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일주일 만에"…'염력', 충격의 성적표 왜?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2.09 14:12 수정 2018.02.09 15:43 조회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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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이 개봉 일주일 만에 퇴장 수순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충격의 성적표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염력'은 8일 전국 1만 5,123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5위까지 떨어졌다. 누적 관객 수는 95만 664명.

지난 1월 31일 개봉한 '염력'은 개봉 첫날 전국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2018년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이자 종전 박스오피스 1위작 '그것만이 내 세상'(12만)을 두 배 이상 앞지르며 흥행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관객 평은 심상치 않았다. 테러에 가까운 평점과 악평이 달리며 혹평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용산 참사 소재에 반감을 가진 집단의 조직적 테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염력'은 개봉 첫날부터 극단적인 호불호 논란이 일며 흥행 전선에 빨간 불이 켜졌다. 호보다는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아 관계자들을 초조하게 했다.

염력

이틀 차부터 내림세가 두드러졌다. 첫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만 1,926명을 동원했다. 개봉일이 문화의 날(월 넷째 주 수요일, 오후 6시~8시 사이 관람료 5,000원)이었다는 것은 고려해도 둘째 날 50% 이상 관객이 빠진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4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다가 첫 주 일요일 '그것만이 내 세상'에게 덜미를 잡혔다. 1위 행진을 하던 신작이 개봉 3주 차의 영화에게 밀린 것이었다.

'염력'은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아빠 '석헌'(류승룡)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진 딸 '루미'(심은경)가 세상에 맞서 상상 초월 능력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평범한 남자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 여기에 부성애를 중심에 둔 가족 드라마라는 점은 관객의 기대감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2016년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연상호 감독의 또 하나의 장르 도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부산행'과 같은 비주얼 충격과 속도감 넘치는 재미를 생각하고 간 관객들에게 '염력'은 반전을 넘어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히어로 무비의 장르적 쾌감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야기의 디테일도 떨어져 아쉬움을 자아냈다. 

염력

마케팅 전략도 패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염력'은 언론 시사 전까지 철거민 소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락영화에 맞지 않는 소재일뿐더러 관객의 반감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100억대의 상업 영화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게 많지 않다. 개봉 전 예매율을 높이고, 개봉 후 1~2주 안에 폭발적인 관객을 끌어모으려면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는 숨기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히든 전략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관객으로서는 톡 쏘는 사이다를 생각했는데 씁쓸한 쌍화차를 마신 격이 됐다. 실망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몇몇 관객들은 지난해 최악의 영화로 꼽힌 '리얼'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염력'의 완성도는 '리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도전적인 시도와 의미 있는 조명이 이뤄진 작품이다. 상업 영화를 통해 지난 비극의 아픔을 상기하게 하는 순기능도 하고 있다. 다만 관객의 기대치와 영화 색깔의 간극이 너무나 컸다. 

히어로 영화라는 외피 안에서 철거민 소재를 다루는 방식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초,중반 까지는 가볍고 유쾌하게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 갑작스레 철거민 이슈가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온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도시개발과 철거민 이슈를 지나치게 가볍게 풀어낸 것은 오히려 반감요소로 작용했다.

염력

'염력'의 상영시간은 120분대였으나 개봉을 앞두고 10분가량을 덜어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 이슈에 대한 디테일이 많은 부분 생략됐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후반부가 듬성듬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를 개봉하기 전부터 (흥행이) 쉽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했다. 후반 작업 과정에서 모니터 시사를 여러 차례 했고, 반응도 어느 정도 감지했다. 그래서 편집에 변화를 가하기도 했다. 디테일의 문제라기보다는 기획 자체가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천만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영화는 전작의 1/10 수준의 흥행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 대비 환산하면 손익분기점은 370만 명이지만, 개봉 전 넷플릭스에 선판매돼 손해를 상당 부분 줄였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사회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 투영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명성을 떨쳐왔다. 실사 영화에서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왔다.

'부산행'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듯 '염력'의 부진도 완전한 실패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연상호 월드'가 재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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