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슈퍼 히어로와 사기꾼과 을의 전쟁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1.18 12:19 수정 2017.11.18 12:21 조회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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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11월 극장가의 최대 변수가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됐다. 수능 날짜가 천재지변인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되면서 11월 16일 개봉작과 23일 개봉작의 흥행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극장가는 수능을 디데이로 잡고 있었다. 지난 추석 이후 비수기에 돌입했던 극장에 수험생들이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수능 특수다 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다. 고삐 풀린 수험생들이 극장으로 몰린다고 해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흥행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관객이 냉정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금주와 다음 주 수능 특수를 노리는 화제작을 소개한다. 슈퍼히어로와 을과 사기꾼의 진검승부다.

저스티스

◆ '저스티스 리그', 어디서 마블 향기 안 나요?

마블이 '어벤져스' 시리즈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사이 '배트맨 대 슈퍼맨',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내놓은 DC는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양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마블의 일방적인 독주가 이어진 가운데 DC는 반격을 준비했다.

지난해 5월 '원더우먼'의 흥행으로 자신감을 얻은 DC는 '저스티스 리그'로 DC 유니버스의 빅픽처를 그렸다.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 여섯 명을 모든 저스티스 리그는 향후 내놓을 솔로 시리즈의 밑그림을 제시함과 동시에 올스타전의 강력한 위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저스티스 리그'는 촬영 도중 잭 스나이더의 딸이 자살하는 사건으로 새로운 감독의 합류가 불가피했다. DC는 뜻밖에도 '어벤져스' 시리즈의 조스 웨던을 긴급 수혈했다. 그래서일까. 어둡고 쓸데없이 철학적이던 DC 특유의 분위기에 발랄한 유머와 위트가 더해졌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마블의 향기는 조스 웨던 감독의 MSG일까.   

이번에는 'DC스럽다', '그래 봤자 DC지 뭐', '믿고 거르는 DC'와 같은 조소섞인 반응을 뒤엎는 평가를 기대할 만할까. 일단 마블과 다른 색깔의 뉴 히어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DC 특유의 평면적인 이야기와 뚝뚝 끊기는 흐름은 여전하다. 개봉 3일 차, 호불호는 갈리고 있다. 특히 영화의 계륵이 맏형인 배트맨과 슈퍼맨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벌써 돌고 있다.

7호실

◆ '7호실', 망한 DVD방에 펼쳐지는 을들의 고군분투

압구정동에서 망해가는 DVD방을 운영하는 두식(하균)은 가게가 팔리길 기대하며 낮에는 장사,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버틴다. 유일한 알바생 태정(도경수)은 몇 달치 밀린 급여 때문에 학자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새로운 알바생 한욱(김동영)이 DVD방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계약 성사를 눈앞에 둔 두식은 시체를 7호실에 유기한 후 자물쇠를 채우고, 그곳에 중요한 물건을 넣어둔 태정은 7호실의 열쇠를 따기 위해 대립각을 세운다. 

한때 강남 신화의 상징이었으니 이제는 쇠락한 압구정에서 벌어지는 을들의 고군분투가 웃픔을 선사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선사했다가 다시 위기에 몰아넣는 이야기 구조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독립영화 '10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이용승 감독은 딜레마를 활용해 위트를 생산하는 특유의 재량을 상업 영화에서도 뽐냈다. 감독은 을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흥망성쇠,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88만 원 세대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묘사를 한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소동극 형태를 띠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헬조선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이 날카롭다. 

두식과 태정을 연기한 신하균과 도경수 역시 발군의 연기로 두시간 동안 지루할 틈을 두지 않는다. 특히 신하균은 슬랩스틱에 가까운 연기로 페이소스를 발산해 감탄을 자아낸다. 한동안 맞지 않은 옷만 입어 관객들을 안타깝게 했던 '하균神'의 제대로 된 부활이다. 

꾼

◆ '꾼', 기시감 가득한 케이퍼 무비…이렇게 엉성해서야

'도둑들'의 천만 신화 이후 '기술자들', '마스터', '원라인' 등 수많은 케이퍼 무비가 나왔다. 돈을 좇는 인간의 욕망은 속고 속이는 범죄 사기극에서 극대화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포스터부터 예고편까지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와 설정으로 우려를 낳았던 '꾼'은 예상대로 기시감이 상당하다. 케이퍼 무비의 성공 사례인 '도둑들'의 구조와 컨셉을 상당 부분 따르고, '마스터'에서 다뤘던 조희팔 사기사건을 소재로 한 탓에 새롭지는 않다. 

'사기꾼 속이는 사기꾼'이라는 이야기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설계 과정이 허술하고 엉성해 사기꾼이 아니라 관객도 제대로 속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반전의 쾌감이나 전복의 미학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영화 '공조'로 700만 흥행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얻은 현빈은 반듯한 이미지와 180도 다른 성격의 직업 사기꾼에 도전했다. 언제나 그렇듯 성실한 연기를 하지만 사기꾼을 흉내 내고 있는 듯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악역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유지태와 능청 연기의 일인자 배성우는 시종일관 열연을 펼친다. 아이돌 출신인 나나는 여성 사기꾼 '춘자'역에 의외로 잘 녹아들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현란한 편집으로 볼거리를 강화한 '꾼'은 킬링타임용 무비로는 나쁘지 않다. 단, 새로움을 포기한다면.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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