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이상한 청춘영화 '튼튼이의 모험' 응원하는 이유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6.10 12:09 수정 2018.06.10 14:05 조회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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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전설적인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얼핏 보면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예외 없이 애환이 있다. 인생의 희비는 삶의 태도와 시선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삶을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재단하려 든다. 섣부르며 건방진 시선이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개인이 설정한다. 이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확고하게 든 생각이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청춘 영화를 통해서 말이다.

'튼튼이의 모험'은 전국체전 예선 2주 전, 존폐위기의 고교 레슬링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 전라남도 함평에 위치한 한 중학교 레슬링 선수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레슬링 선수단이 전국 체전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는 제대로 된 경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경기의 박진감과 승패의 카타르시스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스포츠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고봉수 감독은 전작 '델타 보이즈'(2016)에서도 이런 플롯를 선보였다. 중창대회를 준비하는 네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엔딩에 이르러서야 겨우 노래 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장면이 주는 감동은 특별했다.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은 독특한 리듬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병맛(맥락 없고 어이없는 상황을 뜻하는 신조어)코드다. 상황은 극도로 우울한데 캐릭터들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캐릭터의 힘이다. 재능도 백그라운드도 없지만 레슬링에 대한 사랑만큼은 1등인 '충길'(김충길), 레슬링을 했지만 현실에 순응해 막노동을 시작했지만 다시 고민하는 '진권'(백승환), 대학에 가기 위해 얼떨결에 레슬링부에 들어온 혁준(신민재)은 하나 같이 이상하다. 평균 나이 30세를 훌쩍 넘긴 세 배우가 18살의 고교생으로 나오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도무지 웃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캐릭터들은 주어진 성격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선다. 황당한 캐릭터들이 충돌하며 쉴 새 없이 웃음을 선사하지만 암울한 상황과 막막한 현실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충길과 진권과 혁준이 체육관 안에서 레슬링 연습을 하는 장면을 비추면서도 체육관 밖에서 포크레인이 운동장을 미는 풍경을 계속해서 대치시킨다. 

하이퍼 리얼리즘(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리얼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 영화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판타지 영화라고 규정해야 할까. 그 사이쯤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음악도 최소화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자 유일한 경기 장면에서 단 한 번 음악이 등장한다.

튼튼

'튼튼이의 모험'은 청춘들이 꿈을 좇는 영화면 으레 선택하는 성공 서사의 노선을 걷지 않는다. 레슬링부원 3인은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엘리트가 아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이들의 꿈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저 좋아서 기꺼이 시간과 땀을 쏟는다. 영화는 특별한 기교 없이 담담하게 이들의 일상을 그린다. 그 사이사이 발생하는 순도 높은 페이소스는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능가하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를 지배한 허무주의, 비관주의를 이 영화는 거부한다. 세상살이가 버거운 청춘들의 현실 반영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이들의 삶의 태도가 직면한 문제에 비관만 하지는 않는다. '튼튼이의 모험'은 자신의 캐릭터대로 암울한 현실을 맞서나가는 씩씩한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생동감이 넘친다. 고봉수 감독의 전작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고성완, 윤지혜 등이 다시 한번 의기 투합했다. 전편의 메인 캐릭터가 백승환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김충길이 리딩 캐릭터로 영화를 이끈다.

충길은 연습실에서는 "싸이야~!"를 외치며 레슬링 연습에 매진하고, 집에서는 운동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밥상머리 혈투를 벌인다. 전편보다 살을 찌우고 몸을 키운 김충길은 마치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순박하지만 열정넘치는 청년의 생생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튼튼

고봉수 감독의 코미디 리듬을 가장 잘 살리는 신민재와 백승환, 윤지혜는 연기인지 애드리브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코믹 연기로 시종일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또한 실제 버스 운전을 한다는 아마추어 배우 고성완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며 영화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한다. 

영화계에는 '사단 문화'가 알게 모르게 형성돼있고, 이는 일부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고봉수 사단'은 이유있는 의기투합에 가깝다. 감독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연출과 프로듀싱, 촬영, 편집까지 1인 4역을 담당했고, 배우들은 연기뿐만 아니라 투자자로 참여했다. 투자가 여의치 않아 스태프조차 꾸릴 수 없었던 열악한 제작환경에 따른 결과다. 

촬영과 편집에 있어 투박함이 엿보이지만, 영화의 미덕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고봉수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페이소스를 극대화한 B급 화법이 거대 자본과 만난다면 어떤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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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의 모험'은 제작비 2천만원으로 완성한 영화다. 전작 '델타 보이즈'는 250만 원으로 만들었다. 10배로 예산을 키운 영화지만 독립 영화 중에서도 초저예산에 속한다.

하지만 요만큼의 돈으로 이만큼을 만들었다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의 가치로도 충분히 빛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와닿지 않은 조언이 아닌 살과 땀과 눈물, 입과 입이 부딪혀 만들어낸 웃픈 공감이 이 영화의 정수다.

* 영화의 제목인 '튼튼이의 모험'은 감독이 좋아하는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노래에서 따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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