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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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더!', 예수천국 불신지옥?…반기 든 문제작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0.23 14:07 수정 2017.10.26 09:40 조회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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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불에 탄 한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이어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한 남자의 얼굴이 스크린을 채운다. 이 인상적인 시퀀스는 후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영화의 시작이자, 끝으로 기능하는 수미쌍관의 오프닝이다.

외딴 벌판 위에 우뚝 선 저택에 한 부부가 살고 있다. 남편(하비에르 바르뎀)은 시를 쓰고, 아내(제니퍼 로렌스)는 집을 보수한다. 어느 날 한 의사(에드 해리스)가 벨을 누른다. 아내는 낯선 손님의 등장이 달갑지 않지만, 남편은 극진히 대접한다. 다음 날 의사의 아내(미셸 파이퍼)까지 등장한다. 의사의 아내는 부부의 2세 문제에 과도한 관심을 드러내 시인의 아내를 불쾌하게 한다.

의사 부부의 선을 넘는 행동이 계속된다. 출입이 금지된 시인의 방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그가 아끼던 크리스털을 깬다. 아내의 인내심이 극에 달한 순간 의사 부부에게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영화 초반 방문객을 지나치게 경계하던 시인의 아내가 이상하게 보였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시인의 아내와 동등한 시선과 심리로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구도로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 짓는 것처럼 보인다. 

마더

'마더!'는 상징과 은유의 영화다. 영화 속 캐릭터와 주요 사물에 메타포를 적용하면 더욱 흥미로운 영화 읽기가 가능해진다. 영화에는 캐릭터의 이름(크레딧에는 man, woman, mother, Him으로 표기)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인, 시인의 아내, 의사, 의사의 아내라는 제한된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전사(前史)도 없으며 오로지 현재만 등장한다.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그것을 깨뜨리는 고통스러운 사건은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시인으로 설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이들이 상징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시인은 창조주, 아내는 대자연(mother nature), 그리고 집안에 모여드는 불청객들은 창조주를 숭배하는 인간(혹은 광신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성경 속 인물에 대입하자면 시인은 하나님, 아들은 예수, 의사는 아담, 의사의 아내는 이브, 의사의 두 아들은 카인과 아벨이다. 

또한,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집은 생존의 3요소 중 하나로 기능하는 것이 아닌 거시적인 상징체로 존재한다. 바로 '지구'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인간의 그릇된 믿음과 욕망, 이기가 대자연을 헤치고 지구를 파멸로 이끄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마더

시인은 창작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창작 행위의 숭고함에 대해 강조한다. 아내 역시 남편의 창작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다. 불청객들은 아내가 시인에 대해 드러내는 애정을 능가해 지나치게 광적으로 그를 찬양하고 숭배한다. 

영화는 의사 부부에게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 이후 폭주하다시피 한다. 감독은 영화 제목 '!'를 후반 30분의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부호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지구 종말이 일어난다면 빚어질 아비규환의 현장과 다름없어 보인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행된 세상의 모든 폭력과 테러가 이 집안에서 재현된다.    

'마더!'는 광신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임과 동시에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 같기도 하다. 좀 더 나아가 하나님이라 일컫는 창조주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거침없이 보여준다. 더불어 맹신의 카오스는 인간으로 하여금 유무형의 폭력을 부르고, 그 폭력은 한 세계의 종말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영화는 경고한다.    

창작자에게 '믿음과 구원'은 중요한 화두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나 한국의 이창동 감독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은 이야기나 형식은 다를지언정 오랫동안 이 주제에 천착해왔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 더욱 저항적인 시선과 공격적인 방식으로 질문으로 던져왔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성경을 모태로 창작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전작 '노아'(2014)부터다. '노아의 방주'라는 창세기(구약성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영화화하며 자신만의 해석과 창작을 가미했다. 영화 속 '노아'는 익히 알고 있던 선지자의 모습이 아닌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이를 두고 교계 일각에서는 '반기독교적 영화'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아로노프스키는 영상 스타일리스트다. 스타일리스트를 표방하는 많은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야심과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스타일을 과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촬영과 편집 등 영화의 기술적 요소를 이야기를 극대화하고 캐릭터의 심리를 형상화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왔다. 

핸드헬드와 롱샷의 빈번한 사용을 통해 인간의 불안과 광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영화는 극 중 인물뿐만 아니라 보는 이마저도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마더!' 역시 '레퀴엠'(2000), '더 레슬러'(2008), '블랙스완'(2010) 등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방식을 고수하는데, 이번 영화는 감독만의 스타일과 이야기가 최상의 궁합을 이룬 결과물이다. 

      

마더

감독은 맹목적인 신앙, 광기의 믿음에 빠진 인간에 대한 혐오적인 시선을 보낸다. 자신이 믿는 것이 오직 진리고 참이며 그 외에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일부 신앙인의 모습을 침입자들의 '무례'로 형상화했다.

영화는 후반부 들어서 성경의 구체적 구절을 시인의 입으로 읊게 하며 상황과 대비되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페허가 된 집(지구)에서, 불에 탄 아내(자연)을 안고 그는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오프닝을 엔딩에 다시 한번 배치하며 순환한다. 악순환인가, 선순환인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마더!'는 문제작이다. 성경의 해석에 대한 또 하나의 과감한 도전이자 그릇된 신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이것은 오랜 기간 계속된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고 여전히 그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없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굳이 종교 영화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과 무지와 폭력이 한 사회를, 세계를 어떻게 파멸시키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10월 19일 개봉, 상영시간 121분, 청소년 관람불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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