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기자가 '영화상' 주는 날, 흥미로운 뒷이야기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1.31 16:33 수정 2018.02.01 10:15 조회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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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담당 기자와 영화인의 관계는 양면성을 띤다. 때로는 업계 동료, 때로는 애증의 관계다.

영화에 대해 호평을 쓰면 아군, 악평을 쓰면 적군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기자는 납득가는 비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비판이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관계자들에게 소위 '까는 기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

매해 연말과 연초가 되면 한해 영화계를 결산하는 시상식이 열린다. 그중 영화 담당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시상식이 있다. '올해의 영화상'이다.

2009년 설립된 한국영화기자협회(회장 김신성)가 주최하는 행사로 신문, 방송, 통신, 뉴미디어, 전문지 등 59개 회원사, 회원 90명의 투표로 선정되는 시상식이다. 영화의 안과 밖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최고의 영화와 배우를 꼽는 시상식인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제9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이 지난 3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1987'이 작품상과 감독상(장준환)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남녀주연상은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경구,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남녀조연상은 '범죄도시'의 진선규, '더 킹'의 김소진이 받았다.

남녀신인상은 '청년경찰'의 박서준, '박열'의 최희서가 받았고, '올해의 영화상'만의 수상 분야인 올해의 발견상은 '범죄도시'의 윤계상, 올해의 영화인상은 '신과함께-죄와 벌'의 김용화 감독, 올해의 독립영화상은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 올해의 외국어 영화상은 '덩케르크'(워너브라더스코리아)에게 돌아갔다. 

배우 권율과 스포츠월드의 최정아 기자가 사회를 보고 기자들이 트로피를 수여한 이날 시상식은 네이버 V앱으로 생중계돼 관객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시상식의 흥미로웠던 풍경과 시상식이 끝난 후 주역들과 나눴던 담소를 공개한다.

더킹

◆ 기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배우 김소진

2017년 1월 개봉한 '더 킹'은 한재림 감독의 노련한 연출과 조인성, 정우성의 절묘한 호흡, 배성우의 맛깔난 연기로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또 하나, 이 작품이 일군 수확이 있다. 바로 김소진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한강식(정우성) 검사와 박태수(조인성)를 몰락시키는 정의로운 검사 안희연으로 분한 김소진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했다. 정확한 딕션과 안정적인 발성, 높은 난이도의 경상도 사투리까지 자연스레 소화해며 '저 배우 누구야?'를 연발하게 한 것.

출연 분량으로 치면 20분 남짓. 그러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한재림 감독이 만든 이 캐릭터는 '도가니 검사'로 유명한 임은정 검사를 롤모델 삼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김소진은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지만 언론 및 방송 등 어떤 인터뷰에도 나서지 않았다.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대학로로 돌아가 연극 '라빠르트망'을 준비하고 막을 올렸다. 그리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마약왕' 촬영을 이어갔다.

이날 시상식은 기자들이 김소진의 실물을 처음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시상을 맡은 MBN 이동훈 기자는 지난밤 화제를 모았던 서지현 검사의 이야기로 말문을 연 뒤 영화 속에서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의 표본을 보여준 김소진의 연기를 극찬했다. 

더킹

김소진은 자신을 향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무대에 올랐다. 이미 대종상, 청룡상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받았기에 긴장이라곤 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소감을 전하기 위해 입을 떼자마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린 뒤 "항상 이런 자리에 서는 게 쉽지 않은데 이렇게 섰을 때 제가 생각한 마음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격상 그러질 못했어요. 그동안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작년 한 해, 관객분들이나 기자분들에게 참 낯선 배우였을 텐데 저에 대해서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영화에 대해, 김소진에 대해, 안희연에 대해서 진솔하게 글 담아준 기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전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인데요. 옆에서 함께 해 온 좋은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눈물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날 시상식을 중계로 지켜본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은 "멋진 소진 씨!"라며 엄지를 지켜세웠다. 최근 김소진은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에 캐스팅됐다. 시상식을 마친 후에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연기만을 생각하는 프로의 모습이었다.

장준환

◆ 장준환 감독 "연희동 그분 출연료 못줘 죄송"

장준환 감독은 시상식 중간에 등장했다. 영화 '1987' 언론 인터뷰 당시 유니폼처럼 착용했던 1987 패치가 달린 모자는 여전했다. 

시상을 맡은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는 장준환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2001 이매진'(1994)을 언급하며 충무로 입성기를 전했다. 그리고 세 번째 장편 영화인 '1987'의 영화적 가치와 시대 정신을 강조한 뒤 감독의 이름을 호명했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를 만드느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며칠간 작은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늘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왔다"라고 운을 뗐다.

1987

이어 "시상식이 열리는 프레스 센터 인근의 광화문, 시청은 저희에게 남다른 의미다. 1987년 이 광장이 없었다면, 2016년 태블릿 PC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모든 역사의 흐름이 기적처럼 '1987'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훌륭한 배우들과 스태프들, 관객, 모두가 주연이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 영화에 출연을 많이 해주셨는데 돈을 못 드린 분이 있다. 저기 연희동에 계신데, 제가 29만 원 마련해서 전달해드려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있다."라며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설경구

◆ 설경구 "진선규 수상 소감에 초심 생각나"

설경구에게 2017년은 잊지 못할 한 해다. 2013년 영화 '소원' 이후 선보였던 '나의 독재자', '서부전선', '루시드 드림'까지 내리 3편이 100만 명도 넘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영화가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이였고, 흥행의 달콤한 맛을 선사해준 영화가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혼연일체 시키는 연기를 구사하는 설경구는 '불한당'에서는 섹시한 조직폭력배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며,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다.

