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영화 핫 리뷰

[리뷰] '미스 프레지던트', 박사모 미화 영화냐고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1.12 11:29 수정 2017.11.12 15:12 조회 1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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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미스(mis)와 미스(miss), 미스(myth). 동음으로 발음되는 세 단어는 각기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을 뜻하는 접두사, '그리워하다'라는 뜻의 동사, '신화'라는 명사에 담긴 풍성한 함의로만 해석해봐도 흥미로울 영화 한 편이 나왔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던 전주 시내에는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사진으로 만든 화려한 포스터 한 장이 걸렸다. 영화의 제목은 '미스 프레지던트'.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을 찬양하는 때를 잘못 맞춘 영화인가 싶었다. 그러나 제목에 붙은 '미스'는 여성을 뜻하는 미스도 아니었고, 그리움을 뜻하는 미스도 아니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즐거운 나의 집' 음악과 함께 어린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 삼남매의 모습으로 화면을 채운다. 이어 박정희 동상을 카메라는 뒤집어 담아낸다.

영화는 청주에 살고있는 한 할아버지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갓까지 쓴 남자는 집안에 차려진 제사상에 4배를 올린다. 절을 올린 뒤 "대통령님의 37기 추도식에 갑니다"라고 말하며 행사의 성공적인 기원을 바란다.

미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의 일원인 조육형 할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임금,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신사임당에 비유하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새마을 운동 1기생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그는 '박정희 신화'의 산증인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김종효 씨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 한 벽면에는 박정희 일가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남편은 박정희·박근혜 부녀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아내는 육영수 여사의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극찬하며 자신의 추억을 더듬는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해결해준 고마운 존재며, 그의 딸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말년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가여운 존재로 인식된다.       

세 사람은 뉴스나 신문에 등장하는 과격한 태극기 부대와는 다른,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영화는 탄핵 전후 이들의 동선을 담담히 따라가며 지난겨울 대한민국 사회를 뒤덮은 충격과 분노, 단합과 분열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미스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고발성 성격을 띠고 문제의식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과 달리 '미스 프레지던트'는 현상을 관찰하고 해부하는데 주력한다.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감독의 시선과 목소리라고 할 수 있는 내레이션도 싣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현상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주적인 판단을 하기를 권한다.

다만 까낼수록 매운맛을 내는 양파처럼 초반은 신화의 생성과 번영, 중·후반은 신화의 균열 이후를 부각하는 전개를 펼친다.

지난겨울 광화문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넘어선 상식과 비상식, 합리와 비합리가 충돌한 현장이었다. 국정 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일부 신구 세대는 다르게 반응하고 행동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촛불은 종북, 태극기는 국민이라 부르짓는 박사모의 뜨거웠던 겨울을 카메라 가까이 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는 박사모 회원들을 섣불리 우민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신화의 태동과 본질을 객관적으로 해부하며, 신화를 견고하게 만든 지지자들의 순도 어린 충성심도 있는 그대로 조명한다.

물론 이같은 보여주기가 고도의 돌려 까기라는 것은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바다. 이들의 충성심을 부각할수록 보는 이들의 분노의 강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그 공분은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닌 추종 세력을 기반으로 나라를 망친 주범들에게 향한다.    

미스

그러나 만든 이의 의도와 다르게 관객의 시선에는 각자의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영화는 10월 26일 개봉 이래 촛불 시민과 박사모 양측의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한쪽에서는 박사모 미화, 다른 한쪽에서는 박사모 비하 영화로 공격을 당했다. 

영화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앞서 돈을 받고 맛집을 홍보하는 공중파 프로그램의 비밀을 파헤친 '트루맛쇼'와 이명박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을 그린 'MB의 추억', 대형교회의 부패와 비리를 그린 '쿼바디스'를 통해 남다른 풍자 내공을 보여준 바 있다. 다큐멘터리 '자백'과 '공모자들'을 만든 최승호 PD는 MBC 후배인 김재환 감독에게 영화 문법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로 이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역량을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국정 농단과 탄핵 사태는 세대 분열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너네가 가난을 안 겪어봐서 몰라" 식으로 일관한 부모 세대에 자식 세대들은 국정 농단이라는 실체적 진실로 맞섰다. 그럼에도 가치관의 충돌, 감정의 비약, 대화의 단절은 심화돼 갔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을 넘어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헤친다. 그것을 통해 여전히 소통하지 못한 세대 간 갈등과 균열의 양상에서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보기를 권하는 영화다. 과감한 시도를 통한 깊이 있는 풍자는 곱씹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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