 가치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성실'은 김수용에게 늘 따라다니는 칭찬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뮤지컬 연습벌레들 사이에서도 김수용은 늘 성실함의 대명사처럼 꼽힌다. 최근 유행한 TV드라마 얘기를 꺼내니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TV안보시냐?” 물었더니 “TV 볼 시간이 없다.”면서 “전편을 다 본 드라마는 '마지막승부'(1994)이 마지막인 것 같다.”며 할리우드 배우 맥컬리 컬킨을 닮은 미소를 짓는다.

Q. 그럼 무슨 낙으로 살아요?

“공연 준비하고, 또 무대에 올라가는 게 너무 재밌어요. 제가 변태(?) 기질이 있는 걸까요.(웃음) 할 때마다 힘들고 머리가 부서질 것처럼 고민을 하는데, 실타래가 풀리고 관객들이 즐거워 해주시면 그게 제일 재밌어요.”

Q. 그 버거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나요?

“역창조라고 해야 할까요. 머릿속에 어떤 인물을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을 상상해요.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뭘 먹고 어떻게 살았을까. 수만가지 경우의 수들이 나오는데,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이는, 그럴법한 것들로 빈칸을 채워나가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Q. '나폴레옹'의 탈레랑도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인물인가요?

“역사자료를 찾아봤는데, 그렇게 많은 내용은 없었어요. 발췌해서 본 게 다이긴 하지만 제가 눈여겨본 건 절름발이었다는 것과 나폴레옹을 비롯해 여러 명의 군주를 모셨다는 것. 그 두 가지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며 탈레랑에 빠져들게 됐어요.”

김수용

Q. 어떤 면에서 탈레랑에 매력을 느낀 건가요?

“현대 정치만 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주류가 달라지는데, 최소 6~7차례 통치자가 바뀌었는데도 재상이라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해도 그가 가진 내적 에너지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됐어요. 그리고 당시에 절름발이었다면, 약간 좀 과하게 얘기하면 '낙오자', '실패자' 취급을 받았을 거예요. 그런 편견과 아픔을 이기고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그는 내가 상상 그 이상으로 대단한 슬픔을 딛고 올라선 사람일 거예요.”

Q. 디테일한 연기에도 신경을 쓴 것 같더군요.

“지팡이를 짚는 걸음걸이를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좀 더 탈레랑 같은 모습이 될지 고민했어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는 들고 한쪽 다리를 바닥에 끌면서 하는 탈레랑의 걸음이 만들어졌어요. 쉽게 보이지만 저에겐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거예요. 이밖에도 연출님에게 나폴레옹과 탈레랑이 명과 암으로 대비되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고 그런 부분에도 신경을 썼어요. 나폴레옹이 이혼을 발표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탈레랑의 의도가 드러나요. 모든 인물들 가운데 홀로 미소를 짓죠.”

Q. 탈레랑이 나폴레옹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뭔가요.

“사랑이죠. 많은 군주를 모셔본 정치가에게는 흔히 영웅을 구별하는 눈도 정확할 거라고 생각해요. '자네의 독수리 같은 눈빛이 마음에 들어'라고 탈레랑이 대사를 하죠. 반면 조세핀은 탈레랑이 나폴레옹을 중심에 두고 세운 빅피처에 방해요소예요. '승리의 기념품' 정도로 여겼는데 자꾸 나폴레옹의 장래를 위협하니 제거한 거죠. 그 계제와 방법론을 다를지언정 탈레랑 역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작고한 아버지가 드라마 PD였다고요?

“아버지께선 지금의 KBS 방송국이 통폐합되기 전 TBS 소속의 드라마 PD셨어요. 동국대 연영과 캠퍼스 커플인 어머니와 결혼하셔서 저와 동생을 낳으셨어요.(동생 역시 연기를 전공, 현재 학원사업을 하고있다.) 어릴 때 아역 배우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좋은 추억 한번 쌓아봐라'하는 마음으로 촬영장에 저를 데려가셨는데, 그게 바로 1982년 드라마 '세 자매'였어요. 故 김영애, 이경진, 정윤희 씨 등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아역으로 출연했고, 이후 '갓난이'로 이름을 알렸죠. 주로 거지, 전쟁고아 역할을 맡은 것 같아요.(웃음)”

Q. 어릴 때 연기했던 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단편적인 몇 가지 기억이 나요. 제가 맡은 역할은 다 피부를 시커멓게 해야 하고 늘 추위에 떨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눈 오는 날 짚신 신고 숲에 들어가서 코피 흘렸던 거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전설의 고향'에 출연하게 된 거예요. 게다가 어린 도령 역이라서 숯 분장도 안해도 되고, 옷도 껴입을 수 있겠다고 좋아했는데, 세 씬만에 죽고 귀신이 돼서 다시 특수분장을 해야 했던 '웃픈' 일도 있었어요.”

Q. 온 집안 사람들이 연기를 했는데, 아버지는 생전 김수용 배우의 연기를 보고 뭐라고 하셨어요?

“누구보다 매서우셨죠. 첫 공연 끝나고 아버지, 어머니와 집에 가는 길은 늘 혼나는 날이었어요. '야, 네가 제일 못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솔직히 틀리게 하신 말씀은 없었어요. 다 맞는 얘기인데도 저는 괜히 심통 나고, 그럼 어머니가 풀어주신다고 방에 들어오셨다가 '근데 말야. 너 정말 연기가 그게 좀 그렇더라'고 또 지적하셨어요. 그럼 또 세계2차대전 되죠. 그래도 나중에는 배우로서 저를 인정해주셨어요.”

Q. 스스로 괴롭히고 고민하다 보면 정답은 꼭 나오던가요?

“힘들게 고민하고, 때론 혼나다 보면 어느 순간 명쾌해질 때가 있어요.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면 어렵던 연기가 쉽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2005년 '뱃보이'로 신인상을 받았는데 인간과 박쥐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역할이었어요. 작품의 3분의 2가 쇠창살 안에서 해야 하는 연기인데, 깨지고 찢기고 멍들며 치열하게 박쥐에 대해 고민했고 만족스러운 연기를 얻었어요.”

김수용

Q. 뮤지컬 '인터뷰'에서도 '나폴레옹'에서도 그리고 많은 전작에서도 '성실의 아이콘'이란 평가를 받는 것 어떻게 생각하나요?

“성실함밖에 가진 게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굉장힌 소질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주신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시작했고, 저도 예상치 못하게 인생의 반 이상을 배우로 살았어요. 성실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Q. 일곱 살 때부터 배우를 했어도 여전히 어려운 게 배우군요.

“할수록 어려워요. 동시에 누구에게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군이다 보니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요. 누군가 저를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아니든 제가 했던 연기들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쇼미디어그룹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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