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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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매실밭 시신, 유병언 맞다"…'그것이알고싶다'가 밝힌 죽음 미스터리

강선애 기자 작성 2018.07.15 01:13 수정 2018.07.15 18:51 조회 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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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그것이 알고싶다'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사망한 것이 맞다고 검증하며, 그의 죽음 뒤에 얽힌 의문점들을 제기했다.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최후의 5일, 그리고 마지막 퍼즐-유병언 사망 미스터리'란 부제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에 대한 의혹을 추적했다.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의 매실 밭에서 신원 미상의 부패가 심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6월인데도 시체는 위에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고, 옆에 때 묻은 천 가방 속에는 술병이 들어있었다. 노숙자의 시체인가 했더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증 결과 그 신원은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뒤로하고 검경의 추적을 피해 도주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졌다.

당시 국과수의 공식 발표 이후에도 매실 밭 변사체가 유 회장이 아니라는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갑작스런 유회장 사망 소식에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건 기독교복음침례회, 통칭 '구원파'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술병이 시체 옆에 있다는 걸 본 순간 '아니다 노숙자다'라 생각했다”고 했다. 유 회장이 술을 안 마시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체의 심한 부패를 보고도 사람들은 의심했다. 5월 25일, 검찰이 유 회장의 은신처인 순천의 별장을 급습했지만 유 회장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 여성 신도는 전날 유 회장이 누군가와 별장을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유 회장은 적어도 5월 24일까지는 살아있었다는 이야기다. 5월 24일부터 시체가 발견된 6월 12일까지, 최대 18일 만에 사람이 뼈만 남은 백골의 상태로 부패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생긴다.

시체가 발견된 마을주민들은 그 시신이 유 회장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주민들은 세월호 참상이 있기 이전에 발견된 시신을 가지고 연출한 거라고 믿었다. 4년이 지났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유 회장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제보들이 끊이질 않았다. 유 회장의 죽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괴담 또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유병언 전 회장의 사망에 관한 의혹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했다. 국내외의 법의학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한 부패 속도 확인 실험을 통해 유 회장 죽음의 가장 큰 의문점이었던 시신의 백골화 과정을 밝혔다. 법곤충학자들과 함께 시신에서 채취한 파리, 구더기의 성장 속도를 분석하여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돼지 사체로 실험한 결과, 열흘이 지나자 사체는 돼지였던 걸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버렸고 머리는 뼈만 남았다.

기증받은 시체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연구하는 곳인 테네시대학 법의인류학센터의 한국인 전문가에게도 의뢰했다. 그는 유 회장의 사망 사진을 보고 시체의 부위별 부패 정도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통해 “5월 28일 밤 11시부터 6월 1일 오전 5시 사이에 사망한 걸로 추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또 당시 순천 매실밭과 비슷한 기온, 환경의 미국 지역에서 38구의 시체로 연구한 결과, 시체가 유 회장 사체의 발견 당시와 비슷한 상태에 도달하는 데 10.4일에서 12.9일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되면 유 회장은 5월 29일 정오부터 5월 31일 밤 12시 사이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온다.

모든 과학적 접근에서 유 회장의 사망 시점은 5월 말에서 6월 초이고, 열흘 만에 그렇게 심한 부패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통해 '그것이 알고싶다'의 MC 김상중은 “2014년 6월 12일 매실 밭에서 발견된 시신은 유병언 회장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유 회장이 죽음에 이르기 전의 행적을 쫓았다. 2014년 당시 전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다시피 했던 유 회장의 도피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 엄마, 운전기사 양 씨, 이 교수, '구원파' 대변인들 등에게 유 회장의 도피 정황을 들었다.

알고 보니 유 회장은 5월 25일, 검찰이 순천 별장을 찾아갔을 때 그곳의 비밀공간에 숨어있었다. 당시 유 회장과 함께 있었던 비서 신 씨가 유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전날 유 회장이 누군가와 나갔다고 검찰에게 거짓말했던 것. 유 회장은 그 비밀공간에 홀로 숨어있었고, 그 후 매실 밭 사체로 발견됐다.

제작진은 당시 비밀공간 안에 남아있던 소변량을 통해, 유 회장이 비밀공간에 숨은 후 13시간 정도 지나 동틀 무렵 별장을 나갔을 거라 추정했다. 그가 5월 26일에 별장을 나와 헤매다가 도로 쪽으로 내려와 매실 밭으로 향했고, 29일엔 매실 밭 앞까지 왔을 거라 여겼다. 그가 죽은 매실 밭은 도로와 가깝고 공개된 공간이라 숨기에 부적절한 곳. 하지만 프로파일러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고, 짐승의 공격도 안 당할 수 있으며, 누군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오히려 국도가 내려다보이는 그 매실 밭에 머물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 회장의 사체가 반듯하게 누워있었기에 자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구원파 신도들과 전문가들은 그가 평소에 자살에 대해 안좋게 여기고 있었기에 자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여겼다. 남은 가능성은 저체온사. 하지만 구원파 신도들은 유 회장이 체온 관리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그 역시 아닐 것이라 내다봤다.

누군가 유 회장을 죽여 시신을 유기하고 자살처럼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발견된 사체를 통해선 그런 타살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독물도 검출되지 않았고, 뼈도 금 간 데 하나 없었다.

