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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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뷰] 음악이 바로 언어죠...마이클 리의 ‘헤드윅’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9.05 08:13 조회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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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마이클리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뮤지컬 '헤드윅'은 2시간 동안 쏟아내는 트랜스젠더 가수 헤드윅의 이야기다. 화려한 조명 아래 금발 가발을 쓴 헤드윅은 동독에서 태어나고 자란 얘기부터 미군과 사랑에 빠져 남성성을 버리고 미국까지 왔지만 버림받고, 이후 토미를 만났지만 음악을 도둑맞은 얘기 등을 하며 울고 웃는다.

'헤드윅'은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의 자전적인 이야기기도 하다. 미군 장교 아버지를 따라 동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첼의 눈에 비친 여러 장면들이 '헤드윅' 속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만들었다. 동독 출신 가정부, 미군과 이혼한 한국인 여성들 등 모두 미첼이 실제 목격한 인물들이었다. 

헤드윅 마이클리

여기에 음악감독 트래스크와 미첼의 기묘한 우연이 없었다면 '헤드윅'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우 미첼이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트래스크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것. 그렇게 드래그퀸(여장남자) 가수의 이야기를 담은 '헤드윅'이 우연 끝에 만들어지게 됐다.

'헤드윅'이 미국 뉴욕의 한 허름한 모텔에서 처음 공연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다. 수만 km 밖 한국에서는 여전히 '헤드윅'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국내에는 2005년 초연된 뒤 무려 2000회 넘게 공연되고 있다. '헤드윅'이 건네는 2시간의 이야기는 국가, 인종, 시대를 초월해 '역사'가 되어가는 듯하다.

'헤드윅' 역사의 한 페이지는 올해 처음 '헤드윅'을 맡은 마이클 리가 담당하고 있다. 미국 교포 출신 배우인 마이클 리는 '헤드윅' 국내 공연 사상 최초로 원어 무대에 선다. 미국 캔저스, 뉴욕 등지에서 공연을 펼치던 헤드윅이 한국의 대학로 공연장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헤드윅 마이클리

마이클 리가 비교적 딱딱한 독일어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덕에 국내 관객은 좀 더 알아듣기가 쉽다. 의도적으로 쉽게 쓰인 대사와 함께 '반쪽', '지식', '찜질방' 등 몇몇 단어는 한국어로 되짚어주기에 의외로 영어 대사만으로 이뤄진 공연인데도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지 않다. 이츠학(제이민)의 대사처럼 “음악은 그 자체가 언어이자 소울이기에” 더욱 그렇다. 

마이클 리가 트랜스젠더 역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작인 '록키 호러쇼'에서도 그는 트랜스젠더 역을 맡았다. 하지만 '헤드윅'은 전작과 결이 다르다.

헤드윅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공연이다. 언어적 부담을 던 마이클 리는 헤드윅의 것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친절한' 배우 마이클 리가 이 무대에서만큼은 직설적이고 통통 튄다.

마이클 리가 부르는 '헤드윅' 넘버들은 신기하리만큼 미첼의 음색과 비슷하다. 분명 전혀 다른 목소리인데도 '디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나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등은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자아낸다.

마이클 리의 '헤드윅'은 가장 원작과 흡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비단 원어를 사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클 리는 헤드윅의 화려한 외면과 이와 상반되는 내면의 외로움과 나약함을 이상하리만치 잘 표현한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상상해보자면, 마이클 리가 헤드윅의 외로움에 가장 잘 공감해서는 아닐까.

헤드윅 마이클리

미국 교포 배우인 마이클 리는 미첼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스탠퍼드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가 록에 대한 선망으로 의사로서의 진로를 포기하고 뮤지컬 배우가 됐다. 그는 미국에서는 동양인으로, 한국에서는 미국 교포로 분류된다. 한셀의 베를린 장벽처럼 마이클 리에게 따라다니는 언어와 문화, 국가의 장벽이 마이클 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헤드윅 무대에 서기 전부터 마이클 리는 '헤드윅'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전한 바 있다. 배우가 오랫동안 서고 싶었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매우 행복한 일이다. 그런 배우의 행복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관객에게도 기쁜 일이다. 

마이클 리의 '헤드윅'은 그간 그가 보여준 것 중에 가장 마이클 리 다운 무대다. 언어와 국경은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이클 리의 '헤드윅'은 보여준다. 

11월 5일까지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헤드윅 마이클리

사진=(주)쇼노트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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