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이병헌이 밝힌 김윤석과의 연기 '썰전'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0.10 09:11 수정 2017.10.10 17:30 조회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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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마스터(Master), 어떤 기술이나 내용을 배워서 충분히 익히는 일을 뜻하는 영단어다.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제목이자 연기로 일가를 이룬 그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중저음의 단단한 톤과 군더더기 없는 발성, 정확한 발음 무엇보다 입에 익숙지 않은 단어와 어미를 사용하면서도 감정의 질곡까지 실어나르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사극의 마스터"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24년의 연기 경력 중 그가 소화한 사극은 4편,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5년 '협녀', 2016년 '밀정'(감독 김지운) 그리고 지금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이다. 마치 한평생 사극만 해온 장인처럼 능수능란하게 과거 시대로 회귀해 그 시절의 인물을 스크린에 소환해냈다.

'남한산성'에서는 난세의 충신 최명길로 분했다.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 한 가운데서 왕에게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청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길 권유하는 인물이다.

남한산성

최명길이 현실과 실리를 중시한 주화론자라면 김상헌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과 굴복은 없다고 주장하는 척화론자다. 그때 그 시절 나라의 명운을 놓고 대립했던 최명길과 김상헌의 관계를 이병헌과 김윤석이 연기해냈다. 

물과 불이 만난 느낌이다. 이병헌이 산세와 질곡에 따른 흐름을 맞춰 유연한 연기를 펼친다면 김윤석은 고요히 침전해있다 일순간 감정을 내뿜는 불같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누가 봐도 정반대의, 상충적인 연기 스타일을 가진 두 배우가 만났다. '혀의 전쟁'이라 불린 이번 영화에서 두 사람은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연기 썰전을 펼친다. 부조화 속의 조화처럼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희대의 라이벌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 이병헌은 어떻게 사극의 마스터가 됐나

이병헌은 사극 연기를 잘하는 비결을 알려달라는 말에 "그건 최수종 선배님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는 "보통의 시나리오는 일단은 편하게 쭉 보는데 사극은 읽기 전부터 쉼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본다"고 마음가짐 자체가 현대극과는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사극 영화였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준비할 당시를 회상했다.

"연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나서 사극을 한 거라 걱정을 많이 했다. '사극 톤이라는 게 뭐지?', '그 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닌데... 결국은 티비 속 사극을 보고 따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나름대로의 톤과 말투를 설정하면서 사극의 말투라는 게 결국엔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이어져 오고 사람들의 기억으로 전해진 게 아닐까 싶더라. 그 믿음으로 연기를 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남한산성'은 종전 영화와는 다른 정통 사극이라는데 부담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이병헌은 "아주 다른 색깔의 영화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 흥미로웠다"면서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예법과 마인드, 생각을 연기를 하는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남한산성

출연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최명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사극에서 광해를 연기했던 이병헌은 '남한산성'에서 광해를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인조반정의 주역 최명길을 연기했다.

"재밌는 인연이긴 하다. 그러나 그게 혼돈스럽거나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하이라이트에서 광해가 '백성'을 이야기하지 않나. 최명길도 결국엔 백성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치적 색깔은 방법론적인 문제고, 대전제는 백성이다. 그 점에서 두 인물은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대사가 가진 힘을 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이병헌은 "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힘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 강력하고, 뜨겁고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에 익숙지 않고 어려워도 말의 힘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뽑은 명장면은 늘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가 처음으로 인조에게 눈을 마주치며 "임금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하는 신이었다. 이병헌은 "늘상 차분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던 최명길이 처음으로 우회하지 않고 임금에게 백성을 위한 선택을 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신이라 통쾌했고 울림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부연했다.

남한산성

◆ 연기로 불꽃 튄 이병헌 vs 김윤석

'남한산성'은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이 영화의 중요 축이기는 하지만 왕 인조(박해일)의 고뇌나 백성 날쇠(고수)의 고군분투 등 수많은 인물의 내적 갈등이 영화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왕을 앞에 두고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논쟁을 펼치며 병자호란이라는 난국을 각자의 방식으로 타파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썰전은 팽팽하게 이뤄지지만 논쟁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서로에게 예를 다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실제 연기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

이병헌은 김윤석에 대해 "예상했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뜨거운 배우고 열이 느껴지는 배우"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 테이크마다 연기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 겠구나'싶었다"며 매 순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배우였다고 회상했다.

말로 부딪히는 신이 많았던 만큼 논쟁 신은 두 사람의 확연히 다른 연기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병헌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마지막 논쟁 신의 에피소드를 말하며 김윤석의 연기에 대한 놀라움을 설명했다. 이 장면은 김윤석이 바뀐 대본을 촬영 날 숙지해 약간의 혼돈이 있었던 신이다.

이병헌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긴장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김윤석 선배는 바뀐 대본을 아침에 받아서인지 촬영 전부터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사극 대사라는 게 어미만 달라져도 느낌이 다르다. 거기에 감정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신이기 때문에 많이 예민해 보였다. '컷' 사인이 나고도 본인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악!"하고 화를 내더라. 대사량만 2~3페이지가 넘어가는 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틀려서 우리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NG는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연기를 했기 때문에 오케이 사인이 나자 둘 다 기진맥진했다."

두 배우의 고도의 집중력 끝에 완성된 이 논쟁신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훌륭하게 기능하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강렬함을 선사했다.

이병헌은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하면서 느꼈던 새로움에 대해 "촬영 분량의 70% 이상을 땅바닥만 보면서 대사를 읊고 감정을 토해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왕 나아가 관객을 설득시키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경험이자 모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출연했지만 새삼 참 좋은 영화, 의미 있는 작품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 속도 등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 어떤 작품보다 슬프게 느껴졌다. 이미 사실로서 지나가버린 치욕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어떤 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명한 답을 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울 김용옥은 '남한산성'을 보고 난 후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식과 몰상식만 있다"는 말을 남겼다.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병헌의 말 역시 이 견해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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