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개들의 섬', 웨스 앤더슨의 신세계로 놀러오세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6.23 09:32 수정 2018.06.24 18:31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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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개들의 섬'의 카피는 '개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개'다. 이런 순애보같은 문구라니.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반려견을 잃어버린 소년이 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인 일본의 메가사키 시(市),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지자 고바야시 시장은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한다. 시장은 시민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입양한 조카 아타리의 경호견 스파츠를 가장 먼저 퇴출한다. 이 사실 알게된 아타리는 경비행기를 훔쳐 쓰레기 섬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버려진 개 치프, 보스, 듀크, 킹 등과 함께 스파츠를 찾으러 나선다.

'로열 테넌바움'(200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드벤처 무비다. 대부분의 영화가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으로 구성돼있다. 주인공은 한 우물만 판다. 가려는 길,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개들의 섬' 역시 이 공식을 따른다. 큰 차이는 극영화가 아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2004년 '판타스틱 Mr. 폭스'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 한차례 도전한 바 있다.

개들의 섬

애니메이션에 뿌리를 둔 연상호 감독은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그의 실사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대로 '개들의 섬'은 웨스 앤더슨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이 시청각적으로 만개한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개 캐릭터들의 입체감을 위해 총 1,097개의 퍼펫을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슈나우저, 푸들, 퍼그 등 다양한 견종의 캐릭터가 움직임, 표정에서 생동감 넘치는 것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작업해나간 제작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들의 섬'은 풍자성이 짙은 우화다. 고바야시 시장의 독재와 그를 따르는 군중은 전체주의의 양상을 띤다. 또한 '쓰레기 섬'은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후쿠시마를 연상케 한다.  

영화는 왜색이 짙다. 일본이 배경인 데다 일본 사람이 등장하고, 일본말이 나온다. 또한 전통 가옥과 벚꽃, 기모노 의상, 가부키 연극, 스모, 스시 등 일본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웨스 앤더슨은 오랫동안 일본 문화에 애정을 보여왔다. 제대로된 일본풍이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시나리오에 일본 배우인 쿠니치 노무라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쿠니치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고바야시 시장의 목소리 더빙을 맡기도 했다.

개섬

앤더슨은 이번 작품을 구상하는 데 있어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목판화의 거장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영화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완성된 영화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 '들개' 등의 짙은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감독의 호기심이 느껴지는 동시에 선입견이 투영된 시각도 엿보인다. 그러다보니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동양, 일본의 독특한 문화 재현은 오리엔탈리즘이 묻어나기도 한다.

파스텔톤 색감과 좌우대칭 화면, 수직 구도 등 웨스 앤더슨 스타일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도 예외가 없다. 챕터 구성도 여전하다. 아시아 전통 악기 태고에 색소폰과 클라리넷 같은 예상 밖의 악기들을 섞는 독특한 조합으로 완성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도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영화에서 인간은 일어를, 개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개의 말은 자막으로 표기되지만, 인간의 말은 제한된 번역만 이뤄진다. 아타리와 개들은 언어로는 소통하지 못하지만, 유대감을 쌓으며 마음 대 마음으로 소통해나간다. 사람과 반려견이 피의 나눔이나 합의된 언어 없이도 가족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과정이다.

개들의 섬

더빙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캐릭터와 배우의 이미지를 맞춘 타입 캐스팅이 돋보인다. 치프 역에 브라이언 크랜스톤, 보스 역에 빌 머레이, 듀크 역에 제프 골드브럼, 킹 역에 밥 발라반, 스파츠 역에 리브 슈라이더, 렉스 역에 에드워드 노튼이 참여했다. 또한 수컷 개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넛메그의 목소리는 할리우드 섹시 스타 스칼렛 요한슨이 담당했다. 오노 요코 부교수 역은 故 존 레논의 반려자였던 오노 요코가 맡았다.

웨스 앤더슨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루저, 4차원이다. 살짝 어둡기도 하다. 이들이 구사하는 유머는 엉뚱한데 진지하다. 그런데 중독성이 강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 캐릭터들 또한 그렇다. 

'개들의 섬'은 독재 사회에 대한 우화인 동시에 인간과 개의 유대에 관한 동화다. 쓰레기 섬이라는 디스토피아에서도 감독 특유의 드라이한 유머는 생기를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있다. 스파츠를 찾는 아타리의 애닳음, 아타리를 향한 치프의 충성을 보며 눈물 짓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인 개에게 영화의 언어로 캐릭터와 감정을 입힌 웨스 앤더슨의 빛나는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웨스 앤더슨은 늙지 않는 동심을 가진 감독이다. 그의 가슴 속엔 어린이가 살고 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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