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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킬링 디어', 이토록 꺼림칙한 우화를 봤나

최종편집 : 2018-07-19 09:30:54

조회 :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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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그리스의 젊은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는 색깔이 뚜렷하다. "인간은 어리석다"라는 대전제 아래 냉소 어린 시선을 영화에 투영한다.

란티모스는 매 작품 어리석은 인간이 주인공인 우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가 만든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평온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묘한 메타포로 가득하다. 이상한 세계에 뚝 떨어진 듯한 인간들은 양식화된 행동을 하며 우스꽝스러운 재미와 모골이 송연한 공포심을 선사한다.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에 이은 또 하나의 문제작 '킬링 디어' 또한 마찬가지다. 꺼림칙한 이 충격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면, 흥미로운 영화 탐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은 안과 의사인 부인 안나(니콜 키드먼)과 딸 킴(래피 캐시디), 아들 밥(서니 설직)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병원에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마틴'(배리 케오건)이 찾아오기 시작한다.마틴은 의료사고로 죽인 환자의 아들이다.

스티븐은 죄책감에 그를 친절하게 대하지만, 가족에게까지 접근하자 차갑게 돌아선다. 마틴은 스티븐에게 저주 어린 말을 퍼붓고, 그 말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이어져 가족을 차례로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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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킬링 디어'는 "뇌리에 박힐 무시무시한 경험"(엠파이어), 기이하고 매혹적이며 불안한 올해의 영화"(더 텔레그래프), 관객을 가둬 놓고 놓아주지 않는다"(더 리틀 화이트 라이즈) 등의 외신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작품이다.

원제는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즉 '신성한 사슴 죽이기'다.  영화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트로이 전쟁으로 원정을 떠난 아가멤논이 신의 사슴을 죽여 저주를 받자 이를 풀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는 딜레마를 현대 중산층 가족에 닥친 불행으로 치환시켰다.

란티모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야기를 따와 현대의 우화를 썼다. 감독은 “무엇이 옳은지 틀린 지 그 정의에 대한 판결은 누가 할 수 있는지, 거대한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보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행복한 가정에 찾아온 예기치 않는 불행은 누군가가 계획한 복수의 결과다. 더욱이 자초한 이가 명백한 불행은 속죄 이전에 무고한 희생부터 야기한다는 점에서 눈뜨고 지켜보기 힘든 비극이다.  

스티븐과 안나의 아이들은 사지마비, 거식증에 시달리다 피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영화는 이 현상의 원인을 굳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과오로 내려앉은 저주는 막아서기에는 불가항력이라는 것만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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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것은 란티모스가 만들어낸 인물과 그들의 행동 양식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거스를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과 연민 정도가 관객이 느낄 공감대지만, 이조차도 인물의 뒤틀린 행위로 인해 깨져버리고 만다.  

특히 '러시안 룰렛'(회전식 연발 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장전하고, 머리에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는 목숨을 건 게임)으로 인신공양의 대상을 선택하는 인물의 행위는 발상부터가 경악스럽다. 끔찍한 선택의 결과를 운명에 맡긴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금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어리석은 데다 이기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오프닝은 실제 심장 수술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불편한 이미지에서 출발한 영화는 내내 시끄럽고 파괴적인 사운드로 기묘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란티모스 감독은 음악 사용을 최소화했던 '송곳니'와 달리 '더 랍스터'부터 '킬링 디어'에 이르러서는 음악을 극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는 이들의 심리를 옥죄는 전개와 이야기의 분위기를 선행하는 듯한 음악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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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을 연기한 배리 케오건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등장해 점층적으로 악마의 내면을 꺼내 보이는 살벌한 연기를 펼쳤다. 지식인, 부유층의 위선을 보여준 스티븐 역의 콜린 파렐과 안나 역의 니콜 키드먼의 연기도 빼어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독재 사회를 풍자한 '송곳니',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짝짓기 호텔에 투영한 '더 랍스터' 등을 내놓으며 논쟁적 작품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미카엘 하네케와 라스 폰 트리에의 뒤를 이을 계승자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이쯤 되면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요르고스 란티모스만의 스타일을 정립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ebada@sbs.co.kr