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김연아 시대, 전·후에는…" '아이 토냐'로 본 세기의 라이벌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2.11 14:23 수정 2018.02.12 08:58 조회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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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피겨 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다. 올림픽 종목 대다수가 분, 초로 승부가 갈리는 기록경기인데 반해 피겨는 기술성과 예술성을 심사하는 스포츠다. 객관과 주관의 총 합으로 점수를 매기는 탓에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관람자들도 자의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재미가 있다.

대한민국은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였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등장은 국민에게 큰 감동과 자부심을 선사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땄고, 4년 후 열린 소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같은 은메달을 땄다.

명선수 뒤에는 뛰어난 라이벌에 존재한다. 실력이 비등한 맞수의 등장은 성장에 있어 좋은 기폭제가 된다. 김연아도 주니어 시절 자극이 되는 라이벌이 있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다.

피겨 스케이팅을 보는 데 있어 라이벌 구도는 또 하나의 재미다. 김연아, 아사다 마오 전에도, 후에도, 피겨 라이벌은 존재했다. 이들의 경쟁은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대로 끔찍한 참사를 낸 경우도 있었다.

동계 올림픽의 백미, 피겨 스케이팅 세기의 라이벌을 꼽아봤다.  

토냐

◆ 하딩vs캐리건, 피겨 역사상 최악의 사건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막과 함께 조명받는 한 영화가 있다. 바로 '아이, 토냐'(I, TONYA)다. '아이, 토냐'는 90년대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피겨 요정' 토냐 하딩이 한순간의 실수로 '피겨 악녀'로 전락하게 된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영화는 희대의 악녀 토냐 하딩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추락을 그린다. 토냐 하딩은 1991년 전미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싱글 부분 1위에 오르며 미국 피겨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기만성형 선수 낸시 캐리건이 하딩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다. 하딩은 욕심이 많았고, 어리석었다. 끔찍한 사건을 계획한다.

토냐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출전 선수를 뽑는 미국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낸시 캐리건이 괴한에게 무릎을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배후로 토냐 하딩이 지목된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하딩은 미국 빙상 연맹에 소송까지 걸어 징계 절차를 올림픽 후로 미루는 합의를 한다.

파란만장한 사건 끝에 하딩과 캐리건은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간다. 하딩은 컨디션 난조로 8위에 그치고, 낸시 캐리건은 최고의 연기로 은메달을 목에 건다. 금메달은 우크라이나 옥사나 바이울의 차지였다.

올림픽 후 하딩은 낸시 캐리건 테러를 사주한 사실이 발각돼 피겨 스케이팅 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된다. 이 사건은 당대 최고의 겨울 스포츠로 사랑받던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에 큰 타격을 줬다. 예술의 꽃이 피어야 할 빙판이 탐욕의 핏방울로 얼룩진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었다. 

피겨

◆ 콴vs라핀스키, 승부 갈랐던 점프 난이도

미국은 1990년대 피겨 강국의 면모를 발휘했다.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낸시 캐리건이 은메달을 따자 차기인 나가노 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게다가 당시 미국에는 '은반의 여왕'으로 떠오른 미쉘 콴이 있었다. 미쉘 콴은 1993년 미국선수권대회에 2위에 올랐지만 나이 제한(당시 만 13세)으로 차기 올림픽을 기약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1996년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 1위에 오른다.

미국의 신성 타라 리핀스키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리핀스키는 올림픽 전초전이었던 1997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1998 나가노 올림픽 최고의 관심사였다. 리핀스키는 쇼트에서 미쉘 콴에 이어 2위에 머물렀지만, 프리 경기에서 필살기인 트리플 룹-트리플 룹 컴피네이션, 트리플 룹-트리플 살코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켜 금메달을 따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미쉘 콴 역시 프리에서 클린 연기를 펼쳤지만 기술 난이도에서 리핀스키에 뒤지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당시 만 15살이었던 리핀스키는 개인 종목 역대 최연소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미쉘 콴은 지독히도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점프 실수로 3인자인 사라 휴즈에게 금메달을 양보했다. 휴즈의 프로그램 기술 구성은 여타 선수들 보다 현저히 낮았지만, 메달권 선수 중 유일한 클린 연기로 금메달의 행운을 얻었다. 

