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미투' 소재로 '19금 영화'라니…"뻔한 장삿속vs표현의 자유"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7.08 12:01 수정 2018.07.09 10:39 조회 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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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8년 영화계에서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화두다. 문화예술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각 분야로 확산되며 음지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례가 폭로되고 고발됐다. 2차 피해 확산과 허위 폭로 등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문화예술계의 자정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컸다.

이 가운데 미투를 소재로 한 19금 영화가 개봉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미투-숨겨진 진실'(이하 '미투')이다.   

영화 '미투'(감독 마현진)는 저명한 교수가 권위를 이용해 대학원생 '은서'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은서'의 대학원생 동기 '혜진'은 교수에게 성 상납을 해서 학업적 성취를 도모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영상등급물위원회는 지난달 18일 해당 영화에 묘사된 빈번한 성행위와 성폭행, 사제 간의 이익을 위한 성행각 등 사유로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을 부여했다.

영화를 배급한 SY미디어는 최근 예고편과 포스터를 공개하며 홍보를 시작했다. 2분 17초 분량의 예고편은 한 중년 남자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제 안에 괴물이 있었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젊은 남녀의 키스신이 등장한다. 이어 노교수가 술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해 "둘은 섹스해봤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교수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제자가 옷을 벗으며 교수를 유혹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네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라는 말과 함께 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교수의 모습도 등장한다. 예고편은 그간 미투 폭로로 공개된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사례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짜깁기된 듯한 느낌이 강했다.

미투

◆ "미투, 흥미거리 아냐"vs"표현의 자유 제한"

영화 '미투' 측이 홍보를 시작하자 여성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이하 미투연대)는 지난 3일 '미투' 배급사 SY미디어에 미투 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홍보를 중단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미투연대는 "'미투'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온 힘을 다해서 피해 경험을 말함으로써 다른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시작된 자발적인 사회운동"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귀사가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 하고 성폭력의 본질을 흐리는 성인영화인 '미투-숨겨진 진실'에 권력형 성폭력에 대항하는 '미투'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내용 증명을 보내기 앞서 미투 연대는 SY 미디어에 상영본과 시나리오 사전 모니터링 협조 요청을 했으나, SY미디어는 미투연대가 영화를 부정적으로 왜곡한다면서 요청을 거부했다.

영화계 여성단체 '찍는페미' 역시 성명을 통해 “해당 영화는 '충격결말' '괴물' '집착' 등의 단어를 내세워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자극적인 홍보를 진행하는 중”이라며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을 고발한 미투 운동은 관음증적 시선으로 소비되어야 할 흥밋거리가 아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미투

'미투'의 영화배급사 SY 미디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Y 측은 "'미투'라는 이름을 붙여 성폭력 피해자들을 모욕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 부정적 논쟁에 대한 부분은 사과하지만 그 이상의 해석은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관련 영화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대중들 역시 "제목부터 2차 가해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쓰레기냐", "감독 정신없는 듯" 등의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면 안 된다", "어차피 판단은 대중이 할 것이다"는 의견도 보였다. 물론 만든 이의 의도를 영화를 보기도 전에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문화 예술에 대한 창작,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도 또 다른 문화 폭력이라는 의견도 일견 타당하다.

미투

◆ 이슈 편승한 VOD 영화?…상영관 있는데 예매는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는 장삿속이 엿보이는 영화다. 애초 극장용으로 기획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품은 7월 5일 개봉한다고 알렸으나 VOD 서비스는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했다. 개봉 전후로 인터넷 예매를 시도했으나 불가능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공개한 상영현황정보에는 전국 2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된다는 정보가 게재돼있다. 개봉일인 5일에는 맥스무비와 인터파크의 예매창이 연동돼있었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로 가면 "상영 스케줄이 없다"는 고지가 나왔다. 

5일 인터파크 고객 센터는 "우리 사이트에는 실제 판매하는 영화만 뜨는데 '미투-숨겨진 진실'은 정보 등록이 안 돼 있는 영화 같다. 우리도 조회가 안 된다."고 전했다. 

이는 VOD 시장을 노리는 영화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른바 극장 동시 개봉 서비스다. 동시 개봉작과 개봉 후 2차 시장에 풀리는 영화들은 관람료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극장을 한두 개라도 걸고 있다면 개봉 영화 관람료 수준의 VOD 비용이 책정된다. 실제로 '미투'는 현재 40개의 온라인 플랫폼에 극장 동시 상영작이라는 이름으로 1만원에 VOD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IPTV용으로 기획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자동차 극장이나 단관 극장 몇 곳을 대여해 새벽이나 아침 시간대에 영화를 상영하는 꼼수를 부린다. 개봉 영화의 프리미엄만 얻겠다는 전략이다.

홍보 역시 노이즈 마케팅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편집된 예고편과 카피를 사용했다. 이는 지난해 9월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가 비난을 받았던 '토일렛'과 유사한 기획 및 유통, 홍보 방식이다.

미투 운동은 인권과 직결된 문제고, 여전히 진행형인 뜨거운 이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영화화할 때 보다 깊이 있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미투-숨겨진 진실'이 소재에 대한 접근과 표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ebab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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