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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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발레리노→뮤지컬 배우…뮤지컬 '미인' 권용국의 아름다운 도전

강경윤 기자 작성 2018.07.03 17:27 수정 2018.07.03 17:28 조회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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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국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뮤지컬 배우와 발레리노는 모두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 연기 방식은 전혀 다르다. 발레리노가 아름다운 몸짓으로 주로 감성을 표현한다면, 뮤지컬 배우는 노래와 연기, 때론 춤으로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배우 권용국(34)은 10대와 20대 중반을 발레리노로 살았고,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고 있다. 일반적인 뮤지컬 배우들과는 밟아온 과정이 전혀 다른 셈. 그 과정이 빠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길에서 권용국은 누구보다 충실했다.

뮤지컬 '미인'에서 강호를 지키는 두치 역을 맡은 권용국은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미인'은 1930년 대 일제치하에서 인기 변사였던 강호가 시련을 겪고 독립을 위해 자신을 몸을 던지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 권용국이 맡은 두치는 강호가 어떤 감정을 겪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하게 했다.

권용국은 무대 위에서 발레리노답게 유연한 몸의 움직임을 엿보였지만, 정작 관객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노래실력과 탄탄한 발성이었다. “기대 이상이었다.”는 칭찬에 수줍은 듯 “아니다”를 연발하는 권용국의 겸손함은 대화 내내 이어졌다.

권용국

Q. '미인'은 신중현 씨의 곡을 엮은 주크박스 창작 뮤지컬이다. 임하는 소감은 어땠나.

“그동안 공연을 했던 작품은 대부분 라이센스였다. 창작 뮤지컬은 '레드북' 이후로 두 번째인데, 배우가 만드는 부분이 많다보니까 재밌다. 함께 하는 배우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그런 과정이 즐겁다.”

Q. 두치 역이 확정되고 대본을 건네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나.

“강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인물이었다. 그 정도일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쉬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웃음) 1930년 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고 또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한계점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연출님과도 많은 얘기를 했는데, 기존에 있던 음악과 드라마의 합의점을 찾는 게 연습 과정이었다.”

Q. 두치라는 역할을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사이다' 같은 역할이다.

“두치라는 캐릭터가 당대 최고의 '주먹'이지 않나. 왠지 덩치도 커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가 않으니까, 오히려 더 빠르고 날카로운 두치를 연기하고 싶었다.”

Q. 극중 두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원래 두치는 표준말로 대사를 했다. 그러다가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서 대사를 하다가 식사자리에서 연출님과 대화 도중에 내 고향이 대구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럼 경상도로 해야지'라고 하셔서 공연 일주일 전에 경상도 사투리 대사로 다 바꿨다.”

Q. 공연 일주일 전에 바뀐 거면 굉장히 연습하는데 힘들었겠다.

“힘들었다. 19세 때까지는 대구에 살긴 했지만, 대학 이후엔 서울에서만 쭉 살았기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도 쉽진 않았다.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대구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친구들이라서 대체로 전화통화가 욕이었긴 했지만(웃음) 그래도 도움이 됐다. 연출님이 나를 믿어주신 덕이다.”

Q. 단조로울 법한 캐릭터였는데, 연기가 입체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기존의 이미지를)따라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극중 명희(박시인 분)와 러브라인 아닌 러브라인이 있는데, 그걸 좀 더 잘 표현해보고 싶었다. '츤데레'라고 해야 하나. 임팩트 있는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Q. 개인적으로 두치 연기에서 좋았던 부분을 자평해보자면.

“'내 심장은 네꺼다잉'이라는 대사다. (김)종구 형이 많이 도와줬다. 형이 그쪽으로 센스가 있고 경험도 많아서 많은 도움을 줬다. '너의 캐릭터를 더 살려봐라'라고 조언해줬는데 그런 부분이 나름대로 잘 나온 것 같다. 그 외에는 강호를 구하려고 고등학생들과 싸우는 장면과 강산이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장면이 좋았다.”

Q. 강산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좀 울컥해졌라. 권용국 배우도 울던데.

“나는 관객석 쪽을 바라보고 강산이는 뒤에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강산을 처음 봤는데 진짜 눈물이 나더라. 많이 와닿았다.”

Q. 얼핏 이미지만 봐도 두치와 비슷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싸움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의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도 끝도 없이 잘하는 게 비슷한 면이다.”

뮤지컬 미인

Q. 빼놓을 수 없는 게 안무였다. 몇몇 장면은 깜짝 놀랄만큼 아름다웠다.

“안무 선생님이 애정을 많이 쏟으셨다. 예전에 신중현 선생님 곡에 맞춰서 춤을 많이 추셨다고 하더라. '커피한잔', '인형' 장면에서의 안무가 참 좋다.”

Q. '미인'에 함께 출연하는 스테파니 배우도 발레를 했다. 극중 스테파니의 발레 독무는 정말 아름다웠다. 권 배우에게도 그런 연기가 새롭게 다가왔겠다.

“스테파니 배우는 수석무용수도 하고 발레에 대한 애정이 깊다. 독무 부분은 자기가 다 짰는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발레를 나름대로 전공하긴 했지만 뮤지컬 무대 위에서의 춤은 또 다른 것 같다. 무용전공이긴 하지만, 나보단 정원영 배
우가 더 감각 있게 춤을 잘 춘다. 무대 위 무용과 발레의 동작은 좀 다르다.”

