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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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그 여름 동물원’ 최승열, 그를 특별하게 하는 것들

강경윤 기자 작성 2017.12.11 11:55 수정 2017.12.11 14:35 조회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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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열

[SBS연예뉴스l강경윤 기자] 배우 최승열을 처음 알린 계기는 故 김광석이다. 김광석이 1996년 세상을 떠난 뒤 많은 후배들이 그의 음악을 노래했고, 삶을 연기했다.

단언컨대 최승열만큼 김광석을 절절히 되새기게 한 사람은 없었다.

최승열은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통해 김광석을 처음 연기했고, 이후 JTBC '히든싱어' 김광석 편을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을 통해 그 친구 역으로 김광석의 삶을 연기한다.

'운명'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최승열과 김광석의 남다른 '인연'에 감탄할 수밖에.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잊히는 시대, 시간이 멈춘 듯 흑백사진 같은 아날로그 감수성을 지닌 배우 최승열이 궁금해졌다.

Q. 인터넷 프로필을 보면 데뷔가 '히든싱어'로 되어 있어요. 맞나요?

아뇨. 데뷔는 훨씬 그 이전이에요. 1999년도에 데뷔했어요. 가티(GOTTY)라는 아이돌 그룹이었어요. 혹시 오룡비무방이라는 그룹 아시나요? 오룡비무방에 대항하기 위해 5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죠. 당시엔 김성현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IMF로 소속사가 문을 닫으며 저희도 뿔뿔이 흩어졌어요.

Q. 지금 모습을 보면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데요.

19살 때였어요. 당시엔 5명이 매니저 형이 운전하는 소나타를 타고 다니며 활동했죠.(웃음) 팀이 해체된 뒤 제대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대학도 여러 군데 다니다가 군대를 다녀왔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그레이톤즈라는 밴드로 활동했어요. 장르는 모던 포크락. 홍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2000년대 초반은 펑크락이 주류라서 저희 같은 밴드는 완전 비주류였죠.

최승열 동물원

Q. 그럼 밴드 활동을 하다가 뮤지컬을 하게 된 거예요?

“뮤지컬을 연출하시는 분이 공연을 보러 오셔서 '뮤지컬에 캐스팅하겠다'고 하더군요. 1년 뒤에 정말로 연락이 왔어요. 국악 뮤지컬 '꼭두별초'(2004) 앙상블이었어요. 한 번도 해보지도 않은 자반 뒤지기를 피나게 연습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뮤지컬을 데뷔했는데, 연극배우 김신용 선배를 보고 그 연기에 반해 극단으로 들어갔어요.”

Q. 그렇게 들어간 극단이?

극단 '사조'였어요. 정말 쟁쟁한 선배들이 거쳐 간 극단이었어요.(웃음) 배고팠냐고요? 배고팠죠. 연봉이랄 게 있나요, 연말에 10만원 받는 게 전부일 때도 있었죠. 배우 송새벽 씨와 친구였는데 '너는 10만원 받았냐 나는 30만원 받았다'며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었죠. 저는 주로 창작 뮤지컬을 했어요. 아마 서른 몇 작품쯤, 꽤 했죠?

Q. 그러다가 나간 곳이 '히든싱어'라는 거죠? 프로필에 데뷔가 '히든싱어'라고 되어 있어서 오해를 했어요. 왜 안 밝히셨어요.

아무도 묻지 않던데요.(웃음)

Q.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네요. 결혼은 하셨어요?

결혼 안 했어요. 가끔가다가 '지금 몇 살이에요?'라고 애가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요. 갔다 오지 않았고요.(웃음) 아기도 없습니다.

Q. '히든싱어' 전부터 이미 배우로 오랜 기간 활동하셨네요.

'히든싱어' 출연은 4번인가 거절하다가 나간 곳이었어요. 그때 대구 소극장에서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하고 있었거든요. '나 거기 나가면 정말 큰일 나, 나 최승열 아니고 김공석으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몰라' 하고 계속 안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뮤지컬 알리려고 나갔어요.

