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이병헌 "'JK스타일' 선입견 없어…마음 움직였을 뿐"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1.17 15:35 수정 2018.01.18 08:11 조회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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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JK스타일' 영화라는 게 있다는데 전 몰랐어요. 'JK필름'이라는 영화제작사 자체도 몇 해 전에서야 알았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어떤 선입견도 없이 이야기만 봐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 제작 JK필름)은 이야기가 재밌고, 그 안에 녹아있는 정서가 좋았어요."

배우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 최대한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놓는다고 했다. 제작사는 물론 호흡을 맞추게 될 감독과 배우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읽기 시작해 이야기의 재미와 정서만을 파악한다고 했다.

2015년 '내부자들'(감독 우민호)로 국내 시상식 남우주연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이병헌은 차기작 두 편 모두 신인 감독의 시나리오를 골랐다.

'싱글라이더'와 '그것만이 내 세상', 두 영화 모두 연출 데뷔작이었기에 감독의 역량과 글발을 전작이라는 잣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병헌은 그저 이야기의 재미와 개인의 촉에 기대 이 작품들을 골랐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감별법과 검증법이 가동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 요소에 있어 선입견은 배제됐다.

그것

"시나리오는 좋은데, 감독이 신인이라면 고민스러워지는 게 사실이에요. 내가 대본을 읽으며 그렸던 그림 이상이 나올까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이 나올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가도 '에이, 이야기가 좋으니까!'하고 선택을 해요.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선장(감독)의 말을 따르고 그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배우가 작품에 개입을 많이 하면 어떤 색깔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감독이 자신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끔 조력하며 작업을 해나가요."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해운대', '국제시장' 등을 만든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JK필름'이 제작한 영화다.

이병헌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받은 느낌과 달리 완성된 영화는 누가 봐도 JK풍 가족 드라마다. 보편적인 정서의 가족애를 예상 가능한 이야기에 녹여내고, 웃음과 울음이라는 MSG를 적절히 뿌렸다. 흔하고 뻔하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런 영화는 너무 익숙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게다가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힌 이병헌이 나오고, 탁월한 재능을 펼친 젊은 피 박정민, 관록의 배우 윤여정이 나온다는데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병헌은 '내부자들'과 '남한산성'과 같은 진하고 향이 깊은 코냑 같은 영화를 연거푸 작업했기에, 인공 향은 나지만 부담 없이 술술 마실 수 있는 과일 소주 같은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비범한 배우는 과일 소주도 안동 소주로 둔갑시키는 연기 내공을 발휘했다.

이병헌

'그것만이 내 세상'은 많은 부분에서 이병헌과 박정민의 탁월한 연기력의 덕을 보고 있다. 몇몇 뚜렷한 단점을 두 배우의 열연이라는 확실한 장점으로 보완한다.

"제가 봤을 때는 남들이 이야기하는 'JK식' 정서, 소위 말해 억지로 웃기거나 울리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 담백한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나 신파를 위한 신파였으면 시나리오부터 재밌게 읽지 않았을 거에요. 영화에 대한 감상이라는 게 주관적인 잣대가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이병헌은 이번 영화에서 과거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오갈 데 없는 전직 복서 '조하'로 분했다. 우연히 17년간 헤어져 지냈던 엄마 인숙(윤여정)과 재회하고 신세를 지게 된다. 조하는 엄마의 집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동생 진태(박정민)와 마주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세 가족이 한집에 살며 상처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병헌은 조하라는 인물이 가진 쓸쓸함의 정서가 좋았고, 그것만은 제대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얼핏 봐서는 동네 양아치가 좋게 변화하는 영화인가라고 예상할 수도 있는데 조하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설정이 좋았어요. 보통은 삐뚤어진 사람이 개과천선하는 식의 흐름으로 흘러가잖아요. 실제 주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봐도 어린애처럼 순수한 사람이 많거든요. 그 와중에 조하에게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의 정서가 배어 있어요. "

이병헌

가장 좋아하는 신으로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속내를 토로하는 조하의 모습을 담은 장면을 꼽았다. 

"조하는 어려서부터 상처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억울하거나 슬플 때 뒤돌아서는 캐릭터에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요. 그것은 어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 거에요. 그때 조하는 엄마와 헤어졌던 15살 무렵으로 돌아간 듯 투정을 부리고 원망을 쏟아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조하에게 뭔가 확실한 위로를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동생의 미래만을 당부해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엄마의 대답을 듣고 긴 복도를 걸어가는데 그 뒷모습이 누구에게 두들겨 맞은 어린아이처럼 쓸쓸해 보여요. 이 시퀀스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가슴에 와닿고 슬펐어요." 

조하의 엄마로 분한 배우는 윤여정이다. 이병헌은 윤여정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자신과는 조금 다른 연기 스타일에 놀라움과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윤여정 선생님은 정말 모니터링을 잘 안 보시더라고요. "선생님 모니터 안 하세요?"라고 물으면 "야, 네가 내 것까지 보고와" 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여쭸더니 "난 내가 연기한 거 (부끄러워서) 못 보겠더라" 하시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꼬박꼬박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안 그러는 편이에요. 어차피 봐도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

이병헌은 이번 영화를 하면서 신선한 자극을 얻었다. 바로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보여준 성실과 열정의 자극이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배우지만 후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이병헌은 제작보고회에서도 "박정민의 연기에 내가 묻어갔다"고 말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배라기보다는 동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로의 분석, 아이디어를 정말 많이 공유하고 상의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믿음직스러운 게 아이디어나 설정이 도가 지나치지 않아요. 게다가 연기의 감각이 남다르고 표현도 세련됐어요. 무엇보다 그만한 재능이 있음에도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요."   

영화가 공개된 직후 "진부하고 뻔한 영화를 이병헌, 박정민이 살렸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따로 마시는 느낌"이라고 짧게 반응했다. 

그것

'그것만이 내 세상'은 따뜻한 감동을 내세운 가족 드라마지만, 이병헌의 개인기로 만들어내는 청량한 웃음의 지분이 상당한 영화기도 하다. 며칠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완성한 브레이크 댄스 장면, 보는 사람을 배고프게 만드는 먹방 연기 등 종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객을 만족시킨다.

"코미디 영화를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면 관객들의 반응을 체감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한산성'이나 '싱글라이더' 같은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관객들의 후기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감동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반면 코미디 영화는 터지는 웃음으로 그 반응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즉각 반응이 나오는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을 때는 개봉 후에도 몰래 극장에 가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행복감을 얻으려고요. "

ebada@sbs.co.kr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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