Q. 춤보다는 연기에 더 빠져있는듯 하다.

“주요배역을 맡아서 연기에 많이 부담이 있었다.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부터 자기전까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더 고민을 했다. 동갑내기인 친구 원영이와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런 고민의 과정이 나에게 많이 '플러스'가 됐다.”

Q. 뮤지컬을 처음 시작한 게 2009년이었다. 꽤 늦은 셈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 작품이었다. 일본의 한 발레단에 있는 친한 형이 그곳으로 오라고 추천해서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뮤지컬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도 몰래 원서를 써준 거다. 덜컥 오디션을 보라는 연락이 와서 갔다가 돼서 첫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Q. 무용과는 다른 느낌이었나.

“무용으로는 많은 무대에 섰지만 댄서였지만 첫 뮤지컬 무대에서 섰을땐 기분이 달랐다. 연기도 하고 노래를 하는데 관객들의 반응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아, 이거 해봐야 겠다' 하는 생각이 든 거다.”

Q. 대신 원서를 써준 형에게 고마워 해야겠다.

“정말 고맙다.”

Q. 춤은 그렇다 치고, 노래 실력은 타고난 건가.

“고등학교 때 밴드 보컬을 했다.”

Q.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뭔가가 우연 혹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듯하다. 발레는 어떻게 시작했나.

“고1 때 시작했다. 어머니가 당시 5살이었던 동생을 발레를 시키려고 학원에 갔다가 발레를 하는 남성을 보고 나에게 추천해주셨다.  발레학원이라고 하면 안 갈 게 뻔하니까, 어머니가 체육학원이라고 속여서 보내셨다. 호기심에 해봤는데, 6개월 지나면서는 재미와 흥미가 붙었다.”

Q. 생각보다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다.

“원래는 테니스를 했고, 운동을 좋아하고 감각도 있었다. 시작은 좀 늦은 편이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발레를 시작하고 나서 콩쿨에 나가보니 나는 한바퀴 도는데 다른 사람들은 몇바퀴씩 돌더라. 자극을 받아서 그 때부터 연습을 진짜 열심히 했다.”

Q. 연기, 무용, 노래 중에서 가장 재밌는 건.

“연기다. 제일 재밌다. 파면 팔수록. 가끔 고민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기도 하고 고통스러운데, 즐겁다. 평소 생각을 별로 안하는데, 연기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마다 자극을 받고,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Q. 무용을 시작한 건 17세, 뮤지컬을 시작한 건 20대 중반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편인데 초조함이나 그런 건 없나.

“전혀 없다. 뮤지컬 배우 (박)은태 형과 친한데, 형을 보면 배우로서 어떤 정점을 찍지 않았나. 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은태형은 은태형이다. 예전에는 조바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내려놨다고 해야 하나.(웃음)”

Q. 내려놨다는 표현이 재밌다.

“마음이 더 편해졌다. 굳이 내가 갈망하고 절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뭐하는데' 이런 생각보다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하면 언젠가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Q. '무용을 계속할까'란 아쉬움은 없나.

“후회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무용하는 후배들이 한번씩 전화가 와서 뮤지컬에 대해 물어본다. 그 친구들에게 뮤지컬 배우로서 노래와 연기를 제대로 연습한 뒤에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앙상블로 춤을 추는 것도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욕심이 난다면 노래와 연기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무기를 찾길 바란다고 한다.”

Q. 배우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14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봤을 때였다. 당시 '위키드' 공연 중이었는데 '미스사이공' 작품을 너무 해보고 싶어서 오디션 연습을 한달 정도 했었다. 투이라는 역할을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오디션에선 앙상보컬 부문만 볼 수 있었다. 오디션을 다 마치고 손을 번쩍 들고 '투이 곡을 한번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다 부르고 나서 스태프들의 좋아하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극장을 나왔을 때 다섯 손가락이 전기가 오듯이 짜릿해 극장 앞 편의점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있었다.”

Q. 배우로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겠다.

“내가 배우로서 큰 희열을 맛본 경험이었다. 결국 그렇게 투이 역할의 퍼스트 커버에 합격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미스사이공' 한국 공연이 무산됐다. 정말 아쉽지만 그래도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고, 나에게 그런 느낌을 선물해줬다는 게 고마웠다.”

Q. 다시 기회가 온다면.

“꼭 '미스사이공'에 출연해보고 싶다. 김영주라는 동료 배우가 웨스트엔드에서 '미스사이공' 무대에 서고 있다. 기회가 온다면 나도 웨스트엔드에 가보고 싶다. 언어가 좀 문제겠지만.(웃음)”

Q. 작품 안에서 발레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나.

“사실 별로 없다. 오디션을 볼 때 '발레' 경력은 감췄다. 댄서로 낙인이 찍혀서 나에 대한 색안경이될 수도 있겠더라. 춤을 추는 건 최대한 감추고 싶다. 지금은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 게 목표다.”

Q. 권용국하면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이 배우는 진짜 괜찮지', '믿을 수 있지'라는 배우가 되고 싶다. 믿고 쓸 수 있는 배우. 연기 뿐 아니라 스태프들과 배우들과의 인간 관계에서도 믿음을 주고싶다.”

Q.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매체에도 진출할 생각이 있나.

“없다. 무대가 좋아서 지금은 이렇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게 좋다.”

사진=클립서비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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