최승열 동물원

Q. 지금의 김광석 거리에서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한 거군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하기 한참 전부터 술만 먹으면, 버릇처럼, 광석이 형 노래를 하고 다녔어요. 그 소문을 듣고 누가 찾아왔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대본을 들고 말이죠. 읽는 데만 4시간이었어요. '이렇게 대본 쓰면 안 돼요. 재미없어요' 했는데, 성격을 딱 보니 뭘해도 할 사람이더라고요. 여자친구가 있는데 결혼자금 2000만원으로 공연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물불 안 가리고 어떻게든 할 사람이구나'란 생각에 대구에서 숙소 생활하면서 공연에 올리게 된 거였어요.

Q. '히든싱어' 출연은 작은 뮤지컬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한 거예요?

한번은 '히든싱어' 제작진이 '바람이 불어오는 길' 공연을 보러왔더라고요. 작은 소극장인데 입소문은 좀 탔지만 그래도 홍보가 좀 필요해서, '히든싱어' 나가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얘기 한번 하고 오겠다고 출연한 거였어요. 리허설을 딱 하는데 정말 숨소리까지 똑같은, CD를 틀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 딱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본 녹화 들어가니 그분이 너무 떨어서 1라운드에서 떨어진 거예요. '어, 이거 뭐지?' 했는데 라운드에서 자꾸 올라가는 거예요. 심지어 동물원 (김)창기 형까지 막 틀리는 거예요. '이러다가 1등 하는 거 아니야?' 했죠. 한마디로 얻어걸렸어요.(웃음)

Q. '히든싱어'가 터닝포인트가 된 건 사실이네요.

15년을 배우로 살았는데 1년 동안 외적으로 얻은 게 더 많으니 얼떨떨했죠. 복에 겨운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보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된 건 좋지만은 않지만요. 그래도 동물원 형들하고 함께 공연도 하고, 형들이 '너랑 공연하니까 재밌다. 종종 같이하자'라고 얘기해주시니 행복하죠.

Q. 최승열 배우에게 김광석은 특별한 존재였네요.

“제가 늘 입버릇처럼 광석이 형의 뮤지컬이 나와야 한다고 했어요. 해외 유명 가수들의 뮤지컬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광석 형 뮤지컬도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음악이 잔잔하다고, 우울하다고 해서 뮤지컬로 만들기 힘들다는 건 편견이죠. 광석이 형의 노래는 노래 가사 자체가 다 대사잖아요. 춤이나 화려한 안무가 없어도 그 정서는 분명히 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한 작가에게 이 뮤지컬을 제안했죠.

Q. '그 여름 동물원'이 탄생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네요.

“이렇게 될지는 몰랐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계속했지만 100% 만족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제작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대본을 쓴 작가는 제 동생의 친구인 고향 동생이었어요. 제작사는 신생이었지만 의욕을 보이는 곳이 있어서 서로 연결을 해줬고 저는 배우로서 참여를 하게 된 거죠.”

Q. 이 정도로 참여했으면 개런티를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저 광석이 형의 뮤지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였는데.(웃음)

Q. '그 여름 동물원'을 보다 보면 관객들 훌쩍이는 소리가 많이 들려요.

관객분들이 많이 우시죠.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때 객석을 보면 눈물 흘리는 관객들이 자주 눈에 띄어요. 그 이유로 저도 울컥할 때가 있어요. 정서가 통해서 감정이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런데, 가끔 정말 심하게 우시는 분들도 있어요. 아예 초반부터 두루마리 휴지를 가지고 오셔서 통곡하시죠.

최승열 동물원

Q. '서른 즈음에' 장면은 실제 영상 속 김광석 씨가 다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더 울컥하는 것 같아요.

사실 신경을 쓴 장면이에요. 1000회 콘서트 공연 장면인데요. 광석이 형의 말투를 연습을 좀 해봤어요. 말투의 특색 같은 걸 따라 해봤죠. 전혀 비슷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비슷했다고 해주셔서 저도 신기했었어요. 그 전의 장면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으로 보였더라도, '서른 즈음에' 부분에서는 광석이 형으로 보이기를 바랐어요.

Q. 개인적으로 어떤 장면이 가장 좋은가요.

그 친구가 연습실로 돌아와서 창기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요. 제가 연기할 때는 그 장면이 그렇게 따뜻할지 몰랐는데요.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이 장면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창기와 그 친구가 교감하는 부분의 감정이 좋거든요.

