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고봉수와 튼튼이, 어느 별에서 왔니'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7.06 08:17 수정 2018.07.06 10:29 조회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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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의 모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감독님이 촬영을 앞두고 충길이가 외칠 구호를 가져오라는 미션을 주셨어요. 중학교 때 합기도 체육관 다녔던 게 생각나는 거예요. 보통 합기도 기합이 "얍!" 이건데 어떤 형이 혼자서만 "싸이야!!"를 외치더라고요. 운동하던 모든 사람이 웃었죠. 그 기억이 떠올랐어요. 써먹어야겠다 싶었죠." (김충길)

고봉수 감독이 연출하고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가 주연한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전국체전 예선 2주 전, 존폐위기의 고교 레슬링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시종일관 "싸이야!"를 외치며 레슬링 연습에 매진하는 충길(김충길)을 보고 있노라면, 끝내는 사고 한 방 크게 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끝내는 시원하게 뒤집기 한판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그러나 '튼튼이의 모험'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이게 현실이니까요."라고 말한 고봉수 감독의 말은 그래서 더 와닿는다. 오늘날 청춘을 다루는 영화들의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성공보다 실패와 가까운 삶을 산다. 특히 삶의 조건이 열악한 사람일수록 꿈을 이루고 목표를 획득하는 길을 멀기 마련이다.

튼튼이

"배우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10여 년 가까이 영화를 한다고는 했는데 늘 실패만 했어요. 그게 영화에 녹아든 것 같아요. 이 영화도 투자 단계에서 신파적 요소와 희망적인 엔딩을 요구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못하겠더라고요. 가짜 같아서요. 게다가 전 신파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신파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튼튼이의 모험'은 청춘에게 당면한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캐릭터의 다채로움과 영화의 태도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시작은 존폐 위기의 함평중학교 레슬링부를 만나는 것이었다.

"김대웅 감독님과 레슬링부 친구들을 만났어요. 살면서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는 처음 경험해봤네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함평 중학교 레슬링 연습장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어요."(고봉수 감독)

제작비 2천만 원은 촬영 일주일 전까지도 조달이 안 됐다. 결국 감독과 주연배우 세 명이 십시일반 돈을 거뒀다.

촬영 환경은 열악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끊이지 않았지만, 악재도 호재로 이용했다. 이를테면 촬영을 앞두고 함평 중학교에 운동장 공사가 시작됐다. 고봉수 감독은 "촬영을 못 하겠다"가 아니라 "레슬링부 폐지로 인해 체육관을 밀어버리는 설정으로 가자"고 말했다.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운동장 포크레인 장면은 넘치는 웃음 속에서도 척박한 현실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의 영화에는 공식이 있다. 첫 번째 배우다. 단편 'G포'부터 장편 데뷔작 '델타보이즈'까지 개근해온 세 배우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배우가 이번 영화에도 어김없이 주연을 맡았다. 

세 배우는 고교 시절 연기 입시학원에서 만난 막역지간이다. 모두 연극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수년간 드라마와 영화의 단역을 맡아왔다. 고봉수 감독과 함께한 '델타보이즈'와 '튼튼이의 모험'은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대표작으로 우뚝 섰다.

전작 '델타보이즈'에선 백승환 배우가 극을 이끌었다면, '튼튼이의 모험'은 김충길 배우가 사실상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신민재 배우는 촬영을 마친 고봉수 감독의 신작 '다영 씨'의 주연을 맡았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주인공을 맡긴 게 맞아요. 차기작 '다영 씨'는 신민재 배우에게 선물 같은 개념으로 역할을 줬어요. 신민재 배우가 원했던 멜로 장르의 영화입니다. 흑백 무성 영화고요."(고봉수 감독)

배우들은 감독의 콜을 받고 바로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촬영 두 달 전부터 레슬링 기본기를 배웠다. 프로선수처럼 잘할 필요는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충길(김충길), 진권(백승환), 혁준(신민재) 모두 형편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레슬링 부원들이기 때문이다.

고봉수 영화의 공식 두 번째, 대본이 없다.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는 "투자용 대본은 있으나, 촬영용 대본은 없다"는 우스갯소리 같은 진담을 했다. 대본이 없는데 촬영이 가능할까. 

