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문소리의 '아름다운 실패'…여배우 울린 성공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9.24 13:00 조회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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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연기도 잘하는데, 연출까지 잘하면 반칙이다"

'여배우는 오늘도'(감독 문소리, 제작 영화사 연두)를 보기 전까지 임순례 감독의 이 말은 업계 동료를 위한 립서비스로 여겨졌다. '첫 연출인데 잘해봤자지'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소리 감독의 영화를 난 후 '연기 잘하는 배우는 연출도 잘하는구나'라는 감탄을 했다. 

문소리는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한다.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입증해 보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사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난 14일 개봉한 '여배우는 오늘도'는 23일 현재까지 전국 8,680명의 관객을 모았다. 문소리 감독이 원했던 최저 관객 2만 명까지 가는 길도 현재로선 힘겨워 보인다. 결과적으로 작품적 가치보다 상업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극장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세상엔 수많은 영화가 있다. 재미의 영화도 있고, 의미의 영화도 있고,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영화도 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재미와 의미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몰라줬다는 게 안타깝지만.

문소리 감독이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것 두 가지는 만만치 않은 연출 실력 그리고 여배우들의 지지와 응원이다. "선거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깟 돈도 안 되는 지지가 무슨 도움이 되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여배우들이 문소리를 위해 발로 뛴 행보를 보노라면 이들의 뜨거운 응원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 속에서 배우 문소리는 힘들 때마다 뛴다. 영화 밖에서 여배우들은 문소리와 함께 뛰었다.

여배우

◆ 전도연·공효진·김태리…그리고 심상정 

'여배우의 오늘도'의 제작비는 1억 원 남짓. 독립영화의 경우 마케팅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백만, 수 천 만원 하는 광고를 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독립영화의 경우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구전 효과를 노린다. '여배우의 오늘도'의 GV에는 영화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여배우들이 참여했다. 전도연, 공효진, 라미란, 김선영, 김옥빈, 김태리 등이 나섰다. 공식 스케줄 외에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이들이 게스트를 자청했다. 여기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도 문소리 감독의 여정에 대한 응원 그리고 의미 있는 담론을 던진 영화에 대한 지지 그리고 흥행이라는 빛나는 결실을 보았으면 하는 염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전도연이었다. 드라마 종영 이후 약 1년간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았던 전도연이 문소리를 위해 극장에 나타났다. 이 GV는 칸의 여왕과 베니스의 여왕의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사석에서는 돈독한 친분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공식 석상에 나란히 참석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전도연은 "'여배우는 오늘도' 예고편을 보는 순간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여배우와 그 이면에 대해서 솔직하게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해서 응원해 주고 싶었어요"라고 GV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여배우

더불어 "비단 여배우뿐만 아니라 일하는 여자들, 워킹맘들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영화가 포괄적으로 이해됐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김태리는 "이 영화를 3번 봤어요. 시종일관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에요. 꼭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삶 자체가 내 삶과 동일시 되어야지만 공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영화 속 대사 하나 눈짓 하나 작은 디테일들이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누구나 살면서 일인다역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도 많이 공감이 가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라고 이 영화만의 매력을 말했다. 

송혜교와 정유미는 수십, 수백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자신의 SNS에서 '여배우는 오늘도'를 홍보했다. GV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큰 영향력을 가진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영화도 아닌 선배의 영화를 홍보한 것은 훈훈한 풍경이었다. 

여배우는

◆ 여배우의 넋두리?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여배우의 오늘도'의 흥행 부진에는 선입견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배우의 넋두리와 한탄을 담은, 그래서 재미가 없는 영화'일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 말이다. 과거 여배우의 일상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그렸던 '여배우들'(2009)역시 상당한 오락성을 갖춘 작품임에도 같은 이유로 흥행에 실패한 바 있다.

넋두리, 한탄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의 웃음 폭탄은 대부분 여배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사회적 시선을 디스 하는데서 발생한다.

영화계의 현실과 편견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이고 여배우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에 대한 반성적 시선도 아우른다. 여배우 나아가 여성이 겪고 있는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일방적인 원망과 분노를 담은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라도 영화를 보면 느낄 감상이지만,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내지 못한 것은 이 영화의 명확한 한계점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애초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뒀다거나, 상업영화의 기획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문소리의 대학원 과제로 만들어진 영화였고, 영화제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극장 개봉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할 수 있었고,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이 더 많은 관객에 소통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문소리

◆ 문 감독의 2번째 영화는?…'제2의 문소리'도 나오길

3막으로 구성된 영화의 마지막 장 제목은 '최고의 감독'이다. 여배우 문소리는 신인 시절 함께 작품을 했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텅 빈 장례식장에서 과거 호흡을 맞췄던 남자 배우, 까마득한 어린 후배와 술을 마신다. 이 자리에서 세 사람은 '최고의 감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친다.

뛰어난 배우에겐 "감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송강호도, 김윤석도, 전도연에게도 그랬다. 전도연은 "영화 일을 한 지 오래되다 보니 감독이나 제작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도 안 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문소리는 그 어려운 걸 했다. 누가 뭐래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그들을 '현장의 지배자'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특히 제작자의 권한이 큰 할리우드와 달리 충무로는 감독이 제왕적 지위와 권력을 누린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큰 자리다. 연출을 마친 문소리가 "감독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지 몰랐다"고 고충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충무로 최고의 인기배우이자 두 편의 장편 영화를 감독한 하정우는 연출에 발을 디디게 된 이유에 대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해왔고 "연출을 하며 감독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도 했다.

여배우는

문소리 또한 인터뷰에서 "연출은 영화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의미있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여배우를 위한 시나리오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나도, 여러 가지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가 문소리에겐 그 시도의 일환이기도 했을 것이다. 

문소리 감독의 첫 영화는 (흥행에)실패했으나, 아름다운 실패라고 부르고 싶다. 두 번째를 위한 의미 있는 실패 말이다.

배우 문소리가 달리듯, 감독 문소리도 계속해서 달릴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달리기가 비단 문소리만의 도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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