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버닝', 칸 마케팅은 독이었을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6.01 14:57 수정 2018.06.01 18:42 조회 900
기사 인쇄하기
버닝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칸영화제 폐막식을 앞둔 지난 5월 20일 오후 2시경. 칸에 머물던 기자들은 '버닝'의 홍보사로부터 국제비평가연맹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더불어 시상식 취재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종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은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4년 '윈터 슬립', 2015년 '사울의 아들', 2016년 '토니 에드만', 2017년 '120BPM' 등이 수상했다. 이들 영화 중에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고, 황금종려상('가장 따뜻한 색 블루, '윈터슬립)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본상 무관('토니 에드만')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        

본상 수상 결과가 발표되는 폐막식 5시간 전 전해진 소식이었다. 물론 이 상의 의미가 '버닝'의 추가 수상을 기약할 수 있는 긍정적 의미인지, 본상 수상 무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당일 오후 4시, 국제비평가연맹상 시상식이 열렸고 이창동 감독은 "심사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기는 레드카펫도 화려한 플래시도 없지만, 레드카펫에 올라갈 때는 비현실 같았다면 여기는 나에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운을 뗐다.

이어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산책하는 미스터리영화였다"며 "그 미스터리를 안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창동

시상식 직후 이창동 감독과 세 주연배우, 제작자 이준동 대표, 시나리오 작가 오정미 등 영화의 주역과 기자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은 "보통 수상작의 경우 폐막식이 열리는 오전 11시 전후,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칸영화제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못했다"며 말했다. '버닝'의 경쟁 레이스가 사실상 여기까지라는 소식을 취재진에게 직접 전한 것이다.

더불어 이창동 감독은 "칸에 마지막으로 온 것이 8년 전이다. 그때는 운이 좋게 본상(각본상)도 하나 받았지만,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오늘 어느 때보다 기뻤다. 진심이다."라고 말했다.

칸 현지에서 영화가 공개되고 호평 일색의 반응이 나오면서 '버닝'의 수상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상당했다. 이 말에서 며칠간 그가 느꼈던 부담감이 읽혔다.

이창동 감독은 비현실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칸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피에르 르시앙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5월 23일 귀국했다. 귀국 다음 날인 5월 24~25일 이틀간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은 칸영화제 본상 수상 불발의 아쉬움과 마케팅 방향에 대해 아쉬움을 밝혔다.

버닝

이창동 감독은 "수상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다. 심사를 해봐서 아는 데 항상 매년 우수한 영화 한 두 편은 떨어진다. 심사위원 사이에서도 밀고 싶은 작품은 남겨두게 된다. 평가를 좋게 받으면 떨어질 가능성도 높은 내막이 있다. 내부의 일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구조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불안했다. 한편으론 나한테 그렇게 좋은 일이 생기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2009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더불어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칸영화제 수상 여부에 모든 마케팅을 올인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결국 상을 못 받으면서 판돈을 다 잃어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같이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더라. 만약 황금종려상 같은 걸 받았다면 한국 영화계에 자극이 되고 활력도 얻는 계기가 됐을 텐데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버닝'의 마케팅에 있어 칸영화제 수상이 핵심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2007)으로 여우주연상, '시'(2010)로 각본상을 받으며 영화제 측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신작 '버닝'의 개봉 시기 역시 칸영화제에 맞춰 이뤄졌다. 관계자는 "이창동 감독의 최고 흥행작인 '밀양'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효과에 힘입어 160만 관객을 돌파했던 것처럼 '버닝'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버닝

이창동은 거듭해서 자신을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말하지만, 일반 관객 대부분은 그를 '예술영화 감독'으로 생각해왔다. 그간 작품을 통해 보여준 남다른 깊이 때문이다. 소위 말해 '사유의 영화'를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품격과 깊이가 있지만, 불편하고 어려운 질문을 한다고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사유의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이창동의 신작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화제성과 주목도가 높은 '칸영화제 수상 효과'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개봉 3주 차에 접어든 현재 '버닝'은 전국 48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수치를 수상 실패에 따른 결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데드풀2'의 공세와 '독전'의 초반 독주가 매서웠다. '버닝'은 개봉 초부터 호불호가 갈리며 입소문을 키우는 데 한계를 보였다. 

'버닝'의 총제작비는 80억 원 선이다. 손익분기점은 250만 명 선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70만 명 선이다. 순제 방식으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순제 방식이란 P&A(홍보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순제작비를 기준으로 수익을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버닝'의 P&A 비용은 20억가량 투입됐다. 이 금액은 해외 세일즈로 모두 만회가 됐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 내려갈 수 있었다.

버닝

이창동 감독은 연출 영화 6편 중 4편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그러나 최근작인 '시'와 '버닝'이 손익분기점 달성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버닝'을 실패한 영화로 보는 시선은 안타깝다.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내포하는 다양한 의미를 더욱 많은 관객이 영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칸에서의 반응은 호평이 우세했다면,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 남겨놓은 은유와 상징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길 꺼렸다. 만든 이의 설명이 아닌 보는 이의 자유로운 해석이 뒤따르기를 바랐다.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븐 연), 해미(전종서)의 미스터리, 실재와 소설을 오가는 듯한 전개, 엔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버닝'에 버닝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열려있다. 이창동 감독이 파놓은 사유의 우물도 마르지 않았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