과학적으로 사인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아있다. 뼈를 보는 것이다. 정양승 미들테네시주립대 생물학과 박사는 “국과수에서 부검하면서 뼈에서 특별한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뼈에 만약 외력에 의한 손상이 있다면 한 번 더 검사해 볼 필요가 있다”며 “뼈에는 잘 보이는 경우가 있다. 확인을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고 사체의 뼈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보면 사인을 알아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 회장의 유골은 화장되지 않고 금수원 뒤편 얕은 언덕에 매장됐다. 구원파 측은 “(유 회장이) 지금도 아직 살아계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언젠가 다시 또 무덤을 파서 DNA 검사라도 해야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화장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묘비도 없이 그냥 땅에 묻은 것에 대해 “회장님 누명 좀 벗어지면 그때 만들자 해서 지금은 그런 상태로 있다”라고 설명했다. 땅에서 유골을 꺼내 분석한다면, 유 회장의 사인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당시 매밀밭 시체를 수사하며 부실수사와 검경의 공조에 혼선이 있었던 여러 가지 정황이 포착됐다. 순천 별장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제보도 묵살됐다. 또 구원파 신도들은 검찰이 유 회장의 신변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국과수 DNA 검사가 나온 40여 일 후가 아니라, 시체가 발견된 6월 12일에 그게 유 회장의 시신인 걸 검찰은 이미 알았다는 주장이다.

유 회장의 측근 이 교수는 “변사체가 발견된 날, 수사관이 자신에게 '구원파 소유 매실 밭이 있냐'면서 '매실 밭에서 시신이 발견됐는데 회장님 시신 같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에 문의한 결과, 당시 수사관은 국과수 발표가 나온 7월 21일에 변사체가 유 회장인지 알았다고 밝혔다. 구원파와 검찰의 주장이 다른 상황.

구원파는 “회장님이 돌아가신 게 밝혀지면 공소가 무효가 되니까. 회장님이 계속 살아계셔야 우리 재산도 추적하고 이슈 몰이도 하니까”라며 검찰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숨겼다고 주장했다. 또 “처음부터 표적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왜 났는지도 모르는데, 기사가 나는 건 세월호의 실소유자는 유병언인데 구원파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인천지검에 수사본부가 차려지며 유 회장 관련보도가 쏟아져 나왔고, 유 회장 관련 보도가 세월호 참사 보도를 덮어버리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구원파 측은 “저희한테 쏟아지는 모든 에너지가 세월호에 대한 사고의 원인, 결과, 대비책으로 이어졌다면, 침몰 원인을 밝히는 게 전제되고 모든 것이 순서대로 진행됐다면, 지금 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기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수사를 맡은 인천지검이 기자들에게 정보를 지나치게 상세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조영신 변호사는 “유병언 관련해서는 인천지검에서 거의 매일, 백브리핑을 진행한 게 확인됐다”며 이례적으로 언론에 적극적이었던 인천지검의 행동을 언급했다.

한 기자는 “과도한 수사를 받은 게 맞다. 구원파 관계자 중에 검찰에 체포되거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 그러면 해경에 관한 수사가 활발히 이뤄졌냐. 온도 차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검찰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건 발생 직후부터 유병언이 선주회사 실소유주로서 탐욕적 경영으로 인해 이번 사고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수사에 노력을 해왔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주민 국회의원은 “이게 한 사람의 탐욕으로 이런 참사가 벌어질 수가 없다. 특히 구조실패를 어떻게 설명할 건가. 마치 모든 걸 유병언의 탐욕에 의한 것이라고 초점을 맞추는 거 자체가 뭔가 왜곡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전했다.

당시 구원파는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현수막 내걸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문구를 만든 것에 대해 이태종 전 구원파 대변인은 “누가 도대체 기획을 하는 걸까 생각해봤다. 우리가 이런 비슷한 일, 이상하게 여론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가 91년에 한 번 똑같이 있었다”라며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을 언급했다.

91년 유 회장과 구원파는 4년 전 일어난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여론의 질타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아무런 관련이 없단 게 밝혀졌지만 유 회장은 다른 죄목으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했다. 구원파는 지금의 상황과 그때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91년 법무부장관, 2014년에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이 공통적으로 있었다며 배후로 지목했다.

이태종 전 구원파 대변인은 “그때도 상당히 저희가 인간쓰레기로 매도가 됐다. 32명이 죽은 오대양 사건으로 지금 25년 동안 회복 못 하고 살았는데, 이제 300명 죽인 사람으로 우리가 낙인이 찍혔다. 너무 억울하니까, 죽기 전에 찍소리라도 하자고 해서, 우리를 이렇게 모함한 거 같은 사람 한 번 지목이나 하고 망하더라도 망하자 했다”며 김기춘 현수막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 거대 배후로 찍힌 김기춘이 지금은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구속돼 감옥에 있는 상황.

박주민 의원은 “지금 잘못한 사람 얼마나 많나. 근데 유병언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되고 끝나는 것처럼 언론도 수사기관도 호들갑을 떨었다. 근데 정작 유병언이 죽었고, 더이상 수사도 못 하고 끝나버렸다. 이게 이상하고 황당하다”라며 속상해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4년 전 유병언 회장이 죽은 건 맞다. 하지만 그의 유골과 묻힌 진실이 뭔지,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으로 304명의 죽음의 진실을 덮어버릴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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