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VIP' 이종석이 안 쓴 얼굴…악마를 보았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9.03 09:58 조회 1,693
기사 인쇄하기
이종석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큰 키에 훤칠한 몸. 만화책 속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피사체다. 그러나 이 만화 같은 얼굴의 소유자는 상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여성을 가해한다. 일순간 관객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악마'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에서 이종석은 한 번도 드러낸 적 없는 얼굴을 드러낸다. 반대쪽 얼굴에 가려졌던 이면 혹은 어딘가 모르게 잠재돼있던 악마성의 발현이었다.

이것은 북한 로열패밀리의 아들이자 남한과 미국이 탐내는 정보를 가진 VIP, 그러나 여성을 잔혹한 방식으로 죽이는데 희열을 느끼는 금수 '김광일'을 연기하는 데 있어 필요했던 성질이었다. 

안방극장에서 멋진 외모와 따뜻한 이미지로 여심을 사로잡아왔던 이종석에게 이번 영화와 캐릭터는 엄청난 도전이다.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어쩌면 팬들이 사랑했던 자신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할지도 모르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용기를 냈고,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노메이크업의 말간 얼굴에 맨투맨 티셔츠 차림으로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이종석은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고민, 촬영 뒷이야기 등을 풀어놓았다.

이종석

◆ 시나리오 읽고 감독에게 러브콜…"남자 영화 열망" 

이종석은 '브이아이피'의 시나리오를 읽고 박훈정 감독에게 먼저 출연 의사를 전했다. 보통 러브콜이 감독에서 배우에게로 가는 것과는 반대였다. 이종석은 많은 캐릭터 중 '광일'에 눈이 갔다. 자신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자신이 연기해온 캐릭터와도 극단인 사이코패스였다.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배우의 욕망이 이종석을 움직이게 했다.

"오래전부터 '남자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과연 내가 어울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거기서 인상을 쓰고 담배를 들고 서 있을 때 관객이 절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엄두를 못 냈죠.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제가 가진 것들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많은 살인마나 사이코패스 역할이 있었지만 '김광일'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한 번도 안 해 본 악역 연기는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껏 몸에 밴 관성화된 연기 스타일이 발목을 잡았다.

"악역을 맡으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데, 제가 본능적으로 대사 톤을 순화시키려고 하더라고요. 선한 역할이나 정의로운 인물들을 연기해오다 보니 익숙한 쪽으로 가게 되고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잡아주셔서 잘 마칠 수 있었죠."

이종석

이종석은 드라마든, 영화든 현장에 미니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이 연기한 모습을 담는다.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로 보며 장,단점을 파악하고 다음 연기에 반영해왔다. 그러나 이번 현장에서 박훈정 감독은 모니터를 못 보게 했다.

박훈정 감독을 전적으로 믿어야 했다. 감독의 머릿속엔 김광일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계가 끝난 상태였다. 이종석은 감독이 그려놓은 김광일의 이미지, 그리고 캐릭터를 잘 채워 넣는데 몰두했다. 다행히 감독의 디렉팅은 꼼꼼했다. 

"감독님이 김광일에 대해 '아메리칸 싸이코의 크리스찬 베일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뭔지 모르지만 일단 '네, 알아요' 하고 아는 척을 했어요. 실제 촬영에서는 '여기서는 이빨 보이고 웃지 마', '한쪽 입꼬리만 웃지 마' 이런 식으로 디렉션을 주셨어요.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직접 각본을 쓰셨으니 그렇게 구체적인 디렉션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무런 설명을 안 해주고 '그런 느낌 있지? 알잖아' 이런 식으로 모호하게 말할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땐 난감한데 일단은 '알아요'라고 한 뒤 스스로 찾아가는 식이었어요."

브이아이피

◆ "프롤로그 촬영 후 메스꺼워"…힘겨웠던 범죄 연기

영화 '브이아이피'가 공개된 후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표현 수위'였다. 특히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여성 대상의 범죄 묘사는 수위가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광일은 친구들이 한 여성을 괴롭히는 모습을 관망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더 큰 위해를 가한다. 아름다운 얼굴에 우아한 몸짓으로 등장한 귀공자가 처음으로 본성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연기를 한 이종석에게도 힘겹게 다가왔다.