김연아는 어린 시절 미쉘 콴의 경기를 보며 '은반의 여왕'을 꿈꿨다고 했다.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에 빛나는 미쉘 콴은 뛰어난 표현력으로 피겨의 예술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연아

◆ 김연아vs마오…피겨, 예술이 되다

일본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아라카와 시즈카가 금메달을 따며 피겨 강국으로 우뚝 선다. 이를 기점으로 국가 차원의 피겨 키즈 양성이 이뤄졌다. 이때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아사다 마오다. 아사다 마오는 주니어 시절부터 세계 대회를 휩쓸며 '포스트 시즈카'를 예약했다. 그러나 마오에겐 김연아라는 너무도 뛰어난 경쟁자가 있었다.

피겨 불모지인 한국에서 태어난 김연아는 전용 경기장 하나 없이 힘들게 훈련을 해나갔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그것을 능가하는 노력으로 10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동갑내기에 한국과 일본의 메달 기대주였던 두 사람은 각종 주니어 대회에서 벌갈아 1,2위를 하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라이벌 구도는 김연아의 급성장과 마오의 퇴보로 깨지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기술력과 예술성을 겸비한 토탈 패키지형 선수로 성장했다. 2008/2009 시즌 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쇼트)와 '세 헤라자데'(프리)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밴쿠버 올림픽 청신호를 밝혔다. 교과서에 가까운 깨끗한 점프는 물론이고 '은반 위의 발레리나'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표현력으로 피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김연아

아사다 마오는 이미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앞지른 김연아를 따라잡기 위해 트리플 악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고난이도의 트리플 럿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내세웠지만, 마오는 3회전 컴비네이션 점프를 프로그램에 넣지 못했다. 때문에 3회전 반의 트리플 악셀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실전에서의 성공률은 30% 미만이었지만, 단독 점프로는 최고 난이도인 트리플 악셀을 넣어 반전을 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트리플 악셀에만 매달리며 시간을 허비한 탓에 아사다 마오의 경기 밸런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연아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할 때 마오는 빙판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쇼트), 프리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프리) 모두 무결점 연기로 생애 처음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피겨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푸른색 의상를 입고 은반 위에 예술꽃을 피운 김연아의 프리 연기는 지금도 역대 동계 올림픽 사상 최고의 순간으로 꼽힌다.

자기토바

◆ 메드베데바vs자기토바, 러시아의 집안 싸움

2018 평창 올림픽에서도 피켜 스케이팅의 인기는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처음으로 피겨 스케이팅에서 전 부문(여자 싱글, 남자 싱글, 페어, 아이스 댄스, 단체전)에 선수들이 출전한다. 김연아 키즈인 남녀 싱글 선수 최다빈, 김하늘, 차준환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최고 관심사는 여자 싱글 금메달을 두고 겨루는 러시아의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와 알리나 자기토바의 경기다. 2017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메드베데바는 여자 싱글 1위에 오르며 평창 올림픽 금메달을 예약한 듯했다. 그러나 메드베데바는 지난 몇달간 부상으로 공백기를 가졌다. 

이때 러시아의 신성 자기토바가 급부상했다. 16살인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가 불참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에 올랐다. 기세를 몰아 지난달 21일 열린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메드베데바를 꺾고 정상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은퇴 이후 여자 싱글은 러시아 중심으로 재편됐다. 공장식 선수 발굴로 인력풀을 넓힌 탓에 수많은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 중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체형 변화를 극복하고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 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비슷하다. 점프 대부분을 후반부에 배치하고, 타노(손을 들어올리고 점프하는 동작)기술을 더해 가산점을 챙기는 방식이다.

기술에서는 자기토바가, 표현력에서는 경험이 많은 메드베데바가 근소하게 앞선다. 프로그램 점프 난이도 역시 자기토바가 조금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끄는 현재 여자 싱글은 김연아가 열어놓은 예술의 피겨 시대에 반하는 점수 쌓기 경기라는 비판이 많다.

김연아의 빈 자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평창 동계올림픽 은반 위에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관심이 쏠린다.

ebada@sbs.co.kr   

<사진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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