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마약 흡입에 피칠갑 액션…'15세 관람가' 맞습니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7.11 15:30 수정 2018.07.11 17:12 조회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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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개봉 영화의 등급 분류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5월 개봉한 '독전'(감독 이해영)과 최근 개봉한 '마녀'(감독 박훈정)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으리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놀란 것은 영화 관계자뿐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본 다수의 관객들도 "어떻게 이 영화가 중학생이 볼 수 있는 등급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청와대에 등급 재심의 요구하는 국민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등급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 절차에 따라 내려진다. 과거 영등위는 심의를 엄격하게 내려 영화들이 스스로 가위질을 하거나 모자이크를 해서 관객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최근 이 두 영화의 등급을 보면 지나치게 관대해 보인다. 그렇다면 영등위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기로 한 것일까. 아니면 이 두 영화에게만 유독 관대했을까.        

독전

◆ '독전'→'마녀', 15세 관람가 논란

'독전'은 폭력, 가슴 노출, 마약 흡입 장면까지 세다면 셀 수 있는 3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다. 그러나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등위는 '독전'에 대해 "마약조직과 수사관의 대결을 그린 영화로 총격전, 총기 살해, 고문 등 폭력묘사와 마약의 불법 제조 및 불법거래 등 약물에 대한 내용도 빈번하지만, 제한적으로 묘사되어 영화 전반의 수위를 고려할 때 15세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면서 해당 등급을 매겼다.

등급 분류 시에는 전문위원과 등급분류 소위원회 위원들이 연령에 맞는 등급분류를 하기 위해 검토와 논의를 거친다. '독전'의 경우 7명의 소위원회 위원 중 6명이 참석했고, 3명이 15세 관람가를 나머지 3명은 청소년관람불가 의견을 냈다. 가부 동수의 결과에 따라 소위원회 의장이 최종 등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행에 힘입어 개봉을 확정한 확장판 '독전:익스텐디드 컷'도 최근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서도 영등위는 "마약 조직과 수사관의 대결을 그린 영화로 가슴 노출, 동영상 속 정사 장면, 총기 살해, 고문 등 선정적, 폭력적 내용들이 있으나 일부는 간접 묘사로 제한적으로 표현되었고, 마약의 불법 제조 및 불법 거래, 욕설과 비속어의 사용 등 약물과 대사, 모방위험의 유해성도 있다. 영화 전반의 표현 수위를 고려할 때 15세 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는 비슷한 소견으로 15세 관람가 등급을 다시 한번 부여했다. 

마녀

지난달 27일 개봉한 '마녀'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 논란을 야기했다. 영등위는 '마녀'에 대해 '육체 폭력, 시신유기, 총격전 등 살인과 살상의 폭력 장면들이 다소 자극적으로 묘사됐고, 인간의 뇌와 유전자를 조작하여 새로운 인간의 종을 만들어낸다는 설정 등 비윤리적인 유해성 등이 있으나,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 주제와 표현의 수위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매겼다. 

영화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 역시 등급에 대한 질문에 "편집 과정에서 조금씩 수위 조절을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15세에 맞춰 영화화한 건 아니었다. 15세 이상 관람가가 나온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고 밝힌 바 있다.

영등위는 등급 분류와 함께 각 기준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그래프를 공개하고 있다. 이 그래프는 ▲주제 ▲ 선정성 ▲ 폭력성 ▲ 대사(저속성) ▲ 공포 ▲ 약물 ▲ 모방 위험까지 총 7개의 항목에 대해 매우 높음, 높음, 다소 높음, 보통, 낮음의 5단계의 수치를 보여준다. 

'독전'의 경우 모든 항목에서 다소 높음을, '마녀'는 선정성과 약물 항목을 제외하고 다소 높음을 받았다. 

