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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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SBS스페셜' 영원한 국민타자 이승엽의 #야구 #은퇴 #가족

강선애 기자 작성 2017.10.16 00:16 수정 2017.10.16 10:15 조회 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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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이승엽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은퇴한 '국민타자' 이승엽의 다큐멘터리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15일 방송된 'SBS 스페셜'은 '승엽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이승엽의 23년 야구 인생 및 인간 이승엽의 소탈한 일상을 조명했다. 내레이션은 이승엽과 절친한 영화감독 장진이 맡았다.

첫 장면은 지난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홈경기장에서 열린 이승엽의 은퇴경기로 시작했다. 이승엽의 아내 이송정 씨가 남편의 마지막 경기에 시구자로 나섰고, 수많은 관객들이 이승엽의 등 번호 '36번'을 흔들며 마지막을 기렸다. '홈런왕' 이승엽이 선수 생활 23년 동안 친 홈런은 626개. 이승엽은 은퇴경기에서도 홈런을 날리며 팬들에게 강렬한 마지막 인상을 남겼다.

다시 시간은 은퇴경기 전인 9월 말로 돌아가 이승엽의 선수로서 하루를 들여다봤다. 그는 항상 낮 12시 전에 대구 경기장에 가장 먼저 출근했다. 그는 “출근을 제일 먼저 하는 건 자부한다. 제일 먼저 야구장에 나간다. 하는게 없더라도 야구장에서 쉬자는, 그런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보다 일찍 나와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그의 선수로서 성실한 태도는 23년간 한결같았다.

이승엽은 7살에 야구를 시작했다. 그는 “전 야구선수가 될 운명이었다. 다른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라며 야구에 모든 걸 바쳤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상중-경북고를 거쳐 가면서 좌완투수로 고교야구를 평정하고 1995년 대형 고졸 신인으로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한 그는 예상치 못한 좌절과 맞닥뜨렸다. 왼쪽 팔꿈치의 뼛조각이 굽은 뼈 사이로 자라 팔이 펴지지 않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타자로 전향해야 했다.

그런데 데뷔 첫해, 타자로 전향한 이승엽은 홈런을 13개나 쏘아 올렸다. 그리고 프로 데뷔 3년 차인 1997년, 홈런 32개로 정규시즌 첫 MVP를 차지했다. 전설의 시작이었다. 당시 IMF 경제위기가 짙게 드리운 시기였고, 사람들은 이승엽에게 열광했다.

굽은 왼쪽 팔로 이승엽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승엽은 “어차피 펴질 수 없는 팔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팔이 굽어 남들보다 공을 맞혀 멀리 보내는 능력이 불리할 거라 생각했기에 더 욕심이 생겼다. 힘들더라도 이겨내라는 생각이 강했다”며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라 말했다.

타자로서 승승장구하던 이승엽은 2002년 이송정 씨와 결혼했다. 그 후 16년 동안 이송정 씨는 야구가 1순위인 남편을 든든하게 내조하며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SBS스페셜 이승엽

아내 이송정 씨는 “저희 남편 보면 선하게 생기지 않았나.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전 남편을 16년 정도 봤고, 별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늘 한결같다. 상황이 좋든 나쁘든 한결같고 꾸준하다. 그런 걸 사람들이 더 많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다”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국내를 평정한 이승엽은 2003년 일본 리그에 진출했다. 첫해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그럴수록 그는 더 노력했고, 연습은 배신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30홈런을 넘기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해 진가를 발휘했다. 요미우리의 4번 타자 '승짱'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하지만 손가락 부상과 수술을 겪으며 긴 슬럼프를 겪은 이승엽은 결국 충격적인 2군 강등을 당하기도 했다. 야구 인생 최악의 상황이었다. 당시에 대해 이승엽은 “남들이 볼 땐 야구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슬럼프가 길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야구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걸 이겨내야 된다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손가락 부상과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슬럼프를 겪던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손이 아파 진통제 맞고 나갔지만 초기엔 성적이 안 좋아 비난 여론도 있었다. 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많이 아팠지만 알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거 못 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그가 이를 악물고 친 타구는 마지막 타석의 홈런이었다. 이 홈런으로 한국은 우승했고, 이승엽은 다시 일어섰다.

8년 만에 이승엽은 국내 리그에 복귀했다. 실력으로 사람들의 우려를 씻어냈고, 삼성라이온즈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3년 연속 팀 우승을 이끌었다.

이승엽은 “힘든 시기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실 지금이 더 행복하고 야구가 더 재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전 더 진중해지고 더 야구를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37살에 복귀해서 42살까지 뛸 수 있었고, 은퇴하지만 아직도 야구를 사랑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승엽은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전 구장 은퇴 투어로 동료 선수들의 배웅 속에서 은퇴를 치렀다. 김성근, 이대호, 최희섭, 박찬호, 김상수, 구자욱 등 이날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모든 선후배들은 이승엽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특히 박찬호는 “이승엽이 대단한건 기록이 아닌, 그동안 많은 희생과 절제, 꾸준한 인내, 이런 걸 발전하고 성장시킨 모습”이라고 핵심을 짚었다.

은퇴식이 열리고 나흘 후, 이승엽은 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아직 은퇴가 믿기지 않는 듯했지만, 이승엽에게 후회는 없었다. 그는 “제가 좋아했던 야구를 했고, 어렸을 때 꿈인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좋은 모습으로 은퇴할 수 있어 전 행복한 남자라 생각한다”며 “모든 사람들께 감사했다는 인사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할 말이 없다 그 말 이외에는”이라고 마지막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제 이승엽은 그동안 가족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만큼 아빠이자 남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가 지난 23년간 보여준 인내와 성실함, 그리고 노력한 만큼 빛났던 실력은 영원히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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