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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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①]황현주, 뉴욕 밑바닥부터 시작해 모델로 서기까지

강선애 기자 작성 2018.01.03 16:44 수정 2018.01.04 09:56 조회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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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주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한국모델이 해외에서 유명브랜드의 쇼에 섰다는 소식을 간간히 접한다. 그만큼 K모델의 위상이 옛날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해외 무대에선 키가 크고 마른 서양의 모델을 선호한다. 뉴욕, 밀라노, 파리 같은 세계패션의 중심지에선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게다가 영어도 잘 못 하는 동양인 모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세계패션의 높은 장벽에 대해 충분히 알고도,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입성해 바닥부터 시작한 모델이 있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국내 활동에나 집중하자고 말렸지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 뭔가에 이끌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1년 후인 지금, 단 하루도 촬영스케줄에 공백이 없는, 현지에서 쉼 없이 러브콜을 받는 모델로 성장했다. 이 모든 건, 모델 황현주(26)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2010년 19세의 나이로 SBS 슈퍼모델에 입상하며 모델계에 발을 들인 황현주는 좁은 국내 무대를 벗어나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황현주가 연말연시를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1년 만에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 그녀는 오는 9일에 밀라노로 떠난다. 이번엔 유럽 무대 도전이다.

황현주를 만났다.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한국을 찍고 뉴욕, 밀라노에 가기까지.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가 모델이 되기까지. 서울대 학벌보단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까지. 황현주는 털털하고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질문의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똑똑하게 답변했다. 한 시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 시간은 훌쩍 두시간이나 흘렀다. 그만큼 황현주와의 대화는 유쾌했고,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강력한 흡입력이 있었다.

황현주

▲ 해외 진출이요? 파리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됐죠

황현주는 어릴 적부터 프랑스 파리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는데, 당시 영상으로 봤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틈틈이 불어 공부를 하며 파리에 가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학교공부에 모델일까지 하다 보니 파리로 잠깐의 여행이라도 갈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학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비로소 꿈이 이뤄졌다. 한 달간 해외에 나가 지내는 학교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불어불문학과도 아닌 그녀가 불어로 면접을 봐서 합격을 따냈다. 황현주는 꿈만 그리던 파리로 마침내 떠났다.

“그때 파리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도 내가 모델인데,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일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소속사에 해외에이전시와 미팅을 잡아달라 부탁했어요.”

당연히 소속사에선 황현주를 말렸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4' 출연과 다른 방송일도 하며 어느 정도 국내 인지도가 있는 모델이었다. 주변에선 황현주가 서양에서 선호하는 모델 스타일이 아니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황현주는 소속사에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고, 결국 소속사는 로만(Roman)이란 이름의 뉴욕의 유명 모델매니저가 가능성이 있는 한국 모델을 미팅하러 오는 자리에 50명의 모델 중 한 명으로 황현주도 넣었다. 패션계 메이저 시장인 뉴욕에 진출해야 파리든 밀라노든 갈 수 있기에, 일단 뉴욕의 문부터 열어야 했다.

수십 명의 모델을 보는 자리였다. 아마추어도 아닌, 모두 활동을 하고 있는 프로 모델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황현주는 당당히 로만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뉴욕에 가는 기회를 잡았다.

“로만 앞에서 제가 얼마나 파리를 사랑하는지 어필하고, 발레도 보여주고 그랬어요. 저를 향해 '뷰티풀', '어메이징' 하며 칭찬했는데, 그냥 외국인이라 통상적으로 보여주는 리액션 정도라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최종 멤버로 뽑혔더라고요. 로만은 제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은인이에요.”

황현주

▲ 뉴욕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모델로 서기까지

뉴욕에 갔다고 끝은 아니었다. 우선 에이전시 미팅만 15군데를 돌았다.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게 무섭고, 영어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지만, 하도 많은 에이전시와 미팅을 진행하다 보니 나중엔 그 모든 것에 내성이 생겼다. 그러다 DNA라는 대형 모델에이전시에서 황현주의 손을 잡았다.

“로만이 DNA에서 저와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해줬어요. 믿기지가 않았죠. DNA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미팅을 가졌지만 제겐 너무 높은 벽이라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거긴 동양인 모델을 잘 안 뽑는 곳이라고 들어서, 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절 선택해준 거죠. 제 노력의 결과라기보단, 여러 가지 운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큰 에이전시랑 일하게 됐다고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뉴욕에선 아무리 잘나가는 모델이라도 일을 잡기 위해선 직접 자신의 프로필을 들고 영업사원처럼 돌아다니며 캐스팅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대형 에이전시가 밀어줘도, 캐스팅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모델을 직접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이 일 할 수 없다. 이에 황현주도 일을 따내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저란 사람을 날것 그 자체로 시험대에 올린 느낌이었어요. 완전히 맨땅에서부터 시작한 거죠. 매일매일 캐스팅을 다녔어요. 제가 뉴욕에 갔던 시기가 뉴욕패션위크 때였는데, 그때 수많은 모델들이 캐스팅디렉터에게 프로필을 넘겨요. 그러다 보니 제껄 받아도 관심 없다는 눈초리로 바라봐요. '이러다 하나라도 일을 따낼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그렇게 2개월 동안 프로필에 넣을 사진 작업과 캐스팅 오디션만 다녔어요.”

화려하고 낭만적인 도시로 보이는 뉴욕. 그 안에 서 있는 황현주의 현실은 '걱정' 뿐이었다. 일이 없으니 수입도 없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힘들게 비행기 표를 구해 날아온 뉴욕인데, 집 렌트비에 생활비까지 나가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때 비로소 한 줄기 빛이 황현주에게 스며들었다.

“수많은 캐스팅에 다닌 결과, 드디어 쇼 하나에 서게 됐어요. 뉴욕패션위크 3.1필립 림의 쇼였죠. 제가 다른 모델들에 비해 키도 작고 무명모델이라 좋은 조건이 아니었는데, 절 써 준 거에요. 감사한 일이죠. 그렇게 데뷔 쇼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뉴욕에 간 지 3개월쯤 됐을 때, 촬영 하나가 잡혔어요. 미국에서 큰 캐주얼 브랜드의 촬영 건이 들어와, 일단 가서 일을 했죠. 그런데 거기서 다음 주에 또 와달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가서 촬영을 했는데, 다음엔 이틀 연속으로 와달래요. 그렇게 계속 일을 했어요. 그 브랜드의 촬영 사진이 노출된 이후 다른 곳에서도 절 불러주고, 그 후에 일이 계속 늘어났어요. 그렇게 한 4~5개월쯤 지나고 보니, 제가 쉬는 날 없이 매일매일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스브수다②'로 이어집니다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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