마녀

◆ 제한적 묘사와 자극적 묘사의 차이는?…애~매모호한 기준

영화 등급 분류는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기에 당연히 사람의 의견이 들어간다. 그러나 '제한적 묘사'와 '모방위험의 유해성' 등의 소견은 객관화하기 모호해 보인다는 점에서 이견이 나올 수 있는 부문이다.

'독전'의 마약 흡입 장면에 대해 제한적 묘사라고 볼 수 있을지, 고교생이 사람 수 십 명을 죽이는 장면이 10여 분 이상 등장하는 '마녀'가 청소년에게 모방위험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근거가 애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등급 분류 기준에 있어 노출 항목은 관대한 면이 있다. 과거에도 가슴 노출이 포함된 영화가 15세 관람가를 받은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독전'처럼 마약 흡입 장면이 직접 등장한 영화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내린 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독전

한국은 마약 밀매는 물론 제조 및 흡입 자체가 낯선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묘사된 일련의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원호(조진웅)가 선창(박해준), 진하림(김주혁)으로 위장해 마약을 코로 흡입하는 장면의 묘사는 여느 한국 상업 영화에도 등장하지 못한 직접적인 장면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 용필름 측은 "마약을 권하는 영화가 아니라 유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점을 고려해 등급이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관련 장면은 중학생 관객이 보기엔 시각적 충격이 커 보인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이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V.I.P'와 비교해봐도 '마녀'의 수위가 훨씬 낮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마녀'는 후반 30분 액션을 몰아넣어 빈번한 신체 훼손과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이 장시간 노출됐다. 지난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700만 흥행에 성공했던 '범죄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폭력성이 두드러진다. 

영화는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매체다. 창작자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영등위는 수위에 맞게 등급을 매기면 된다. 등급 분류는 개별 영화의 표현 수위에 따라 관객층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그러나 최근 영등위가 몇몇 영화에 매긴 등급은 과거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현재 관객의 눈으로봐도 기준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보인다. 

마녀

◆ 표현은 과감, 등급은 관대?… 명확한 기준 필요

'독전'은 500만 관객을 돌파해 올 상반기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마녀'는 개봉 2주 만에 전국 18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230만 명)을 향해 순항 중이다. '독전'과 '마녀'의 흥행은 영화의 개성과 재미에 힘입은 결과다. 그러나 일정 부문 '등급 덕'을 받았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두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10~20%의 관객은 잃었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독전'의 관객층 중 10대 비율이 낮지 않다. 강렬하고 흡입력 강한 청소년 관람불가급 영화의 합법적(?)인 관람이 허용되자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독전'의 한 관계자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마녀' 역시 10대 관객층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두 영화 모두 개봉 초보다 2주 차 이후 뒷심을 발휘해 장기 흥행의 발판을 마련했다. 입소문은 10대 관객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은 대한민국예술원회의 추천에 의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위촉으로 구성된다. 지난 4월 30일 자로 7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영등위는 SBS연예뉴스에 "분야별 소위원회 위원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야별 등급분류위원의 임기는 1년이다. 소위원회 위원은 공개모집(공모)을 통해 위촉하고 있다. 영화 등급분류 위원은 영화영상, 미디어, 문화예술, 청소년 등 각계각층 30~50대의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마녀

'독전'은 7기 영등위가 처음 등급 분류를 한 영화이기도 하다. '마녀'까지 15세 관람가 등급을 준 것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7기 영등위가 폭력성, 선정성에 관해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등급분류 기준에 따라 등급분류시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 화면의 구성과 전달방식 등을 감안하되, 개별 장면이 미치는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등급분류를 하고 있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등급 완화의 방향성에 영등위는 "영상표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이해도 사회적 흐름에 따라 확대되고 있어, 위원회는 이러한 다양한 변화들을 합리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유연하게 반응했다.

최근 개봉 영화에 대해 관대한 등급이 연이어 나오자 영화계는 술렁이고 있다. 한 제작자는 "현재 영화를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제작사에서도 등급 낮춰 제작하거나 편집의 방향을 바꾸는 등의 변화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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