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할리우드-충무로, 왜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0.24 19:34 수정 2017.10.25 11:29 조회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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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할리우드와 충무로 모두 '인권 유린 스캔들'로 들썩이고 있다. 사건의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인권 침해와 관련된 스캔들이라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언론과 여론의 방향이 고소→폭로→공방으로 치달으며 처음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사건은 법적 판단 전에 여론 처벌이 먼저 이뤄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파장 중 하나는 피해자 중심으로 흐르던 여론이 피해자가 비판받는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고백을 한 인물들이 여론의 공격을 받고 사건에 대해 직접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은 다음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도 인권 침해와 관련된 사건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필요해 보인다.    

하비

◆ 웨인스타인 스캔들, 숨겼다고 비난받는 여배우들

'할리우드 스타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은 약 30여 년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배우들에게 성적인 행위와 마사지 등을 요구해왔다. 미국 여배우 애슐리 쥬드와 이탈리아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의 고백으로 알려진 추문은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같은 특급 여배우들의 폭로로 이어지며 할리우드의 전방위적인 스캔들로 커졌다.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웨인스타인은 물론 그의 성추문을 알고도 방조한 것으로 의심을 받는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쿠엔틴 타란티노 등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모두 웨인스타인이 제작한 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을 맡는 등 그의 은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가장 안타까운 현상 중 하나는 용기 있는 고백을 한 여배우들에게 "왜 인제야 말하는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다. 기네스 팰트로는 "내가 22세가 됐을 때, 영화 '엠마' 촬영 당시 하비가 나를 호텔 방으로 불러 마사지를 하자고 했다. 나는 어렸고, 계약을 했으며, 겁에 질려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기네스 팰트로

할리우드 최정상급의 여배우이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기네스 팰트로의 고백에 할리우드는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동안 그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계속해서 웨인스타인의 수혜를 입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와인스타인이 제작한 '세익스피어 인 러브'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다.     

기네스 팰트로의 어머니이자 여배우인 블리드 대너는 이같은 여론에 대해 "기네스는 미라맥스(웨인스타인이 운영하던 투자배급사)의 퍼스트레이디가 되기 위해 '꺼림칙한 것'을 피한 것이 아니다. 딸은 자신을 지켰고 하비 웨인스타인이 이후 자신을 존중했다고 말했다"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딸은 프로듀서이자 아버지, 그리고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썼던 브루스 팰트로에게 이 산업에서 여성으로서 스스로 서는 법에 대해 배웠다"면서 "이번 사건이 영화 산업에서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아시아 아르젠토는 "웨인스타인의 추문을 폭로한 뒤 이탈리아에서 나와 내 가족의 삶이 버거워졌다"며 "조금이나마 숨을 쉬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에서는 왜 피해 당시 저항하거나 좀 더 일찍 사실을 공개하지 못했는지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일각에서는 그의 폭로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여배우 모두 유명 영화인의 딸이다. 기네스 팰트로는 유명 프로듀서 브루스 팰트로의 딸이며, 아시아 아르젠토는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이다. 이른바 '금수저'로 통하는 이들조차 성추행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들이 사실을 은폐하거나 묵인했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용기 있는 고백을 하기까지 십 수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충무로발 추문…주인공 없는 기자회견 '왜?'

충무로의 경우 촬영장에서 행해지는 유·무형의 폭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8월 김기덕 감독이 영화 '뫼비우스'(2013) 촬영 당시 대본에 없는 19금 장면을 촬영하도록 강요했고, 폭력을 행사했다며 한 여배우로부터 피소당하는 일이 불거졌다. 세계적인 거장인 김기덕 감독에게 제기된 혐의는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질 정도로 충격적인 뉴스였다. 해당 여배우는 영화계 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적 대응에 나섰다.

곽현화는 5년 전 찍은 영화 '전망 좋은 집'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다. 계약서로는 보호받지 못할 노출 장면을 찍었고,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IPTV 시장에서 '무삭제판'으로 유통됐다. 곽현화는 형사(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소송 항소심에서 이수성 감독이 무죄를 선고받자 기자회견을 통해 계약서와 녹취파일을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곽현화

여배우 A씨는 2015년 4월 저예산 영화 촬영 중 상대 남자배우가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며 강제추행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1심 재판에서는 남자 배우에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지난 13일 2심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라는 '양형'이 내려졌다.

그러자 남자배우는 상고장을 제출하고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조덕제라는 본인의 실명을 스스로 공개했다. 조덕제는 "촬영장에 스태프가 수십 명이 있는데 성추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덕제의 주장을 반박했다. A씨는 편지를 통해 "나는 15년 연기경력을 가진 배우로서 연기와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연기가 아닌 (성)폭력이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 증거가 없고, 리허설 없이 진행된 연기에서 '감독의 디렉션'이라는 외부적 요소가 깊게 관여된 만큼 보다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 여배우 모두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개요와 법적 대응에 대해 밝혔지만, 직접 참석한 인물은 곽현화뿐이었다. 나머지 두 여배우는 실명과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껴 서면이나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상대적 약자인 자신에게 돌아올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대방의 반박이 나오자 초반 여론과 달리, 일각에서 고소한 여성을 "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소를 한  것 아니냐"라는 부정적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조덕제 A씨

물론 언급한 사건들 모두 진실이 밝혀진 사안이 아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배우는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당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개별사항마다 법적 공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잣대와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영화계 내 성폭력이 공론화된 만큼 제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배우들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강자든 약자든 자신의 인권을 보호받으며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이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닌 당연한 권리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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