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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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뷰] ‘시라노’ 가장 인간적인 영웅을 위하여

강경윤 기자 작성 2017.09.07 17:04 조회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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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광호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뮤지컬 '시라노'는 멀리서 보면 사랑 이야기다. 가까이에서 보면 위선과 타협하지 않았던 어느 영웅의 이야기다. 배우 출신 프로듀서 류정한은 프랭크 와일드혼으로부터 '시라노'에 대한 얘기를 듣고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류정한은 왜 시라노에 매료됐을까. 시라노는 긴 코를 가진 추남의 시인이자 동시에 뛰어난 검객이었다. 나폴레옹이나 벤허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영웅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역시 그리 화려하게 기억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시라노는 감히 가장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영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시라노는 '월계여행' 등 과학소설을 남긴 시라노 드 베르즈라크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다. 프랑스 작가인 로스탕에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괴팍한 면모도 있는 동시에 록산 앞에선 빵을 든 손을 덜덜 떨 만큼 사랑 앞에서는 순수함을 가진 사내였다.

홍광호

'시라노'는 고전의 낭만을 충분히 의도한 작품이었다. 시라노 역을 맡은 홍광호는 초연을 통해서 시라노의 낭만적인 대사와 동시에 영웅으로서의 담대함을 골고루 해석했다. 희극에서 비극을 오가며 무대를 꽉 채우는 홍광호의 연기를 통해 작은 영웅 시라노의 아우라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록산을 연기한 최현주의 열정도, 크리스티앙을 통해 청년다운 풋풋함을 선보인 서경수의 연기도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초연인 만큼 어색하고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띈다. 먼저 음향 문제로 추정되는 앙상블의 합창이다. 소리가 객석 곳곳으로 흩어져 몇 번이나 귀를 기울이려다가 몰입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무대를 크고 넓게 쓰지 못하는 점 역시 대형 뮤지컬로서 볼거리를 놓친 게 아닌가 아쉬움이 든다. 

홍광호

무엇보다 2막으로 접어들면서 캐릭터들의 감정라인이 급격하게 진행된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크리스티앙과 이별한 뒤 록산이 시라노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이 몇 가지 대사로만 간추려져, 관객들의 공감을 사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장면 진행이 필요하다.

시라노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익숙하지 않지만 고전 작품의 낭만적인 대사를 뮤지컬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남다른 개성과 재미를 준다. 사랑하는 록산의 앞에서 마지막까지 1~2방울의 눈물만 허락해달라는 시라노의 대사는 그 어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새로운 낭만을 선사한다.

위선과 거짓 앞에서는 지팡이를 휘두를지언정, 사랑 앞에서는 나약하고 순수했던 영웅 시라노의 이야기는 다음 달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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