"그 장면이 첫 촬영이었어요. 현장에서 피를 많이 마주하다 보니 속이 메스껍고 종일 멍했어요. 피비린내 같은 게 진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 프롤로그는 김광일의 악마성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종석에게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촬영이었다.

"그 장면에서 광일의 표정이 거의 없어요.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떤 감정인지를 공감을 못 했으니까요. 보통의 사이코패스처럼 살인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거나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 지문에는 '미소'라고 써있고 여유로움, 비릿함 등으로 부연돼 있는데 무슨 의미일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테이크(촬영)를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완성된 결과물을 보고 고민한 만큼 강렬하게 나온 것 같아서 안심했죠."

배우는 육신을 이용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만큼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 이종석은 이번 영화는 그런 홍역을 앓지 않았다고 했다. 

"김광일은 저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에요. 깊게 빠져서 연기를 했다기 보다는 김광일의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에요. 다만 영화 개봉 후 드라마가 방영되는데 관객들이 영화 속 잔상이 남아 드라마 속 캐릭터를 몰입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요."

영화가 관객에게 공개되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 지금, 이종석의 선택과 노력은 옳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20대의 젊은 배우가 데뷔 초부터 구축해온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변화에 대한 열망, 연기에 대한 고뇌에 따른 결정이었다. 다른 것을 떠나 그 의지와 노력을 박수받을 만하다. 

이종석

◆ "연기 잘하는 배우, 다 찾아본다"

이종석은 자칭 '집돌이'다. 스케줄이 없을 때는 집에 틀어박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특히 그는 드라마 광이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도 있지만, 또래의 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고 관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젊고 잘생긴 배우의 연기는 보는 게 좋지 않나요? 같은 지문이나 대사를 줘도 모두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연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드라마 볼 때 남자주인공의 대사를 따라 해볼 때가 많아요. '나라면 이렇게 표현했을 텐데, 저 배우는 저렇게 하네' 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특히 또래 배우들 작품은 꼭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는 또래 배우 중 김우빈과 박서준을 언급했다. 특히 김우빈은 널리 알려진 절친 관계. 자신에겐 없는 매력을 가진 김우빈이 오랫동안 부러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제겐 너무나 애틋한 친구예요. 특히 (김)우빈이가 가진 남성적인 매력을 부러워했어요. 물론 저도 저만의 매력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그 친구의 매력과 연기력, 센스는 늘 부러워요."

이종석은 내년 서른이 된다. 서른의 시작과 입대를 앞둔 만큼 남은 1년이라는 시간은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는 "최대한 많이 소진하고, 소비해서 소멸할 것"이라며 "작가들은 마감날을 정해놓으면 글이 빨리 나온대요. 마찬가지로 저도 지금 제가 가진 매력을 소비하고 소진하다 보면 또 새로운 것을 찾을 것 같아요. 그게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또한, 치열하게 20대를 보낸 소회도 밝혔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부할 수 있어요. 연기는 여전히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점점 괴로워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이종석한테서 연기를 빼면 뭐가 남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요"라고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그로 인한 공허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작품을 할 때 슬럼프가 심하게 왔던 적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행복해하면서 연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점점 괴로워하고 있더라고요. 잘하고자 하는 열망과 부족하다는 열등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브이아이피'로 인해 이종석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돌파구' 같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진 게 무기가 됐네'라는 생각과 '저만하면 애썼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연기를 모니터할 때 잘했다고 느낀 경우가 거의 없었거든요. '브이아이피'의 경우엔 감독과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괜찮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종석의 악마성을 발견해낸 박훈정 감독은 그의 연기에 만족했을까. 이종석의 답에서 유추해볼 수 있었다.

"글쎄요. 감독님이 촬영 현장에서 약과를 즐겨 먹어요. 보통 혼자만 드시는데 저 먹으라고 챙겨주시더라고요. 이게 칭찬일까요?"

ebada@sbs.co.kr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