그 결과 대종상 남우주연상, 디렉터스컷 남우주연상 등 4개의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택시운전사' 송강호의 트로피 독주를 견제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설경구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또 하나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챙겼다.

시상식 후 기자들과 만난 설경구는 특유의 소탈한 화법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상이란 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건데 시상식은 갈 때마다 떨리는 자리"라며 "얼굴을 거의 다 아는 기자분들이 마련한 시상식인데도 무대에 오르니 떨리더라"고 말했다. 

진선규

지난 한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며 인기와 신뢰를 회복한 설경구는 팬덤 '불한당원'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스타로 자리매김 했다. 시상식 직후 자리에서도 기자들이 설경구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설경구는 '불한당'에 함께 출연했던 후배 진선규와 나란히 앉아 지난 시상식의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진선규의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던 청룡영화상을 떠올리며 "(진)선규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박하사탕'으로 첫 트로피(신인상)를 받았던 18년 전이 떠오르더라.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수상 소감과 손도 아니고 팔뚝으로 눈물을 닦는 그 모습이 어찌나 진솔하고 감동적이던지...선규는 정말 잘 될 배우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보도된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의 출연설에 대해서는 "이야기만 나눴다. 세부 사항은 논의 중이다"라고 말을 아꼈지만,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준 변성현 감독과 불한당원들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김용화감독

◆ 김용화 감독 "1,400만 넘기니 책임감 들어"

김용화 감독은 이날 겹경사를 맞았다.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의 1,400만 돌파와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영화인상' 수상이었다.

시상식 후 기자들과 만난 김용화 감독은 "사실 1,200만 명 선에서 흥행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1,300만을 넘어 1,400만까지 가니 감동과 더불어 막중한 책임감까지 들더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내 실력으로 영화가 잘된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더욱 겸손하게 2편 개봉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김용화 감독은 편집실에서 2부 '신과함께-인과 연'의 후반 작업을 하다가 달려왔다.

'올해의 영화상' 작품상은 '1987'의 차지였다. 제작사 우정필름의 이우정 대표는 수상 소감에서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VFX(시각적 특수효과)기업 덱스터 스튜디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유인즉, '1987' 속 시대상을 표현한 CG 작업이 덱스터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신과함께

김용화 감독은 경쟁작 '1987'의 CG작업을 맡았던 것을 떠올리며 "'신과함께' 후반 작업과 '1987'의 CG 작업이 맞물리는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1987'의 작업을 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엔딩의 광장 신의 경우 정말 시간이 촉박해 욕심만큼은 나오지 못했다. 그 점이 조금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 영화와 '1987'이 모두 잘돼 기쁘다"고 대인배 다운 면모를 보였다.

알려졌다시피 '신과함께'와 '1987'은 지난해 12월 일주일 차이로 개봉해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그 결과 흥행은 '신과함께'가 더블 스코어 이상의 차이로 앞섰고, 작품성은 '1987'이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결과적으론 손익분기점을 웃도는 흥행 성적을 낸 두 영화 모두 웃었다.

최고의 흥행 감독답게 김용화 감독의 자리에는 설경구와 진선규 등이 찾아와 수다 꽃을 피웠다. 김용화 감독과 설경구는 이날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훈훈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 '청룡의 스타' 진선규, '진오규' 될 뻔한 사연

지난해 12월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남자 신데렐라'로 떠오른 진선규는 이날 시상식에서도 인기스타였다. 무각본의 수상 소감으로 큰 감동을 선사한 청룡 때와는 달랐다. 준비된 수상소감으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한명 한명 언급했다. 게다가 유머 담긴 멘트까지 섞어가며 수상 소감의 아이콘다운 모습을 보였다.

시상식 직후 기자들과 자리 한 진선규는 “2018년을 시작하는 1월에 상을 받아서 더욱 기쁘다. 왠지 올 한해도 잘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범죄도시' 이후 계속해서 삭발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본인의 패션관은 아니었다. 이정재, 박정민과 함께 촬영 중인 '사바하'(감독 장재현)때문이었다. 진선규는 "극 중에서 스님 역을 맡아서 머리를 기를 수가 없다"고 웃어 보였다.

범죄도시

영화에서 하얼빈 출신 조직폭력배 역할을 살벌하게 소화한 덕분에 악역 이미지가 강하지만 진선규는 선하게 생긴 얼굴이다. 특히 살짝 처진 눈은 웃으면 초승달이 된다. 여기에 낮지만 복스럽게 생긴 코 때문에 순박한 인상을 준다.

진선규는 "예전부터 지인들에게 얼굴이 착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을 때 중간에 착할 선(善)을 빼고 가명으로 '진오규'를 쓸까도 한참 고민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진선규는 김소진과 함께 나란히 남녀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청룡영화상에 이어 두 번째 동반 수상이다. 두 사람은 대학로에서 함께 연기 활동을 펼친 동료 사이다. 

진선규는 "연극할 때 소진 씨와 서로 한 이야기가 있다. 연극상을 받고 초심을 잃는 배우들을 종종 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상을 최대한 늦게 받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동시기에 함께 상을 받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절대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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