튼튼이

"가능합니다. 대본에 의존하지 않을 뿐이에요. 재즈로 따지면 즉흥 연주 같다고나 할까요. 때와 상황에 맞춰 변주하기도 해요. 야외 촬영인데 비가 오면 실내에서 찍을 장면을 구상하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찍어야 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러면 공사장 모래사장 위에서 찍는 식인 거죠." (고봉수)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새로운 걸 만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나에게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을 극대화해준 분이 고봉수 감독님이세요. 저는 이 스타일이 너무 좋아요." (신민재)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본이 아닌 상황을 주고 연기를 하게 하시니까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거든요."(김충길) 

"저희끼리는 촬영이 없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요.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 했던 행동들이 영화에 적용될 때가 많아요. 감독님은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상황을 부여해주고 저희는 애드리브를 치는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 엔지(NG)가 날 때마다 대사도 바뀌어요. 물론 했던 걸 또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감독님이 '재미없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다른 시도들을 연이어서 하게 되요. 저희에겐 '전유성을 웃겨라' 같은 미션인거죠. 촬영 자체가 재밌어요."(백승환) 

튼튼이의 모험
튼튼이의 모험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 모두 기묘한 유머를 끊임없이 유발한다. 타율은 5할 이상이다. 이것은 고봉수 감독이 웃음에 굉장히 엄격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충길은 "감독님은 재미없는 건 확실하게 말하세요. 신기한 건 우리가 안 웃어도 감독님이 웃었던 장면에서는 관객들도 빵빵 터지더라고요."라며 동의했다. 

고봉수 표 영화를 보면 갖게 되는 죄책감(?)이 있다. '이걸 보고 웃어도 되는 걸까'하는 마음이다. 고 감독은 "처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웃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시겠죠. 그렇지만 한 번 보면 바로 익숙해질걸요? 희극과 비극을 함께 가는 겁니다."라고 웃어 보였다.

"기본적으로 웃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먼저 웃고, 다른 사람을 보여줬는데 그 사람도 웃으면 최고죠. 굳이 코미디 장르에 국한된 영화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스릴러, 멜로, 공포 등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던 간에 우리만의 코미디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주성치 영화를 즐겨봤어요. 영향을 많이 많았다고 볼 수 있어요. 저에게는 주성치의 영화들이 가장 웃기면서 감동적이고 슬픈 영화거든요."

고봉수 감독의 데뷔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대 후반 뒤늦게 영화감독의 꿈을 알고 3개월 과정의 영화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그리고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에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친삼촌 고성완을 주연으로 한 첫 단편 영화를 찍었다. 

튼튼이의 모험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상업 영화 연출부에 막내로 지원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가게 됐고, 짧게나마 영화 연출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촬영 감독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연출의 꿈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러던 중 백승환 배우를 만났어요. 그리고 그의 친구들인 김충길, 신민재 배우를 소개받았고요. 이 친구들이랑 대화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에요. 이 배우들의 캐릭터를 살린 영화가 장편 데뷔작 '델타보이즈'예요."

고봉수 감독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음악에서 얻는다고 밝혔다. 그는 "'델타보이즈'는 델타 리듬 보이스의 '제리코의 싸움'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을 듣고 이야기를 구상했고, '튼튼이의 모험'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인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이 음악이 너무 좋은데 어떤 장면에 쓰면 좋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가 자연스레 생각난다고나 할까요?"라고 말했다.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은 예산이 넉넉지 않아 총 10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전작 '델타보이즈'로 평단의 호평을 받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음에도 투자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고 감독에 따르면 '튼튼이의 모험'은 꽤 큰 규모의 상업영화로 만들어질 뻔했다. 그러나 감독이 세 배우의 캐스팅을 고집하면서 불발됐다.

아름다운 고집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고봉수 감독의 차기작 '봉수만수'(가제)는 CJ 출신 최아람 대표가 이끄는 영화사 람과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한다. 제작비 50억 내외의 상업영화다.

고봉수 감독에 따르면 고봉수 표 유머로 완성될 조금은 희한한 히어로 무비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도 세 배우가 출연한다. 조금은 이상하지만, 유쾌하고,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은 병맛 매력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빠지지 않을까 싶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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