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김지혜의 논픽션] 그 많던 공포영화는 어디로 갔을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8.27 14:43 조회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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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여름=공포 영화'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1990년대 후반 붐을 형성했던 것도 까마득한 옛일처럼 여겨진다.

매년 여름, 관객을 오들오들 떨게 했던 국산 공포 영화가 몇 년째 가뭄이다. 크고 작은 사이즈, 상업·독립 영화를 막론하고 공포 영화 기획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몇 년간 이어져 온 토종 공포물은 올해를 기점으로 명맥이 끊겼다.

그 빈자리는 흥미로운 소재와 탄탄한 만듦새로 무장한 할리우드 공포 시리즈가 채우고 있다. 

장산범

◆ 국산 공포, 사라진 지 오래…'무서운 이야기'도 뚝

한국 공포 영화는 90년대 후반 '여고괴담' 시리즈의 등장으로 붐을 일으켰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입시 스트레스, 교사와 제자의 갈등, 우정의 균열 등을 소재로 공감 가능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이 시리즈는 2009년 5편을 끝으로 긴 휴지기에 들어갔다. 

'여고괴담'은 신인 감독과 배우의 등용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감독으로는 '만추'의 김태용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민규동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속편으로 평가받는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1999)로 데뷔했다.

또한 1대 호러퀸 김규리, 박진희, 최강희를 시작으로 공효진, 박예진, 송지효, 한효주, 김옥빈, 오연서 등 수많은 배우들이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 데뷔해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오락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공포 영화가 많았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2004), 김용균 감독의 '분홍신', 정식·정범식 감독의 '기담'(2007),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2009)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휘청였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마니아층이 있다 보니 '여름용 한탕 장사'로 접근하며 자멸했다. 시대의 분위기와 사회의 그늘을 담아내는 장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자극만을 위한 자극을 줄 뿐이었다. 결국, 기획의 난립과 완성도 저하가 계속되면서 국내 관객도 외면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이야기

2012년 민규동 감독이 이끄는 '수필름'은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만들어 공포 영화의 부활을 알렸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정도의 알찬 성적을 내며 3편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올여름엔 이 영화마저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고 대기업 계열의 투자배급사가 영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름=공포영화가 아니라 여름=블록버스터라는 공식이 자리 잡으면서 공포 영화 기획 자체가 사라졌다"고 환경적 변화를 언급했다.

이어 "1년 중 가장 큰돈을 벌어야 하는 여름 시장에서는 스타 감독과 배우를 기용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놓아야 한다. 공포 영화는 그만한 경쟁력이 없다. 게다가 아이디어와 완성도로 무장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국산 공포 몰락의 원인을 분석했다.

◆ '컨저링' 유니버스, 공포 마니아를 사로잡다

국산 공포의 빈자리는 할리우드 호러물이 채우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계관까지 형성한 '컨저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13년 개봉한 '컨저링'은 전국 226만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카피는 영화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 표현이다. 

패론 가족이 로드 아일랜드의 해리스빌로 이사 오면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것)을 겪고, 심령 연구가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사건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컨저링2

'쏘우'의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한 '컨저링'은 귀신 든 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분위기와 소리로 공포를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엑소시스트'(1973)로 대표되는 엑소시즘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로 대표되는 초자연적 공포를 응축한 작품으로 호러 마니아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컨저링'의 성공에 힘입어 스핀오프작 '애나벨'도 제작됐다. '컨저링' 1,2와 '애나벨' 1,2편은 적게는 93만('애나벨'), 많게는 226만('컨저링1') 관객을 모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 10일 개봉한 '애나벨:인형의 주인' 역시 대작들이 포진한 여름 극장가에서 144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 '여고괴담' 돌아온다…안국진 감독 준비 중

국산 공포의 명맥이 끊긴 가운데 '장산범'의 100만 돌파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는 11일 만에 100만 고지에 올랐다. 공포 스릴러 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더 웹툰: 예고살인' 후 4년 만이다.

'장산범'은 엄밀히 말해 공포 영화는 아니다. 공포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지난해 700만 흥행에 성공한 '곡성' 역시 공포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90년대 공포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고괴담'이 부활을 알린 것. 제작사 '씨네2000'(대표 이춘연)은 8년 만에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를 제작 중이다.

영화의 메가폰은 2014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각종 시상식 신인상을 휩쓴 안국진 감독이 잡는다. 충무로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유망주가 '여고괴담'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의 관심도 쏟아지고 있다.  

현재는 시나리오 집필 중인 단계지만, 시리즈의 부활 소식만으로도 공포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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