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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리 빌보드', 시궁창에서 건진 희망 '연대와 사랑'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3.03 13:20 수정 2018.03.04 14:23 조회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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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미국 팝뮤직 차트를 지칭하는 단어로 익숙한 빌보드(billboards)는 옥외광고의 하나로 고속도로변 등에 세운 대형 광고판을 뜻한다. 빌보드는 돈만 내면 욕을 제외한 어떤 홍보 문구나 메시지를 싣는 것이 가능하다. 뜨겁다 못해 막무가내인 한 엄마가 세 개의 빌보드로 작은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끔찍한 범죄 사건으로 딸을 잃은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하려는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경찰의 무능과 나태를 비난하는 광고를 실은 것.

도발적인 문구는 관할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마을의 존경받는 경찰 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와 부하 딕슨(샘 록웰)은 광고회사와 밀드레드를 찾아가 빌보드를 내릴 것을 회유한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물러서지 않고 경찰의 수사를 거듭 촉구한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만큼이나 그녀를 분노하게 한 것은 공권력의 나태와 무능이었다. 외출한 딸은 봉변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왔지만 경찰은 DNA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한심한 대답만 늘어놓았다. 빌보드는 경찰의 자존심을 건드려 재수사를 유도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쓰리 빌보드

'쓰리 빌보드'는 트럼프 시대를 사는 미국의 사회의 한 풍경을 미주리 주(州) 외곽의 에빙이라는 시골 마을을 통해 풍자한다. 

미주리는 미국 중부의 주로 인종 차별이 심한 지역이다. 영화는 밀드레드와 대립각을 세우는 딕슨을 비롯한 경찰 대부분을 인종차별주의자로 설정했다. 지위와 인종를 막론하고 시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집단이 흑인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차별을 일삼는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미국 사회의 그릇된 시선도 아우른다. 난쟁이 자동차 딜러 제임스는 밀드레드 곁을 맴돌며 크고 작은 도움을 주지만, 외면과 무시에 맞서온 밀드레드 또한 또 다른 약자인 제임스에게 상처를 안긴다.

'쓰리 빌보드'는 사회에 대한 폭넓은 시선과 인간에 대한 깊은 포용력이 빛나는 영화다. 범죄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사건 자체의 발생과 해결에 중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전개와 달리 살인 사건의 묘사를 생략했다. 그것은 공권력의 무능과 인간을 향한 차별 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하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다. 범죄 영화에서 자극과 충격을 빼고 주목도와 흡입력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영화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인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딸을 잃은 밀드레드의 회한과 분노는 누가 보더라도 공감 가능하지만 경찰의 각성을 촉구하는 과격한 방식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를 담긴다. 또한 경찰의 나태와 무능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개인의 능력과 도덕의 문제만이 아닌 시스템의 부실과 관료사회의 폐해라는 점도 강조한다. 

2009년 영화 '킬러들의 도시'의 각본과 연출로 실력을 인정받은 마틴 맥도나 감독은 미국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을 흥미진진한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지독한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무겁거나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시종일관 위트를 유지한다. 그 위트는 신을 얼어붙게 하는 시답잖은 농담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조소가 가득한 검은 유머다.

쓰리

영화는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아 수사권이 없는 시민이 수사에 나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살인 사건의 미제가 아닌 각자 삶의 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가장 흥미로운 건 약자와 소수자의 연대다. 인간을 각성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고, 그 중추적인 감정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밀드레드의 딸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만큼이나 윌러비 서장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딕슨과 노모의 유아적이면서도 기이한 모성애 등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엄마로 바로 서는 과정, 가장의 책임감을 앞세운 선택, 경찰의 소명을 다하려는 변화 등을 풍성하게 묘사한다. '쓰리 빌보드'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양심과 도덕을 되찾은 이야기다. 

'여자는 악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 부족한 '밀드레드'는 프란시스 맥도맨드라는 배우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완성됐다. 코엔 형제의 뮤즈이자 조엘 코엔의 아내이기도 한 맥도맨드는 '파고'(1997) 이후 가장 강렬하고 멋진 캐릭터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예약했다.

또 하나의 발견은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웰이다. 사람에 대한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딕슨은 좁은 시선으로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때문에 딕슨의 각성과 변화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흐뭇한 미소를 유발하는 순간이 된다. 

'쓰리 빌보드'는 오는 4일(현지시각) 열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6개 부문 7개 후보에 올랐다.

상영시간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3월 15일.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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