Q. 가장 좋아하는 곡은요?

'나무'예요. 정말 좋아요. 이 곡은 정말 하면서 울컥울컥하게 해요. 명곡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삿말이며 멜로디며 많이 공감하게 돼요.

Q. 모든 배우들이 연기, 안무, 노래, 합주까지 해야 하는 고난도 뮤지컬이에요.

'대충 하는 척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뒤에서 연주해주시는 분들 있는 거 아니냐 하는데, 아니에요. 저희가 다 하는 겁니다.(웃음) 연주를 하는 척 하는 것과 배우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건 에너지부터가 달라요. 보는 분들은 그저 흥겹고 쉬워 보일지도 모르겠는데요 6곡 정도를 합주해야 하는데 엄청난 연습이 필요해요.

Q. '서른즈음에'를 부를 때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직접 연주하던데요.

하모니카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다 주셔서 불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노래를 좋아하시고 잡기에도 능하셔서 저도 그런 부분을 닮은 것 같아요. 기타를 치면서 동시에 하모니카를 부는 게 쉽진 않아요. 기타를 처음 잡은 건 중학교 때였는데요. 그때 하모니카 홀더를 사서 같이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1년 정도 하니까 조금씩 되더라고요.

Q. 마치 이 공연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네요. 최승열 배우에게도 동물원과 김광석은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럼요. 저는 LP로 많이 들었어요. 동물원의 메인보컬로서 광석이 형을 많이 좋아했죠. '바람의 불어오는 곳'도 동물원의 이야기인데, 김광석에 초점을 맞춘 거니까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죠. '그 여름 동물원'을 하면서 동물원에 대한 추억을 다시 듣고 있어요. 형들이 정말 그 당시 연고대 꽃미남으로 이름을 날렸었대요. 특히 창기 형은 인기가 엄청났다고 하더라고요.(웃음)

Q. 얘기가 나온 김에 최승열 배우는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말썽꾸러기긴 했지만 사고를 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아,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긴 했네요. 전교생이 모여서 조회를 하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어요. 전교생 중에 저만 혼자 손들었어요. 그래서 금연침을 엄청 맞았죠.(웃음) 공부는 생각보단 잘했어요. 중학교 시절까지는 쭉 잘했고요. 수원에 살다가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IMF 때 시골로 내려갔죠. 춤을 추고 싶어서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수의 꿈을 키우며 고등학교 중퇴를 해서 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봤어요.

Q. '그 여름 동물원'을 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공연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그저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끝나면 '소주 한잔 당긴다' 그런 느낌이면 참 좋겠어요. 제가 술을 부르는 목소리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김)뢰하 형과 술을 자주 마시는데, 실제로도 술집에서 기타를 꺼내고 노래를 불러요. 자주 부르는 노래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요.

Q. 최승열 배우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나요.

'그 여름 동물원'에서 제 역할이 사실상 광석 선배님 역할이잖아요. 많은 부분이 실제로 광석 선배님과 동물원 선배님들이 겪은 일들을 재현한 건데요. 어린 시절, 꿈을 키우던 모습, 친구들과 울고 웃던 장면 등 누구나 겪었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해요. '나였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많이 해요.

최승열 동물원

Q. 김광석은 최승열을 알리는 계기도 됐지만, 이제는 최승열이란 배우 덕에 김광석의 노래가 더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요.

자작곡을 써온 게 많이 있는데 앨범 작업을 해서 발표를 하고 싶고요. '불후의 명곡'과 라디오를 통해서 인사드리고 있는데 좀 더 저희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차기작으로는 연극을 한 편 할 생각이에요.

Q. '그 여름 동물원'이 계속되는 한 무대에 오를 생각인가요.

'그 여름 동물원'은 각별한 작품이에요. 제 나이가 허락하는 한 하고 싶어요. 정말 애정이 깊은 작품이거든요. 같이 하는 멤버들도 3년이 넘은 친구들도 있어서 누가 못한다고 하면 벌써 서운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이 공연 만큼은 '내 것'이라는 마음이 강해요.

사진=샘컴퍼니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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